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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섭 교수] 시간을 묻고, 장소로 답하다
2019/10/28 12:2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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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섭 교수.JPG
 
누가복음 17장 중반부에는 재미있고도 유명한 대화가 소개되고 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할지를 묻는다. 그런데 그 대답은 한 마디로 동문서답(東問西答)이다. 예수님은 시기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고 대답하신다. 그리고 덧붙여 ‘여기’ 있다 또는 ‘저기’ 있다고도 못한다고 설명하시면서 그 신비한 답변으로 그들의 질문에 종지부를 찍는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우선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의 시간(when)에 대한 질문을 공간(here, there)으로 답하신 것에 주목한다. 바리새인들은 전통적인 시간의 축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발견하고자 했다. 하지만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시간을 초월해서 임하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하시는 듯하다. 본디 그 분의 나라는 시간에 구애됨이 없으셨다. 오히려 그 분은 ‘시간’보다는 ‘장소’와 ‘공간’에 관심이 많으신 듯하다. ‘때’는 언젠가 이를 것이다. 노아의 ‘때’처럼, 롯의 ‘때’처럼 인자의 ‘때’도 분명히 이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리고 그들에게는 ‘때’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한 말씀을 하신다. 주님의 관점은 시간을 넘어서 있다. 하지만 그 시선은 ‘물리적인’ 공간에만 머무르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더라도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하신다. 그리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하신다. 이 말은 하나님의 나라가 결국은 사람간의 ‘관계’속에 이루어진다는 점을 지적하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안에’라고 번역된 헬라어(ἐντὸς)는 장소적인 의미로 ‘안에’(within, inside)로 번역될 수 있으나 ‘손닿는 곳에’, ‘가까이에’라는 의미로 번역될 수 있고, 나아가 ‘관계’적인 용어로서 ‘가운데’(midst)로 번역될 수도 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결코 내면적인 해탈의 상태가 아니라, 사람들 간의 실재적인 관계 속에서 역동적으로 구현되는 것임을 잘 암시해주고 있다. 혹시 우리가 저 너머 어딘 가만을 계속 응시한다면, 또한 여기저기로 향방 없이 목적지를 찾아 방황한다면 우린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린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발견하고 경험해야 한다. 그러기에 천국(天國)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의 나라(神國)로 다시 되새김되어져야 하고, 우리의 시선은 저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져야 할 것이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그 도래지가 ‘너희’라는 것이다. 너희가 누군가? 바로 질문을 던진 사람들, 대답의 수신자들인 ‘바리새인’이 아닌가. 하나님의 나라와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바로 그들의 코앞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고 하다니. 이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의 관점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주고 있다. 이는 우리의 관점이 ‘우리’로부터 ‘그들’에게로 돌려져야 하고, 우리가 ‘그들’ 가운데, ‘그들’ 속으로 더 많이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기에 우린 현재 이 땅에 일어나고 있는 그들의 사태에 더욱 깊이 그리고 광범위하게 관계해야 함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이 세상에 관여하는 방식은 결코 잘 난체, 아는 체 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섬기고 나누고 목숨을 바치는 관계의 방식이어야 하며, 향기를 풍기며 빛을 발하는 존재로서의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주님은 대화와 설명의 끝을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살리리라’는 엄청난 부담으로 마무리하신다. 그 표현이 자신의 목숨만 보존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들의 생명, 나아가 공동체를 구원하는 우리 각자의 거룩한 사역까지 포함하는 것이라 믿는다. 그들이 물었고, 주님이 답하신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시간을 초월하고, 장소를 뛰어넘어 우리와 그들의 관계 속에서 임하게 될 것을, 아니 이미 임했음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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