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후 6월 18일 에비슨 의사(Dr Oliver R. Avison, 1860-1956)가 부산항으로 내한하여 일단 베어드 집에 머물게 되었다. 서울에 거주할 마땅한 주택이 준비되지 못했기 때문에 당분간 부산에 체류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부신에 온지 꼭 일주일이 되는 1893년 6월 23일, 4번째 아이 더글러스(Douglas, 1893-1952)를 출산했다. 8월 6일 주일에는 더글러스는 1년 1개월 된 베어드의 딸 로즈(Rose)와 함께 마침 부산을 방문했단 마펫으로부터 유아세례를 받았다. 마펫은 로즈에게, 베어드는 더글러스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 유아세례식은 부산에서의 첫 세례식지만 한국인들의 세례가 아니라 선교사들의 자녀들에 대한 유아세례였기 때문에 나는 이것이 첫 세례라고 부르지 않았다.
부산지부장인 브라운 의사는 건강이 좋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요양을 위해 부산을 떠나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4주간을 요양하고 돌아왔다. 건강이 좋아지기는 했으나 군원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부산에서 한달 가량 지냈던 마펫은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 또 4월초 부산으로 와 베어드의 조사로 활동했던 서경조는 건강상의 이유로 부산에 온지 약 4개월이 지난 1893년 8월 15일 고향으로 돌아갔다.
부산지부에서 중요한 일은 부산지방에서의 두 번째 주택 건축이었다. 첫 번째 건축이 윌리엄 베어드의 주택 건축이었고, 두 번째 건축을 위한 부지 매입은 7월 1일이었다. 진료소 부지로 구입한 것이다. 건축은 8월 하순에 시작되었다. 건축공사는 브라운 의사의 감독 하에 진행되어 9월 25일 경 완성되었다. 이것이 북장로교 부산지부의 두 번째 건축인 병원 건물이었다.
그해 120월 17일에는 서울에서 북장로교연례회의가 개최되었는데, 베어드 목사는 육로로 나머지 선교사들은 기선을 타고 서울로 향했다. 이상이 1893년 부산지부의 상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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