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9.06.27 10:52 |
교회를 경로로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에 파급
2019/04/12 15:4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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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은 미완의 운동 - 민주, 통일의 과제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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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얽힌 문제 삼일운동에서 해법찾아
지난 3월1일은 삼일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교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예배 중에 독립기념문을 낭독을 하는가 하면 교인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당시를 재현하기도 했다. 한 달이 지난 오늘은 어떤가? 삼천리 방방곡곡에 하나가 되어 메아리 친 외침이 무색하게 나라는 여전히 동강나고,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갈라져있다. 저자는 100년 전 일어난 이 운동의 정신을 세계열강의 외세에 맞선 독립운동이자 대중민주주의운동, 일제의 폭압에 맞선 비폭력 평화운동, 민족정신과 시대정신이 만나 한국근현대사의 중심과 뼈대를 이룬 운동으로 규정하면서, 한국근현대사의 정신과 철학의 꼭대기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실타래처럼 얽기고 설긴 문제의 해법을 삼일정신에서 찾고 있다.
     
|| 저자 박재순은 어릴 때부터 새벽예배도 열심히 다닐 정도로 신앙생활에 열심이었다.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한신대학교에 편입하여 안병무 교수로부터 성서신학과 민중신학을 박봉랑 교수에게 바르트와 본회퍼를 배웠다. 한국신학연구소에서 국제성서주석서를 번역하였으며 대학시절부터 함석헌 선생의 씨알사상에 매료돼 씨알사상연구회 회장을 지내고 재단법인 씨알사상연구소를 설립한 이래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씨알사상을 알리는 일을 평생의 소명으로 삼고 있다. 저서로는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 《한국생명신학의 모색》 《예수운동과 밥상공동체》등이 있다. 홍성사, 2015. 10,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3.1운동과 민족대표 16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엮음
《세상을 밝힌 한국기독교 저항사, 저항하는 그리스도인》 강성호 지음 / 복있는 사람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현호 기쁨의집 대표, 김형기 팔복교회 목사 
   
기독교는 앞장섰고,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
“ 당시 기독교인은 한국인구 1,600만명 중 20만명에 불과했으나 수많은 지식인과 지도자들, 학생, 학교와 교회를 중심으로 삼일운동에 앞장섰고, 삼일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
 
3.1운동은 기독교 민족운동
김길구 3.1운동 100주년기념사업으로 전국이 떠들썩할 때를 피해서 차분히 기독교적 의미를 되새겨 보자는 취지로 한 달 늦게 마련했습니다. 100주년을 맞았던 소회가 어떠했는지?
김형기 나라 안팎에서 여러 어려움에 직면한 시점에 맞이하는 100주년이라 더 많은 생각을 했어요. 기독교가 난국에 국민통합의 주역이었는데, 지금은 어떤 모습인지 스스로 반성하며 지냈습니다.
김현호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행사로 기념하는데 비해 기독교출판계는 삼일운동의 평가에 인색한 편이어서 아쉬웠습니다. 제대로 된 저술은 두어 권 밖에 없어서 선정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김길구 목사님은 선정 작업을 할 때 적극적으로 이 책을 추천하시더니 막상 읽으시고는 많은 문제점을 지적하셨는데‥어떤 점이 문제였나요?
김형기 저자와는 친구사이인데 막상 기독교보다는 천도교의 영향력을 크게 평가했고, 결론 부분에서는 씨알사상에 편향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신학자이기도 한데 3.1운동에 대한 구속사적 언급이 미흡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김현호 이 책은 교회사가 아닌 한국사의 맥락에서 이 운동의 정신과 철학을 말하고 있어요. 이 운동의 위대성은 위기의 국면에 종교의 차이를 넘어 온 백성과 기독교와 천도교와 불교가 하나가 되어 이룬 세계사적으로도 드믄 비폭력 평화운동이라는 점입니다.
김길구 삼일운동을 유영모, 함석헌 선생의 민(民)의 개념 즉 씨알들이 스스로 함께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열려고 한 운동으로 보았는데, 이들은 한국적 언어로 기독교를 말하는 기독교사상가로서 기존의 교리에 억매이지 않아 일반교인들이 읽기에는 다소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형기 3.1운동은 민족사의 범주를 넘어서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대 사건입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밝힌 바와 같이 중국의 5.4운동, 인도 간디의 비폭력 대영 항쟁과 필리핀, 베트남, 이집트의 민족운동에도 영향을 준 것입니다.
김현호 이 책은 2.8독립선언에 대한 언급 없이 바로 3.1운동으로 들어갔어요. 아시다시피 2.8독립선언은 적국 일본의 한복판 동경YMCA회관에서 기독교인들이 주동이 되고 춘원 이광수가 선언문은 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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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구 저자는 당대의 천재라던 30세 최남선이 쓴 명문 3.1독립선언문의 작성에 영향을 끼친 이로 손병희 선생을 지목합니다. 그가 준 3대 지침은 평화적이고 온전하며 감정에 흐르지 않을 것과 둘째 동양의 평화를 위하여 조선의 독립이 필요하며, 민족자결과 자주독립의 전통을 바탕 한 정의와 인도에 입각한 운동을 강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으로 기독교인인 안창호의 민족정신의 주체적 자각과 실천을 통해 국가주의를 넘어 세계평화를 지향한 교육입국운동도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김형기 당시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들은 청교도적인 신앙관을 가진 분들이었죠. 밖으로는 선교를 위하여 정·종분리를 주장했으나,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이주한 선조들의 개척정신을 경험한 이들의 가르침은 나라를 빼앗긴 이 나라에 복음이 혁명적 힘으로 작용하여 강인한 독립심과 엄격한 도덕성, 부정에 대한 항거에 저항할 수 있는 추동력이 됐다는 평가도 있어요. 또한 주권재민과 공화정을 추구한 민주정신은 전적으로 기독교의 영향이었다고 봅니다.
김현호 성서는 어떤 면에서 저항의 책입니다. 구약성서는 이런 저항의 사례집이라고 할 만하지요. 이집트에 맞선 모세, 폭군으로 전락한 사울왕에 저항한 다윗처럼. 한국성도들은 당연히 일제의 침탈과 박해에 저항한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지요. 독립선언문에 이름을 올린 33인 중 16명, 운동을 촉발한 48명 중에 그 절반이 교인들이었다는 사실이 말해준다고 봅니다.
김형기 그럼요. 기독교 십자가 신앙의 배경 없이 거국적 비폭력 대중항쟁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물론 온 겨레가 함께한 거사였지요. 총독부의 축소된 통계에 따르더라도 시위에 참가한 인원이 전 국민이 1,600만 명이 채 안되었는데 200만 명이 넘고, 전국 36개의 군 가운데 35개 군에서 참가한 기록과 당시 선교사들의 리포트에 ‘예수를 믿는다는 말과 독립시위에 참가했다는 말은 지금 한국에서는 동의어로 쓰인다’ 고 보고할 정도였으니까요.
 
예수를 믿는 것과 독립시위는 동의어
김길구 조선왕조가 망하고 10년이 안된 시점에 일어났고 그것도 고종의 장례에 참여한 군중시위 이후 다시 과거의 군주제로 돌아가자는 움직임도 없이 비폭력 평화운동으로 공화정을 외치고 자유와 평등, 그리고 세계평화를 주장한 것은 대단한 선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형기 그래서 저자는 한국근현대사의 꼭대기에 삼일운동이 있다는 것이지요. 위기의 시대에 우리민족의 정신과 열망이 가장 깊고 높이 들어나고 실현됐다는 주장입니다. 세계사에서 이런 예는 없었지요. 우리의 민족 지도자들이 100년 앞을 본 것이지요.
김현호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의 기독교인들의 면면을 보면 기독교와 천도교의 가교역할을 한 남강 이승훈, 가난과 싸우며 수형생활과 교회부흥을 이끈 이필주 목사, 권서인으로서 한국최초의 목사 7인중 한분인 양전백 목사, 대표적 영적 지도자 길선주 목사, 민족목회자 동오 신흥식, 대금업자에서 민족대표가 된 춘헌 이명룡 장로, 후에 기독교 친일의 상징이 된 정춘수, 조선에 YMCA운동과 투옥지사로서 선교사의 생을 다한 최성모 목사.
김형기 그 외에도 신앙적 결단으로 민족대표가 된 신석구 목사, 민족대표에서 임정요인으로 구국운동의 실천가 김병조 목사, 법정에서 대한이 독립하면 공화정부가 되고 열강의 대열에 서게 될 것이라고 한 유대여 목사, 동학에서 기독교로 귀의한 오화영 목사, 조선독립은 예수생명의 힘으로 된다고 한 근곡 박동완 목사, 당시엔 누구보다 열심이었지만 후에 친일파가 된 박희도 목사, 3.1운동 거사의 가교 입법위원 이갑성 선생, 북으로 간 김창준 목사였습니다.
김길구 3.1운동의 기독교 역할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어요. 이를테면 손병희에게 거사자금 500원을 받은 것과 공식조직을 통해 3.1운동 참여를 공식적으로 결의한 사실도 없이 개인자격으로 참여했다든지 선교사의 반대로 거사 장소를 태화관으로 옮긴 일 등 입니다.
김현호 교회사학자 민경배 박사는 ‘기독교회가 이 운동의 근원적 통로요, 맥락이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교회가 가진 국내의 뚜렷한 전국적 조직, 해외와의 유기적 네트워크를 통한 실질적 활동을 들고 있어요.
김형기 서명에 참가한 16명의 대표 중에 세분은 당일 참석을 못했고, 다른 종교와의 연대에 미온적인 기류도 있었지요. 천도교가 이전의 동학의 정신을 계승하였으니 서양 문물을 적대시하고, 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무시할 수 없었겠지만 나라를 위해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미완의 운동
김길구 흔히들 한 세기를 지난 3.1운동을 미완의 운동이라고 합니다. 무엇이 끝나지 않았을까요?
김현호 일제강점과 분단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약소국의 소홀한 내부개혁 때문이지요. 북핵사태를 보더라도 우리의 선택권은 매우 제한적이죠. 그런 면에서 우리민족의 자주적인 평화통일의 묵은 과제가 있습니다.
김형기 민족의 자주독립,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 세계평화에 대한 우리의 비전을 천명한 3.1운동의 성공과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겠죠. 교계가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하나 되어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이루어 반듯한 나라를 세우는 것이 이 시대의 과제가 아닐까요?.
김길구 이만열 교수는 ‘3.1운동은 기독교와 민족 운동의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합니다. 기독교운동의 측면은 정의, 자유, 평화에 기초한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확대, 민족운동의 측면은 자유와 평등, 해방을 목표로 한 독립국가와 민족자주에 있다 고 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저자인 최현범 목사님을 모시고 신간 《교회 울타리를 넘어서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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