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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이기에 달라야한다”는 이창훈 교수
2019/05/13 13:3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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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기독의사회 회장으로 의료선교 모색
직전 부산대학교병원 병원장으로 섬기면서 매일 기도로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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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학교병원 제26대 병원장으로 지난 2016년 2월부터 2019년 2월까지 3년간의 임기를 마친 이창훈 교수(부산대학교병원)를 만났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병원장직을 섬길 수 있어 감사하다. 부족한 제게 좋은 기회가 주어졌고, 매일 아침 기도하며 출근했다. 크리스천이기에 달라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창훈 교수는 1983년 부산대 의과대학 분과 1학년이 되었을 무렵에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이전에는 집 근처 친구들이 전도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친척 할머니 할아버지가 인근에 살았는데, 믿음이 깊은 할머니를 따라 할아버지께서 교회에 나가게 되면서 따라가게 되었다. 아내의 권유로 교회를 가지만 믿음이 없던 할아버지는 혼자 가기 뻘쭘했는지 이 교수 집에 찾아갔고, 함께 교회를 다니게 됐다. 당시 믿음은 없었지만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종종 교회로 발걸음 했다.
그러던 중 이 교수의 아버지가 별세했다. 대학생으로 젊은 나이에 장례를 어떻게 치러야할지 앞이 막막했다. 그 때 출석하던 부산 평광교회 성도들이 찾아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장례절차도 모르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장례 치를 형편도 아니었지만, 교회 성도들이 발벗고 나서 제 일처럼 도와줬다. “목사님께서는 염하는 것까지 도와주셨다”면서 “그렇게 교회에 감사한 마음으로 출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믿음 없이 신앙생활 하기란 쉽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그에게는 공부에 대해 열중해야 하는 시기였다. 그렇게 바쁜 대학생활을 보내던 중 어느날 친구들과 만남을 갖고 있는데 기침을 했더니 피가 나왔다. 이후 결핵인 것을 알았지만 객혈한 당시에는 폐병인 줄 알았다. 친구가 아는 병원을 소개해줘 결핵치료를 받게 되었다.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용돈을 모아 고기 한 근을 사서 찾아갔더니 믿음이 좋았던 병원장이 고기는 아픈 사람이 먹고 힘내라면서 한사코 거절했다. 그리고는 부산산정현교회에 가볼 것을 권유했다. 당시 서울에서 한달에 한번 함석헌 선생이 부산산정현교회에 와서 강연을 했는데 여기에 참석해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감사한 마음으로 권유에 응했다. 부산산정현교회에서 함석헌 선생의 말씀을 듣고 세상을 보는 눈이 뜨이게 되었다. 그리고 신앙에 대한 새로운 깊이를 경험했다. 그렇게 교회생활, 청년들과의 유대관계, 말씀연구에 대한 관심 등이 자라게 되었다.
이창훈 교수는 “인생을 살면서 유혹도 많았고 실수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믿음의 길로 이끄신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정말 부족한 제게 믿음을 주시고 진리를 알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고 감사하다”고 고백했다.
평광교회를 출석하다 지난 2002년 이사하면서 부산중앙교회로 옮기게 됐다. 그리고 지난해 5월 장로 임직을 받았다. 이 교수를 만나 그의 신앙 이야기와 부산시기독의사회 회장으로 섬기게 된 소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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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2월 로힝야족 난민에게 의료선교를 다녀왔다고 들었다.
A. 지난 2월 설 연휴에 맞춰 로힝야족 난민에게 선교사역을 하고 왔다. 부산중앙교회 담임목사인 최현범 목사님과 다문화사회연구소 소장인 이병수 교수님, 그리고 지구촌구호연대 배태진 목사님께서 만남을 가지면서 로힝야족 난민에게 의료선교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였다. 그래서 최현범 목사님께서 제게 의료선교를 권유하셨고, 고민하던 중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부산대학교병원 병원장으로 재임하던 시기였기에 바빠서 거절했다. 설연휴는 임기가 마치기 직전이라 힘들 것이라 답했다. 그러나 분에 넘치는 장로직분을 허락 받았기에 섬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같이 장로임직을 받았던 다른 의사 장로님과 함께 뜻을 모아 교회 선교팀을 꾸려 로힝야족을 다녀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회의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다. 설 연휴이고, 4일 중 이동하느라 이틀을 쓰기에 실제 사역 기간은 이틀 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경비는 많이 드는데,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하셨다.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시고 움직여 은혜를 경험하게 했다.

Q. 가서 어떤 사역을 했는가?
A. 크게 의료사역, 어린이사역, 방역사역을 했다. 의료사역으로 내과질환, 외과질환, 당뇨검사, 소변검사, 치과 치료 등 이틀간 환자 800명을 진료했다. 또 고아들이 많기에 고아원 해피홈사역을 했다. 청년들이 어린이들에게 놀이문화를 가르쳐주면 관계를 형성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밀집되어 살고 상하수도 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질병 전염성이 높았다. 그래서 소독기를 준비해 방역사역을 실시했다. 로힝야족 난민은 공식집계로 110만명, 실제 1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짐작한다. 실제 가까이서 보니 더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 특히 여성질환을 치료해 줄 의료진이 필요했다. 우리는 남자 의사들이라 이슬람 여성들의 진료를 보기 힘들었다. 고작 피부치료를 도와주는 정도였지만, 그들에게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

Q. 부산시기독의사회 회장이 되었다고?
A. 지난 4월 부산시기독의사회 회장으로 섬기게 되었다. 지난 2013년 부산성소병원 박희두 장로님을 비롯해 몇몇 의사들이 뜻을 모아 결성했다. 부산대학교병원장 임기가 끝나니 박희두 장로님께서 제게 회장직을 물려주셔서 부족한 사람이 회장으로 섬기게 되었다. 그동안 활동이 많이 부족했다. 사실 크리스천 의사들은 다들 바쁘게 살아간다. 의사로서 병원 업무가 많지만 그 외에도 교회나 소속된 선교단체 등을 통해 선교사역을 하고 있다. 그런데 또 다시 지역으로 묶어 단체를 만든다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조금이라도 사용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하고 있다. 이런 우리들의 뜻이 모여서인지 김성록 교수님께서 곧 부산에 찾아와 부산시기독의사회와 만남을 갖고 조언을 주기로 했다. 김성록 교수님은 부산대 출신으로 서울 성모병원에서 퇴직하시고 서울기독의사회 회장으로 섬긴 경력이 있다. 선배로서 부산시기독의사회가 활성화 되길 바라며 도움을 주고자 하셨다. 앞으로도 해외 뿐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의료선교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부족하지만 부산시기독의사회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임원들과 함께 좋은 사역들을 기획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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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혜진 ohj1113@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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