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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기독교이야기] 부산일신학교에서의 만세운동(2)
2019/03/14 10:2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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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교수 copy.jpg
 당시 만세사건에 대해 경상남도장관이 총독에게 보낸 보고는 다음과 같다.
 
慶尙南道 長官 報告
 
電受 大正 8年 3月 12日
 
總督 宛
 
간밤에(昨夜) 부산진에서 조선인 약1백50명이 집합 소요코자 하는 것을 경찰 헌병의 기민한 진압에 의하여 약 10분만에 해산함. 구금한 자 중에는 영국부인 선교사 2명이 있음. 타 선교사의 신립(申立)에 의하면 일신여학교 기숙사 생도가 무단외출하여 소요에 가담함으로 이를 데려가기 위하여 군중 내에 들어갔다고 함. 경찰에서는 검사의 검찰을 준하여 처리한다 함. 보통학교 생도는 가담하지 않음.
일신여학교에서의 시위는 교사인 주경애와 박시연의 영향이 컸다. 주경애는 1917년 서울의 정신여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부임했고, 기장면 송정 출신인 박시연은 1918년 부산진 일신여학교를 제6회로 졸업하고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특히 주경애는 민족정신이 확고한 인물로서 학생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하였고,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했던 여성이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임진왜란 때의 이순신 이야기, 진주 논개의 의로운 사적 등을 통해 학생들에게 애국심을 고취한 여성이었다. 그는 일신여학교 교사로 일하는 한편, “우리가 빨리 독립하려면 한사람이라도 빨리 문맹을 없애야 하며 문화수준을 높여 실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확신하여 동래에 여자야학 강습소를 설치하여 박시연과 함께 봉사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런 애국 정신이 일신여학교에서의 만세운동의 정신적 힘이었다.
호주선교사들은 외국인 선교사로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것은 아니지만 영향을 준 것이 분명하고 만세를 부르도록 격려한 것은 인정된다. 일본측 자료에서는 두 여선교사의 역할을 배후조정자 이상으로 간주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부산진 소재 기독교 경영 일신여학교 한국인 여교사 임말이(林末伊) 외 생도 1명을 취조한 바 동교 교장인 여선교사 데이비스(Davies)와 한국인 여고사 주경애가 주동이 되어 교원 일동에게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하고 있으니 우리 학교도 거사하자’고 협의하고 생도들에게 전달하여 3월 10일 동교 고등과 생도 11명이 기숙사에서 한국기 50개를 제작, 이를 동교 기숙사감 메제스에게 넘겨 준 것을 진술하였음으로 동인을 취조한바 깃대 31본을 생도에게 제공한 사실을 자백, 나아가서 가택수색을 한 결과 기수사 옆 쌀겨 있는 곳에 한국기를 발견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기를 제작한 붓도 압수하였다. 그리고 데이비스와 동료 여교사 호킹 양인은 거사당일 ‘부르시오! 만세를 부르시오’라고 외치면서 생도를 지휘, 생도는 일제히 만세를 부르면서 행진한 사실을 목도한 사람이 있었다.”
일제의 식민지배와 탄압이 좌천동 주민들의 저항의 이유였다. 당시 부산의 인구는 6만1천45명으로 한국인이 3만2천856명, 일본인 2만8천12명, 기타 외국인 187명이 거주하고 있어 일본인이 46%를 점하고 있었고, 이들의 고압적인 횡포와 조선인에 대한 멸시는 항거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당초에는 부산상업학교와 함께 시위하고자 했었으나 시위 움직임을 탐지한 경찰과 학교가 11일 임시휴업을 단행하고 학생들을 귀가시켜 일신여학교의 단독 시위가 되었다. 일신여학교에서의 시위로 경찰은 학교에 임시 휴교령을 내렸고 시위운동을 차단하려 했으나 시위는 확산되어 3월 13일 동래고보 봉기, 3월 18일 동래범어사 학생의거, 3월 29일에는 고포시장 의거로 이어졌다. 3월 11일의 만세사건으로 휴교령이 내려졌던 일신여학교는 4월 1일 개교했으나 110여명의 학생 가운데 등교한 학생은 절반인 55명에 불과했다. 비록 수업을 재개했으나 다른 지역의 기독교 학교와 마찬가지로 일신학교에 대한 감시는 더욱 심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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