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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섭교수] 3·1 운동과 기독교, 그리고 나
2019/02/20 11:1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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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다. 한국 기독교는 3·1운동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 민족대표 중 최대 다수가 기독교인이었고, 각 지역의 교회들이 전 민족적 거사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독립선언식의 식순이 기도로 시작되었고, 참여 학교들도 기독교 계열의 학교가 많았다. 그래서 3·1운동은 교회의 사회참여로서의 자랑스러운 기록으로 빠지지 않고 회자되어 왔다.
하지만 3·1운동이라는 격랑 앞에서 조선의 기독자들은 각자 나름 고뇌에 찬 결단을 내려야 했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먼저 민족대표 33인중 한 분이었던 길선주 목사는 1907년 장대현 교회에서 있었던 부흥회에서 회개를 촉발시켜 평양대부흥을 일으킨 분으로 알려져 있지만 민족독립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진 독립운동가이기도 하였다. 젊은 시절 여러 종교에 심취하였다가 1897년 예수를 믿은 후 독립협회 평양지부설립의 발기인이 될 정도로 복음전파와 사회참여에 균형을 갖춘 분이었다. 이승훈을 통해 3·1운동의 독립선언서에 날인했으나 ‘태화관 모임’에는 불참했고 그 후 자진 출두하여 1년 7개월의 미결구금상태에서 재판을 받다가 무죄로 풀려나는 바람에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다가 2009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뒤늦은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그러나 윤치호 박사는 길 목사와는 다른 길을 갔던 인물이었다. 1887년 그의 영혼의 요구를 만족시켜주지 못한 유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한 후 미국 유학 등을 통해 일찍이 개화사상을 받아들여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지도자로서, 또 외교가, 언론인, 교육가로 활동하면서 105인 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3년간 투옥되기 까지 하였으나, 3·1운동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을 가졌었다. 당시 그도 다른 독립 운동가들로부터 국민대표로 서명해 주길 요청받았으나 이를 거절했다. 이유는 순진한 젊은이들을 선동하여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것이었다. 그 후 그는 일제 말기에 ‘독립무용론’과 ‘내선일체’(內鮮一體)에 동조하면서 귀족원 의원이 되어 결국 친일파의 거두라는 오명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길선주 목사는 무죄판결을 받은 이후 1928년 경북 안동에서의 종말론 설교가 대중을 선동한다 하여 20일간 투옥되기는 하였으나 그의 삶에서 ‘독립운동’의 흔적은 뚜렷이 찾아볼 수 없는 것 같다. 독립정신을 잃어버린 건 아니겠지만 아마도 3·1운동의 실패는 그로 하여금 종말론 신앙에 천착하여 평양을 중심으로 북간도와 전국을 돌면서 전도에만 매진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한편, 윤치호 박사는 3·1운동 불참이후에도 끊임없이 자조(自助)의 입장에서 실력양성론의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리고 장장 60년 동안 써내려갔던 그의「일기」속에서 식민지체제라는 한계 내에서 조선인의 권익신장을 이루려는 삶의 고뇌와 식민지의 지식인이자 기독인으로서의 ‘양비론’(兩非論)적인 내적갈등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린 종종 한 인물에 대한 판단, 한 사건에 대한 평가를 너무도 쉽게 내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좁은 식견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은 소문에 기한 속단은 오판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특히 혹독한 일제치하에서, 그리고 3·1운동이라는 큰 사건 앞에서 그 시대의 기독교인들 각자가 내린 결단들을 우린 무거운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윤치호 박사가 그의 일기에서 자주 되뇌던 말이 그의 일기를 묶은 책의 제목이 되었다.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 이 말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굳이 ‘협력’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지만 ‘저항’을 지지하지도 않았을 나에게 지금 이 시대의 모든 난제 앞에서 너무 성급한 판단을 내려놓고 긴 호흡을 가다듬으라는 쉽게 수긍하긴 어렵지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잠언(箴言)과 같은 말씀으로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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