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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 기폭제는 야성 있는 기독교 인사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2019/10/25 14:4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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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 일어난 지 40년 10월 16일에 국가기념일로 역사의 평가로 인정해 준 것은 늦은 감이 있지만 대한민국 역사의 4대 민주항쟁(4.19 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에 비로소 항쟁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알게 해 준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지금 그 당시 숨은 주역들은 이미 하늘나라에서 보고 있을 것이고 그 항쟁의 행동과 변두리 역할을 했던 인사들이 대거 영광의 월계관을 쓰고 계시는 감이 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이분들이 적극 몸으로 참여 안했다는 것이 아니고 실제 배후에 기독교 인사들의 영향권을 받고 행동하고 실천했기 때문에 사실상의 주역들은 과거 3.1운동 거사의 대부분 16명의 기독교 목사, 장로, 전도사들이 천도교 손병희 선생보다 더 강했다는 뜻으로 비교하면 어떨지?
가령 지금 부마민주항쟁 기념사업재단 이사장 송기인 신부가 대표로 자리 잡아 빛내고 있지만 지금 하늘나라에 가 있는 부산중부교회 담임이었던 고 최성묵 목사, 고 김광일 장로(변호사)에 비하면 요즘 아이들 말로 빌리면 “새발의 피다” 그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1970년부터 줄곧 금요기도회, 수요기도회 등으로 서울 반체제인사들이 강연으로 거쳐 가지 않는 인사가 별로 없다. 서울의 반 유신운동의 소식은 이들 인사들을 통해 전달되고 기독교의 저항정신이 싹트게 해준 부시게 역할을 했고 특별히 최성묵 목사는 주일 설교 시간에 늘 독일 신학자 본 회퍼 목사의 미친 자에게 운전대를 맡기지 마라는 소리는 귀가 따갑도록 듣고 있었다.
아무리 살벌한 유신 정권의 권력 기관에 종사한 보안사, 국가 정보부, 경찰 정보과, 기관원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감시하고 온갖 방해 공작을 시도하다가 "삼일공사(군군보안대 망미동 소재)에 끌려가 취조 받다가 쓰러진 고 임기윤 목사(제일감리교회 담임)가 사망 희상자 제1호이다. 결국 부산대학병원에서 순직했지만 그 당시 보안사 부산책임자가 수습한다고 감리교 삼남연회 감독 목사를 불러 모셔놓고 임기윤 목사 사모 등 유가족들과 수습안을 놓고 협상을 시도한 곳이 대청동 소재 바로 미문화원 바로 길 건너 서라벌호텔 특실을 빌려 장례를 논의 하면서 임 목사의 아들이 부산대 의대 재학 당시의 학비 전액을 졸업할 때까지 부담한다는 약속 서약에 도장을 찍게 한 그때의 교계기자로 그 현장을 보고 절대 기사를 못 쓰게 압력을 행사 했던 기억이 40년 만에 되살아난다. 이 일로 인해 서울을 비롯하여 한국교계 언론인 편집국장등 25명(필자도 포함) 기자들을 산업시찰과 일선 휴전선까지 시찰 명분이지 실제는 기사 안내는 무마 술책이었다. 그 시찰 중 부산까지 내려와서 부산 역전 건너편 "뉴포트호텔에서 숙박 중 새벽 뉴스를 듣다가 10.26 소위 박정희 서거 소식을 듣고 부산서 해산하고 말았던 지난 그리 기분 좋지 않는 부끄러운 기억이 난다.
분명히 말하자면 부마사태 진원진은 부산중부교회와 부산YMCA에 관계했던 임동규 목사(사무총장) 간사 박상도 전 Y이사장, 김형기 당시 김광일 변호사 사무간사는 서울 새문안교회 청년회 회장, 지금은 경주 팔복교회 담임목사) 그 당시 고호석 선생은 평범한 교인 청년이고 중부교회에 가끔씩 출석하다가 학교로부터 교사 강제 퇴직 당했던 기억도 난다. 5.18광주사태가 나고 난 한달 후 부산미문화원 방화 사건도 관련된 인사들이 부산중부교회 교회학교 주일학교 교사이자 고신대학 신학과 문부식, 기독교교육학과 재학 김은숙(지금은 고인 한신대학 학장을 역임한 김정준 박사의 조카) 임귀옥 (고신대 의학부 재학)이 주도했던 당시 주일학교 부장이 필자였으니 그 어느 보다 잘 알고 있었던 과거 역사가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다. 아마 치매가 오기 전 이 역사적인 사실을 써놓고 죽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부마항쟁의 주역은 이미 세상을 떠난 임기운 목사, 최성묵 목사, 김광일 장로, 우창웅 해직 부산교육대 교수 부산진교회 장로, 박상도, 임동규 목사, 김형기 목사 그 외 중부교회 당시 대학생 조태원, 최준영(서울대), 정외영, 김석호, 조성삼 장로, 이태성 등 10여명이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된 것을 무료 변호한 분이 김광일 장로였다. 그 당시 문재인 변호사(현 대통령)도 6월 항쟁의 부산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그 중심에 최성묵 목사가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최목사 추모집). 이들 뒤를 물질적으로 뒤받침한 분도 김광일 변호사이자 부산중앙교회 합동측 시무장로였다. 그 외 그의 친구 이흥록 변호사도 동참하면서 양서협동조합 이사장과 김희욱 집사 부산영락교회가 총무를 맡았다. 이 양서조합에 나오는 책들이 대학생 청년들의 의식을 일 깨워주고 용기를 불어 넣어 준 양서 레스탕트 운동의 원인을 제공해 주었다. 결국 불온 문서들이라고 해서 당국으로 부터 해산 되게 한 것이다. 이 아이디어를 제공한 분이 김형기 목사(서울대 출신)다. 서울에서 요 시찰 인물로 부산 중부교회로 피신하여 거처도 제공도 했다. 문재인 변호사도 중부교회를 중심으로 부산지역 대학교 운동권과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 당시 부산대 조태원, 정외영 등을 통해 부산대 운동권과 열결이 가능했다.
결론은 부마항쟁의 공로자들은 하늘에 계시는 부산의 기독교 인사들이 잊어서는 안 될 것이고 지금 부마항쟁의 진실을 규명하고 있는 관계 인사 누구도 부인 못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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