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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 나는 보았습니다
2019/06/10 15:3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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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이 집을 떠났다. 청운의 꿈을 품은 자신의 뜻을 따라 떠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것이 화근이 되어 형들의 극한 시기 질투와 미움을 받은 탓이었다. 세상물정을 채 깨닫지도 못한 어린 나이에 타국의 노예로 팔려 부모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13년의 세월은 그에게 한결같이 아프고 외롭고 힘들고 억울한 날들이었다. 어쩌면 지옥에 견줄 시간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성경엔 요셉의 그 13년의 세월을 지옥 같았다고 기록한 곳이 한 군데도 없다. 뿐만 아니라 요셉 그 자신도 그 시간을 한 번도 지옥 같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요셉을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로서 의롭고 경건하며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으며 노년에 얻은 아들이라 특별히 더 사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 그가 이제 애굽의 노예가 되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왜인가?’라는 의문에 직면한다. 만약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너를 이스라엘의 위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써 사용할 것이며, 너를 통해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계획의 진행과정으로 이와 같은 시간들을 살게 할 것이다”라는 한 마디의 언질이라도 해 주셨다면 요셉이 겪는 이 극한 질곡의 세월을 이해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어디에서도 그런 말씀은 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요셉의 삶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도 이런 느닷없는 상황은 발생한다. 어쨌건, 이런 난데없는 상황을 당한 요셉의 삶을 보자. 그는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이 상황에 대한 어떤 귀띔이라도 받은 것처럼 묵묵히 그 모진 세월을 견뎌낸다. 그의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는가? 그렇다! 그것은 바로 믿음이다. 거창하게 떠들지 않아도 하나님을 믿는 온전한 믿음이 그의 바른 생활을 가능케 했다.
  창세기 39장에는 요셉의 노예생활에 관한 상황이 기록되었다. 그 내용을 따라가 보면 1절은 팔려간 요셉이 보디발의 노예가 된 장면이며, 2절은 그런 요셉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3절은 어느 날 보디발이 하나님의 요셉과 함께 하심과 그의 범사를 형통하게 하심을 보게 되는 놀라운 일이 기록되고 있다. 4절은 이에 보디발은 요셉을 자기 집 가정총무로 삼고 모든 소유의 관리권을 그에게 위탁한다. 그리고 5절은 그 때부터 하나님이 요셉을 위하여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하나님의 복이 보디발의 모든 범사에 미치게 되는 내용이다.
  천만 번을 읽어도 놀라운 말씀이 아닐 수 없다. 다시 정리하면 첫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 형통한 자가 된다는 것, 둘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 있는 곳과 그가 함께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것, 셋째는 그 사람이 함께 하는 그 주위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창세기 39장 1-5절에서의 그가 바로 요셉이다.
  아무나 요셉 같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누군가가 요셉이 그렇게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 된 과정은 간과하고 복을 받은 결과만 생각한다면 그는 오늘의 요셉이 될 수 없다. 요셉처럼 되고자 한다면 그와 같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요셉처럼 참혹한 시간도 참고 견디면서 불평하지 않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지난 주간 일본에서 요셉 같은 사람을 보았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온갖 궂은일을 다 했다. 아픔과 외로움, 고난과 속상함, 춥고 배고픔, 온갖 설움을 견디면서 성실하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다. 그러면서 입에는 불평대신 감사가 노래되고 원망대신 축복이 입술의 열매가 되었다. 공직생활을 하면서는 올곧고 정직했었다. 억울한 일을 당해 공직의 옷을 벗어야 했지만 원망과 불평 대신 긍정적으로 모든 것을 보는 눈을 열었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은 그를 두고 한 사자성어처럼 느껴졌다. 그의 삶에서 부정적인 면은 눈을 닦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다. 365일 감사와 긍정언어가 그의 삶이 되었다. 배고픈 사람을 위해 주머니에 있는 것을 다 내어주었고 추워 떨고 있는 사람을 보면 자기 옷을 벗어 입혔다.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여 리브가 같은 아내를 주셨고 아내를 통해서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 딸을 낳아 이름을 리브가라고 지었다. 일본인이면서 8년 전 한인교회의 장로가 되었다. 그를 장로가 되게 내조한 현숙한 아내가 지난 주간에 장로임직을 받았다. 축사를 하면서 나는 일곱 색깔 무지개의 환상을 보며 언약의 축복을 새삼 상기했다.
  주위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 장로님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야”, “그 장로님을 보면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것을 볼 수 있어”, “그 장로님이 함께 하는 사람도 복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어...” 나도 하나님이 그 장로님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았다. 언제나 나누고 섬기며 베풀고 사랑하는 그의 삶에서 요셉의 삶을 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그가 창세기 26:12~13절의 주인공이 되고, 창세기 49:22절로 그를 축복하며 기도한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내게도 참혹한 상황이 닥칠 때가 있다. 그러나 원망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지내는 것은 요셉처럼 다윗처럼 믿음 있는 자로 살고자 함이다. 어느 날 장로님이 나에게 작은 액자 하나를 선물로 건네주면서 하신 말씀이 있다. “이 글 한편이 오늘의 내가 있도록 힘이 된 글입니다.”
  나의 근원적인 힘의 원천은 성경 말씀이다. 그리고 이 액자의 글 또한 받은 날로부터 지금까지 감사와 축복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또 하나의 힘이다. 나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는 ‘하시모토 타카오’ 장로님이다.
 장로님이 내게 주신 액자의 내용이다. 나는 이 액자를 문설주 앞에 걸어놓고 출입할 때마다 한 번 씩 읽는다. <毁譽褒貶 他人戱言 我戚不知 我行箴 我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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