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9.06.25 14:27 |
행복한윤리재단, 제3차 국제탈동성애 부산포럼 개최
2019/06/11 10:54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구글+로 기사전송 C로그로 기사전송
탈동성애자들의 증언 이어져
탈동성애 포럼.jpg
 
행복한윤리재단(이사장 안용운 목사)은 지난 6월 4일 오후 2시 부전교회(담임 박성규 목사)에서 제3차 국제탈동성애 부산포럼을 개최했다. 박경만 목사(부산기독교동성애대책위원회 사무총장)의 사회로 안용운 목사가 인사, 서창수 목사(부산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가 축사, 이요셉 간사(홀리라이프)가 탈동성애 선언문을 낭독했다.
이어진 포럼에서는 징 가야덴 목사(갈보리채플 필리핀성경대학 부학장)와 길원평 교수(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 운영위원장), 이요나 목사(홀리라이프 대표)의 발제가 있었다. 그리고 시홀(인도네시아 탈동성애자)과 알레시오(이탈리아 탈동성애자), 김범수(홀리라이프 그물을깁는사람들)씨와 이요셉(홀리라이프 그물을깁는사람들)씨가 나서 탈동성애 증언을 했다.
KakaoTalk_20190604_150337223.jpg
 
이날 증언자로 나선 시홀 씨와 알레시오 씨의 간증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시홀>
나는 크리스천 가정에서 자랐다. 우리 가족은 매주 교회에 갔지만 우리 삶은 예수 중심적이지 않았다. 그 당시에 부모님은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사느라 바빴다.
어머니는 나를 학대한 결과 내 자신이 인간됨을 느끼지 못했고 특히 남자로 느껴지지 않았다. 내 존재가 쓸모없다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내 선택에 따른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책임전가 하고 싶지 않다. 내 어머니가 한 일이 잘못됐을 지라도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 누가 나에게 영향을 미쳤던지 간에 말이다.
아버지는 군대에서 복무해 자주 떨어져 있었고 내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부모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정신적인 상처와 짊을 많이 가지고 자랐다고 할 수 있다. 내 영적인 상처는 악한 영이 나를 괴롭힐 수 있도록 방치되어 있었다.
내 어린 시절 어딘가, 6~7살 즈음에 동성에 대한 성적인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자라면서 동성애에 더 눈뜨게 되었고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그러한 욕구를 억누르기로 결정했다. 동성애라는 감정이 없는 듯이 행동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건 진짜가 아니야”! 그리고 계속해서 반복했다. 기도해서 동성애를 없애려고도 해봤다. 그러나 결국에는 실패만 남았다. 따라서 나는 동성애라는 감정을 부끄러워할 때 보다 스스로를 더 싫어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동성을 향한 성적 욕구에 대해 아무도 모르기 원해서 사람들이 나의 비밀을 알지 못할 정도로 연기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더 불안정하게 만들 뿐이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알아내고 놀릴까 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수년간의 억압과 증오로 나는 스스로 변하기를 포기하고 내가 동성에 대한 성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시점까지 왔다. 그러한 욕구들로부터 자신을 해방하려는 수많은 시도 끝에 그것들과 싸우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그러한 욕구를 받아들이고 공존하며 즐기기로 했다. 고심 끝에 내 욕구에 스스로 굴복하기로 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이별했다.
결정을 내린 후에 내가 원하는 것에만 몰두하기 시작했다. 일단 나는 죄를 부정하면서 게이 포르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시적으로 모든 것이 괜찮아졌고 만족스러웠다. 처음에는 드디어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더 행복해졌다. 행복해진 줄 알았다. 그러나 만족하면 할수록 만족하기 위해 더 많은 양의 포르노를 보아야 했다. 하루에 세 번은 자위를 해야 만족하는 시점까지 도달했다. 나는 자위에 중독되고 말았다. 때때로 할 일이 없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를 때 포르노를 보곤 했다. 왜냐하면 다른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포르노를 보고 싶지 않을 때도 그게 내가 하고 있는 전부 같았다. 포르노가 지루해지면 비디오 게임으로 바꿨다.나는 몇 시간이고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잠자고 먹고 화장실 갈 때만 게임을 하지 않았다. 게임이 지루해지면 영화로 옮겼다. 특히 게이를 주제로 한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게임과 영화 어느 중간 즈음에 포르노를 시청했다.
중독 문제를 제외해도 내가 꽤 화난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부모님에게 쉽게 화가 났고 스스로 가족과 멀어졌다. 내 동생은 내가 방에 틀어박혀 문을 잠그고 있기 때문에 나를 농담으로 귀신이라고 불렀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동성에 대한 성적 욕구가 더 강해졌고 이제 포르노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나는 그것을 하기로 결심했다. 비록 성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삽입은 하지 않았지만 그것의 죄악 됨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은 다른 것을 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있은 후에도 나는 여전히 인생에서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길을 잃고 공허하고 건조함을 느꼈다.
2010년대 중반에, 나는 내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인생의 큰 질문: 존재의 의미를 묻고 있었다. 서른 살이 되었을 때 내 인생이 업무, 포르노, 자위, 남자, 게임, 영화, 친구, 사이클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랄까, 내가 스스로 무신론자라고 단정 짓지는 않았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을 완전히 잊어버리고(혹은 부인했거나) 있었다. 내게 하나님, 규율, 천국과 지옥은 없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것이 내가 늙어가고 싶은 삶인가?
어느 평범한 날, 주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그는 그의 사랑을 상기시켜 주셨고 나는 예전에 깨닫지 못했거나 혹은 잊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주께서는 무슨 일이 있든지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의 사랑이 각박한 나의 마음을 깨뜨리심을 느꼈고 두가지 선택을 마주하였다: 첫 번째는, 살아온 대로 계속해서 살며 영원한 지옥으로 향할 것인지와 두 번째는, 모든 걸 뒤로하고 영원한 삶으로 부르신 주를 따를 것인지이다. 나는 이러한 선택과 그 결과들을 각각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나는 주를 따르기를 원했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특히 내가 완전히 받아들인 ‘게이’ 정체성을 떠나 보내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난 정말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주님은 내 마음이 흘러가는 것을 정확히 아셨고 내가 해야하는 결심을 하게끔 도우시려고 개입하셨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진리라는 동기부여를 통해, ‘게이’ 정체성을 잃는 것을 포함하여,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주를 따르기로 다짐했다.
내가 새로운 삶을 선사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제일 먼저 알아차린 것은, 내 과거 중독들에 대한 갈망이 없어졌고 스스로 제어할 수 있었고 예전에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는 것처럼 인내심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님은 진정 우리를 안팎으로 변화시켜 주신다.
 
<알레시오>
나는 전통적인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17세에 커밍아웃했고, 가족들과 친구들의 인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울했고, 죽고 싶었다.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기도했고, 자살 시도도 했다. 내가 죄 가운데 살고 있어서, 적이 나를 죽이려 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친구의 장례식에 갔을 때 처음으로 복음을 접했다. 영생에 대한 예수님의 메시지를 처음 듣고 호기심이 생겼다.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크리스천이 됐지만 동성애자의 삶은 계속 살았다.
성경을 읽고 규칙적으로 기도했지만 예수님에 내 삶을 완전히 바칠 수 없었다. 내가 게이로 태어났고 하나님이 동성애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교회를 가고 싶었다. 따라서, 친동성애 신학을 배웠고 따랐다. 친동성애 교회를 다녔고 사람들에게 친동성애 신학을 변론했다.
그러나 내 인생의 짝일 줄 알았던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 그를 비롯한 다른 사람을 싫어하기 시작했다.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에 대해 기도했다. 모든 종류의 포르노를 매일 아니면 하루에 여러 번 보면서 자위를 했다. 나는 예수님을 알았지만 성령을 통해 그 이름에 담긴 힘은 알지 못했다. 나는 내 행동이 문제인지 조차 깨닫지 못했다. 스스로를 그분의 아들이 아닌 게이로 정의한 그 사실이 내 삶에서 우울함, 자살하고 싶은 마음을 가져왔다는 것을 말이다.
내 터닝포인트는 친구의 장례식에서 시작했다. 그곳에서 문화 충격을 받았다. 외운 기도문도 없었고, 하나님과 인간의 사이에 거리도 두지 않았다. 설교자는 하나님이 얼마나 개인적인지, 어떻게 그의 삶이 변했는지 나눴다.
그때부터 나는 22살의 나이에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실존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내 사촌이 교회로 나를 초대했었다. 그때 처음으로 기도했고 하나님은 나를 개인적으로 만나주었다. 울었던 것이 기억난다. 성경을 보지 않았지만 갑자기 하나님이 나를 게이로 창조하지 않았다고 느껴졌다. 나 역시 그러한 생활방식을 더 이상 원하지 않아 하나님께 나를 동성애에서 자유롭게 해달라고 구했다.
그러나 동성애자의 정체성을 버리기는 어려웠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었다. 새로운 남자와 관계를 가진 후에 내가 얼마나 위선적인지 생각하며 에이즈 검사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성적인 죄로 인해 피검사를 하고 있었다. 검사결과는 음성으로 나왔지만 기쁘지 않았다. 우울해졌고 스스로 갈등했다. 일년간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기도했다. 2013년 12월 자살을 시도했다. 피가 사방에 퍼지면서 하나님께 나를 살려달라고 평화를 달라고 울부짖었다. 하나님은 나를 살게 해주셨다.
나는 직장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파리로 이사했고 게이 커뮤니티를 떠났다. 버스에 탄 어느 날 하나님께서 유튜브에서 “동성애에서 탈출”을 검색하라고 알려주셨다. 탈 동성애 사역자의 간증이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어 있는 것을 찾았다. 간증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 사역자의 삶이 나와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성령님께서 내가 게이로 태어나지 않았음을 확인해 주셨다고 느꼈다. 그러한 진실은 나를 자유롭게 했다. 나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용서를 빌었다.
내가 저질렀던 죄에 대한 목록을 만들었다. 그리고 죄가 동성애자로의 정체성을 강화한 것을 보았다. 죄 각각에 대해 회개 했고 죄사함을 느꼈다. 새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는 ‘게이 크리스천’으로 지낸 지 4년 후에 회개했고 그리스도의 진정한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그 이후로 신실하게 걸어오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정체성을 받아들였다. 나는 더 이상 스스로를 게이 크리스천으로 정의하지 않고 크리스천으로 정의한다. 하나님은 탈동성애자와 그들의 간증을 이러한 문제의 진실로 사용한다.
과학이나 미신으로 변화된 삶을 들어본 적 있는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한복음 14:6), 예수님을 삶의 중심으로 만들어야 모든 중독에서 해방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동성애적 욕구에서 구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하셨고 왜 내가 동성애적 욕구가 있는지 보여주셨다.
내가 자라면서 부모님 그리고 친구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삶을 변화시키는 경험을 한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남자에게 매력을 느꼈다. 내 즐거움에 따라 행동하는 대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먼저 친구로 만나보라고 알려주셨다.
하나님께서 내가 남자와의 관계를 갈망하는 이유를 보여주신 때이기도 하다. 내가 그들로부터 남성성을 가져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성성을 훔치는 것과 더 비슷하지만 실제로 성공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내가 그들의 관심이나 애정을 얻지 않아도 됨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은 남자로 지내는 것이 어떤지를 보여주었고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던 모습, 거룩한 아버지 자녀의 모습으로 안정감을 주셨다.
내 마음과 행동 습관은 점점 바뀌어갔다. 나는 더 이상 스스로를 게이로 정의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취미 활동도 아니고 월요일 아침 혹은 매주 한시간 정도 하는 것도 아니다. 그 분은 나와 당신의 삶의 중심이 되고자 하시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자녀가 되어 성령의 전이 되고자 하신다(고린도전서 6장 19절).
오늘날 사람들이 그들이 게이로 태어났다고 말할 때, 나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데 초점을 맞춰보자. 하나님의 사랑을 그의 방식대로 보여주자. 내게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수용이고 나를 자유롭게 하는 사랑 안에서의 발걸음이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kcnp1@hanmail.net
한국기독신문(www.kcnp.com) - copyright ⓒ 한국기독신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 많이본기사
  • 화제의 뉴스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정기구독신청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한국기독신문 (http://www.kcnp.com) | 창간일 : 1995년 4월 11일 | 발행인 : 김해옥 | 편집인 : 신이건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신상준 국장 
    602-053   부산광역시 서구 까치고개로 229번길 47-1
    사업자등록번호 : 758-96-00228 | 정기간행물등록 : 부산, 아00259
    대표전화 : 051-245-1235 | 팩스 : 051-245-2763 | kcnp1@hanmail.net
    Copyright 2015. kcnp.com All right reserved.
    한국기독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