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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림 유계준 장로 가문 순교자의 피가 흐른다(2)
2019/01/22 12:5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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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최초의 인권, 저항 조직 부산인권선교협의회 결성
삼일운동이 일어난지 100년이 되는 2019년도, 유계준 장로가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고 주기철 목사, 조만식 장로 등 기독 인사들이 조국 독립을 위해 분단이 일어났던 100년 전 평양 땅이었다면, 그 당시 30대 청년 고 유기선(유계준장로의 3남) 장로는 그의 선친의 조국에 대한 독립을 위한 애착이었던, 100년이 지난 대한민국 안에 일어났던, 유신 독재 정권에 항거하여 자유 민주 국가로 만들기 위해 한 몸을 던졌던 유기선 장로가 행동했던 1970년~1980년 사이에 부산 민주 항쟁의 밑거름과 영양분을 제공한 어른이다. 바로 부산에 뜻있는 기독교 목사, 장로들이 자장분에 기름을 주고 용기를 주었던 불쏘시개 역할을 했던 그 중심에는 부산시 중구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끼고 있는 중부교회와 교회 바로 앞 도로변에 위치한 “유기선 소아과의원” 간판아래 부산교계 뜻있는 민주인사 ‘故최성묵 목사, 송기인 신부, 故오수영 신부, 故김광일 장로 변호사, 故임기윤목사, 故우창웅 교수, 故심응섭 목사, 박광선 목사, 박효섭 목사’등 불과 10여명 미만의 민주인사들이 모여 1974년 5월 24일 ‘부산 인권 선교 협의회’란 부산 최초 저항 조직을 신·구교를 초월하여 조직한 범 민주 인사들의 레스탕 운동의 효시가 되어 결성 한 장소가 아무도 모르게 유기선소아과 원장 집무실에서 결성이 이루어졌다. 그때만 해도 주·야로 정보과 형사와 중앙정보부 부산 분실, 보안사 부산 지부 관계하는 인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살폈던 시절이었다. 하물며 필자인 교계 기자한테도 무엇을 하는 회합인지 모르게 단순히 그저 친목모임으로 모이는데 행여나 이상하게 방해 할까봐 필자보고 밖에서 동태를 좀 살피라고 일러 주었다. 그곳에서 무엇을 의논하는지를 전혀 모르게 비밀에 붙여진 모임이었다. 그러니까 같은 교회 출석하는 집사인 필자보고 별거 아니고 하도 방해를 하니 시선을 따돌리기 위해 “이날 유기선 장로 생일 초청 자리”라고만 알려 주고는 비밀에 붙여진 것이다. 한 2~3일 지나서야 모임의 성격과 이름, 행동 지침을 알 수 있었다. 귀신도 모르게 결성한 이 모임 때문에 정보기관에서는 관계 출입하는 인사들에게 시말서를 쓰게 하여 불이익을 당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들었다. 이 모임을 통해 주 목요기도회가 정기적으로 모여 전국 곳곳에서 초청된 중요 강사로는 ‘문익환 목사, 그의 동생 문동환 목사, 한완상 장로, 서남동 교수, 김동길 교수 등 수도권에서 유신독재 정권과 투쟁하는 민주인사 거의 대부분이 부산 중부교회에서 매주 목요, 금요기도회에 학생, 청년, 평신도들이 줄을 이어 참석하여 민주 항쟁의 불을 붙여 나갔다. 집회하는 날에는 교회 주변 길목에는 각 대학 학생처장, 과장들이 누가 들어가나 하고 일일이 대학마다 체크를 하는 바람에 여기에 들어가는 학생들은 옷이며 머리와 마스크를 하는 변장으로 출입하는 광경이 눈에 띄어 누구인 줄 몰라 학생 주임, 과장들이 확인하느라고 쩔쩔 매는 것도 목격 할 수 있었다.

▲유기선 장로 결혼식 비화
고인이 된 유기선 장로와 그의 부인 박화선 권사(부산영락교회)와의 결혼식날 일화가 유명했던 사실이 있다. 부인 박화선 권사는 일본 동지사대학을 나왔던 여성 엘리트 규수였다. 기선은 아버지한테 “제가 하는 결혼이니 제 뜻대로 할 수 있게 해 주신다면 결혼하겠습니다. 그러나 양가 부모님의 생각이 중심이 되고 저는 그저 따라야만 하는 결혼이라면 저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겠습니다”, “도대체 네 생각이 무엇이냐? 네 뜻대로 하겠다는 말이 무엇인가?”, “보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 말씀 드릴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완강히 버티었다. 기선의 결혼식날이 왔다. 1)예물 보내는 허례와 낭비는 일체 배제하고 2)결혼식날 신랑, 신부 승용차 일체 거부 3)축하금 사절 4)결혼식 날짜는 1938년 9월 29일 오후 5시(이유는 9월 29일은 기선의 생일, 오후 5시는 큰 형님이 계시는 평양 기독병원 내과과장이 환자 돌보는 4시까지 돌보고 올 수 있도록) 5)신혼여행은 없음. 그들 두 부부는 목사님의 기도로 시작하여 축사, 축하는 없었는데 하객 중에 손을 높이 들고 나오는 분이 “나는 조만식이올시다. 오늘과 같은 결혼식은 처음보고 정말 모범적인 결혼식입니다”고 즉석에서 멘트 하였다. 결혼식을 마치고 집에 와서는 신부와 마주 앉아서 “먼저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조국을 위해 애국가 4절을 틀리지 않고 부르는게 아닌가? 그때는 애국가를 부르면 구속되는 때에도 아랑곳 않고 신혼 초야를 이렇게 보내게 된 것이다. 마칠 때 즈음 애국가 4절까지 불렸던 것은 위로는 하나님을, 아래로는 조국을 사랑하라는 뜻을 심어주었다는 특이한 결혼식이었다.
유기선 장로는 평양에 있을 때에는 아버지 유계준 장로를 도와 약국(반도제약회사)을 경영 종사을 하여 월남하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법조 길을 걷지 않고 의사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결국 의사로의 한 평생을 보낸 것이다. 어느 날 필자가 만난 자리에서 “장로님은 왜 법 전공을 하면서 판·검사 길을 걷지 않고 의사 에 종사 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
유 장로 왈 “하도 대한민국 국내 정치하는 분들 대부분들 인사들이 유명 대학 법대 출신들이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이따위 정치하는 분들 보고 구역질이 나서 이래 안되겠다하여 의사자격 시험에 도전하였다”고 사연을 들려 주었다. 그럴 것이 이 나라에 중요 정치하는 분들의 면면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유명 대학 법대 출신이고 판·검사, 변호사 사법계인사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유기선 장로의 가훈은 ‘기도하고 노력하여 순교의 피를 빛내 보자’ 그의 이미지는 카이저 수염을 하고 다녔다. 키는 162센티이고 마치 등소평과 같은 스타일이었다. 늘 아침 새벽기도하고 오면 멀지 않는 용두산공원에 올라가 한 바퀴 유산소 운동으로 체력을 단련시켰다.
하루는 우연하게 필자와 마주 앉은 점심시간에 부산영락교회가 분규로 매우 혼란스럽던 시절이었다. “장로님 고현봉 목사님이 고명자 집사와의 그런 이상한 소문을 믿습니까?”라고 엉뚱한 질문을 던진 일이 있다. 그는 “나는 그런 소문에는 관심이 없고, 고 목사님이 월남하여 양딸로 입양한 사실은 충분히 이해한다. 홀로 있는 목사님께 딸이 봉양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런 이상한 관계는 추호도, 생각도, 그런 짓은 절대 안 할 어른으로 존경한다. 좀 고집이 세고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잘 듣는 교인들의 소리에 현혹 된 것이 탈이었지 그만한 목사님이 별로 없지 않는가? 너무 부정적으로 여기지 마시오”라고 딱 잘라 말하는 것 듣고는 대인다운 어른으로 여겼다. 결국 유기선 장로는 훗날 고 목사와 결별하고 통합 부산노회 산하 부산영락교회 하단에 있는 교회에서 부인 박화선 권사와 함께 원로 은퇴로 하늘나라로 소풍 갔다.

신이건 장로
<대동강의 십자가 책>(저자 김호민 목사)에서 참조하고 70년대 후반은 역사의 현장에서 지켜 본 팩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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