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9.05.21 16:05 |
김형석 교수의 ‘백년을 살아보니’ 강좌 열려
2019/05/09 15:0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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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포럼, 어버이날 맞아 노년을 위한 포럼 기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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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21세기포럼(이사장 홍순모 장로)은 지난 5월 8일(수) 낮 12시 부산 롯데호텔에서 제47차 정례포럼을 개최했다. 어버이날을 맞아 기획된 이번 포럼은 김형석 교수(연세대 명예교수)가 강사로 나서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주제로 열렸다. ‘희망과 사랑이 있는 이야기’라는 부제의 강좌는 양한석 부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김형석 교수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나타내듯 청년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참석자들이 자리했다.
1920년 평양에서 출생한 김형석 교수는 강의에서 “사람들이 우리의 인생을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빈손으로 오는 것은 맞지만 빈손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나를 위해서, 내 소유를 위해서 사는 것은 남는게 없어 빈손으로 간다. 그러나 더불어 살며 일하는 것은 행복”이라면서 “예수님께 목적을 배우고 방법을 배우고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산다면 우리의 하루하루가, 나이가 들수록 소중한 인생을 살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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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강사로 나선 김형석 교수(연세대 명예교수)의 강의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사람들은 인생이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간다고 말한다.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빈손으로 오는 건 맞지만 빈손으로 가지는 않는다. 똑같은 생활을 하는데 한쪽에선 빈손으로 가는 것 같고, 다른 한쪽에선 빈손으로 가지 않는 것 같다고 한다. 오늘 여러분께 2가지를 말씀드리려 한다.
사람들에게 아침부터 왜 이렇게 열심히 뛰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경제 문제이다. 돈을 벌기 위해, 사회적으로 경제 발전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말한다. 마태복음 6장에 보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데, 기독교 인생관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다 그 문제를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너희는 그 문제 때문에 구속받거나 그게 인생의 목적, 전부가 아니란 것을 깨달아야한다고 말씀했다.
사람들이 ‘무소유’에 대해 말하는데 ‘무소유’는 없다. 먹고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제 경우를 살펴보면 30대 중반에 연세대 교수로 가게 되었다. 당시 교수가 되면 기초생활이 가능했다. 먹고 사는 것, 자녀들의 교육까지는 가능했지만 저는 그렇지 못했다. 3.8선을 넘어오면서 빈손으로 왔기에 가진게 없었다. 6-7년 동안 겨우 기반을 닦았다고 생각했는데 6.25전쟁이 났다. 전쟁이 끝나고 나니 집도 없고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아들딸 구분 말고 둘만 낳아 잘 키우자는 슬로건 아래 인구정책이 펼쳐졌는데 저는 6자녀를 키웠다. 게다가 북한에 있던 동생 3명과 어머니가 오시게 되자 나 혼자 봉급을 받아 10명의 부양가족을 먹여 살리다보니, 얼마나 가난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난의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했다. 당시 교수들은 타 대학에 출강하면서 추가 수입을 벌 수 있었다. 서울대를 갔는데 국립대학이 되어서 사립대학의 반 밖에 안되어 그만두고 고려대, 숭실대, 야간에 운영하는 대학을 다녔다. 여러 곳에서 강의를 했지만 수업을 대충할 수 없었기에 다른 교수들보다 배의 노력을 했다.
한번은 문제가 생겼는데 대구지역 중고등학교 교사 600-700여명이 모인 곳에서 강의 제의가 왔다. 같은 날 이미 삼성그룹에서의 강연이 약속되어 있었다. 교통편, 강사료 등을 고려했을 때 삼성그룹에 가고 싶었고, 가치를 고려했을 땐 대구에 가고 싶었다. 결국 삼성그룹에 전화해서 대구에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양해해 주었다. 그런데 그날 대구에 갔다가 오면서 지금까지의 내 경제관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까지는 수입을 목적으로 일을 했다. 그래도 열심히 일했기에 후회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았다. 앞으로는 돈을 위해 일하지 않고 무엇이 더 소중한지에 일의 가치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신앙인다운 자세이고 교육자다운 자세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부터 수입이 아닌 가치를 쫓아 살다보니 15년쯤 지나자 내 생활 자체가 변화되었다. 돈을 위해 일을 하면 돈과 더불어 일도 끝난다. 일의 가치를 찾다보니 일이 일을 만들고 더 많은 일을 하게 만들고 수입도 더 많이 생기게 되었다. 그렇게 사니 삶의 보람도 있고 더 안정된 삶을 살았다. 소유를 위해 살면 빈손으로 가지만 일의 가치를 위해 사니 빈손으로 가지 않는다.
70대후반 80이 가까워 오자 생각하게 되었다. 일의 가치를 따지는데 일의 목적이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강하게 느꼈다. 내가 그 일을 함으로써 많은 사람이 더 인간답게,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다.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문화도 모든 것이 그 목적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셨다. 80이 되고 나서 달라졌다. 내가 돈을 쓰더라도 그 일을 내가 해야겠다. 내가 비용을 내는 건 아무것도 아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보람되고 행복되게 사는 것이 목적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두 번째 문제는 우리 이야기다. 안병욱 교수와 김태길 교수는 저와 나이도 같고 활동분야도 비슷하고 전문분야도 같다. 셋이서 50년간 같이 지내며 사람들이 ‘철학계 삼총사’라고 말했다. 15년 전에 셋이서 대화를 했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변화되어 오래 살고 90세까지 사는 사회가 오는데, 우리 인생도 계란 노른자처럼 행복하고 보람되는 나이가 있었을텐데 그게 몇 살때이까라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50세쯤이 아닐까 생각했다. 선진국은 가능하지만 우리는 후진국가라 50세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50대는 열심히 일하는 때이기도 하고, 50에서 인간적인 성숙도도 모자라고 사회 존경도 받지 못하고 지도자의 자격도 갖추지 못하니까 50은 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60쯤 부터면 괜찮을 것 같다. 공자도 말한 것처럼 60에 철든다. 철든다는 것은 내가 나를 믿을 수 있을 때가 철드는 때다. 80이 되어도 나를 믿지 못하면 철들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60에 철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60에 철이 들어 75세까지 성장한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나이는 그 때다. 그 다음은 얼마나 연장하느냐가 중요하다. 노력하면 75세, 90세까지 가더라. 90세가 넘으면 공통점이 없다. 60세에 사회인으로 다시 출발해 75세까지 성장해 90세까지 가는 것이다. 60세가 넘어 난 늙었다고 끝나면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일본 사람들은 60세가 되면 꼭 일을 해라고 말한다. 그리고 90세까지 일을 하고 공부해라고 했다.
제가 중학교에 가게 되자 아버지께서 할 말이 있다고 하셨다. 이제부터 네가 긴 인생을 살게 되는데, 항상 나와 내 가정 걱정만 하면 가정만큼만 성장한다. 친구와 더불어 직장에 일하면 직장의 주인이 되고 사회의 지도자가 된다. 항상 민족과 국가를 걱정하면서 살게 되면 너도 모르게 민족과 국가만큼 성장한다고 말씀하셨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생각하니 아버지 생각이 기독교적 정신이다. 가정이 먼저 공동체가 되고 교회가 다음 공동체가 되고 하나님 나라가 공동체가 된다.
제가 살다보니 아버지 말씀이 그대로 이뤄지는 것을 보았다. 교수들 중 내가 학교와 교육을 위해 무엇을 할까 보다 대학에서 얼마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분들은 65세가 되면 대학이 그들을 잊어버린다. 그렇게 끝난다. 그러나 대학을 걱정하고 학문을 사랑한 교수들은 대학의 주인이 된다. 학장, 총장이 되고 어느 과의 교수라는 이름이 대학과 더불어 남는다. 인생의 의미를 찾게 된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가끔 나라와 민족을 걱정하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정년퇴직을 하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다 일을 한다. 사회의 요청에 의해 일을 한다.
내가 나를 위해서 내 소유를 위해 사는 인생은 남는 게 없다. 돈을 모았다, 유명해졌다는 것은 다 날아갈 이야기고, 나를 목적으로 사는 것은 남는 게 없다. 그것은 빈손으로 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더불어 살면 행복하다. 함께 더불어 살며 일하는 것이 행복이다. 마태복음 5, 6, 7장이 전부 인간관계 이야기다. 더불어 사는데서 행복을 잃어버리면 행복을 찾을 곳이 없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행복해야한다. 민족과 국가를 위했던 걱정이, 마음이 남는다. 세상 사람들은 업적이 남길 원한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업적이 아니라 마음이 남는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희망이 되었듯이 많은 사람이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게 도와주는 사랑이 예수님의 마음을 배워 가능하게 된다. 이는 후대에게, 민족에게 희망이 된다. 이런 소중한 일은 예수님의 사랑을 배운 사람들이기에 가능하다. 모든 사람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까라는 인생관을 묻는다. 예수님께 목적을 배우고 방법을 배우고 그 결과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한다면 우리 하루하루가, 나이가 들수록 소중한 인생을 살게 되지 않을까? 나이가 들수록 내 인생이 보람있었다, 행복했다는 자부심과 감사한 마음을 함께 가지길 바란다.

[ 오혜진 ohj1113@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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