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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오늘이 영원을 향한 비범한 하루
2019/01/22 11:5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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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엎은 힘’은 믿음 안에서 구별된 일상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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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세기 평범한 일상으로 본 그리스도인의 하루

로버트 뱅크스의 1편 《1세기 교회 예배이야기》에 이은 후속작으로 작년 8월 다른 나라에 앞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출간되어 관심을 끌었습니다. 1편에 이어 2편도 본문 60쪽 안팎의 정말 얇은 책으로 소설과 삽화로 1세기 로마의 일상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 생동감이 느껴진다. 분량이 적다고 얕봤다는 큰 코 다친다. 다루는 주제가 다양하며 주제도 만만치 않아 심도 있는 논의와 논쟁이 필요하다. 그래서 소그룹 모임의 교재로도 유용해 보인다. 이 책을 간증으로 읽었다는 역자는 저서의 “나의 새로운 신앙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할 최선의 방법은 가족과 일과사회생활이 뒤섞인 아주 전형적인 하루를 묘사하는 것“이라는 말에 필이 꽂혔단다. 그 일상이란 가족, 신분, 자녀, 학교, 옷, 목욕, 헤어스타일, 장식, 부적, 동성관계, 부부관계, 음담패설, 젠더, 직업, 신용, 가난과 부, 재난, 정치, 벤처, 금융업, 비즈니스협력, 직원 징계, QT, 구별과 어울림, 우상, 박해, 변화, 구제, 예배 등이다. 뱅크스가 안내하는 타임머신을 타고 따라가다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도 있지만 낯선 1C 로마의 역사와 풍경, 그리고 문화를 만난다. 물론 문화탐방 하는 가벼운 기분만으론 안 된다. 그 시대적 배경이 폭군 네로가 기독교인 박해의 명분으로 써먹은 로마대화재를 전후한 살벌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덮을 즈음 매일의 일상에서 생각 없이 소비하는 하루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나는 과연 그리스도인으로 하루를 살고 있는가?’

◈ 《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이야기》 || 저자 로버트 뱅크스(Robert Banks)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신약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신학자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저술과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1세기 교회예배 이야기》 《바울의 공동체 사상》 《일상생활 속의 그리스도》 등이 있다. IVP, 2018. 6,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1세기 교회예배 이야기》 / 로버트 뱅크스 / IVP
《십자가와 부활을 사는 일상 영웅》 / 팀 체스터 / CUP
《일상, 하나님의 신비》 / 마이클 프로스트 / IVP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사람들》 / 래리 허타도 / 이와우
《로마와 그리스도교》 / 김덕수 / 홍성사


기독교 교양 읽기 Ⅱ 〈1〉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현호 기쁨의집 대표, 김형기 팔복교회 목사

2015년 3월부터 총 45회 연재된 기독교교양읽기가 Ⅱ로 새롭게 출발합니다. 그동안 수고하셨던 김수성 교수께서 개인사정으로 하차하시고, 경주 팔복교회 김형기 목사가 함께 합니다. 목사님은 서울대에서 교육학을, 장로교신학대학원과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하셨으며 1970년 후반 부산에서 양서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좋은 책읽기운동을 주도한 바 있습니다.

로마와 기독교 문화의 차이를 보여주는 책
김길구 이 책은 본 코너 30회에 게재된 《1세기 교회예배 이야기》의 후속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출간된 따끈따끈한 책으로 1편이 초대교회로의 회귀는 가능한가를 물었다면 이 책은 초대교인들의 하루 일상으로 우리를 초대하여 지금은 어떤지를 묻고 있습니다.
김형기 한 두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작은 책입니다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은 책입니다. 신약학자인 저자가 1세기 타임머신을 타고 신앙과 생활을 하나로 접목하는 life story를 소설형식을 빌어서 재현한 창의적인 시도가 돋보이는데 이를 통하여 성서에 기록된 말씀들이 생활과 동떨어진 말씀이 아닌 지금 이 시대의 말씀으로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현호 소설의 배경인 네로의 기독교인 박해의 빌미가 된 로마대화재가 AD 64년에 일어났으니 이교도였던 주인공 푸블리우스가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시기로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김길구 교세로 보면 12제자로 시작된 예수추종자들은 AD 40년경이 되면 1천 명이 되고 100년쯤 되면 1만 명 200년경에는 20만 명 300년에는 500~600만 명으로 증가합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궁극적으로 ‘세상을 뒤엎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매일의 삶 속에서 구별된 삶의 방식을 개발했기 때문이었다”. 고 합니다. 그럼 일상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김형기 우리가 직면한 개개인의 기호부터 가정생활과 자녀교육, 직장생활, 그리고 사소한 일거수일투족까지 기독교적 세계관과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그 믿음에 걸 맞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김현호 갓 믿은 주인공은 그의 가정부터 변화시킵니다. 당시 수직적 문화의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아내와 자녀의 관계도 상호존중의 방식으로 바꾸고, 자녀들의 교육적 차별을 없애고 세상풍조를 따르지 않고 가정을 중심으로 신앙을 계승합니다. 특히 노예를 재산으로 여기며 육체적 언어적 폭력과 성적학대의 갑질문화에서 노예를 공정하고 정당하게 대해 함께 식사하고 별도의 숙소를 제공하는 등 의 파격적인 대우와 ‘여러해 전에 해방시킨 몇몇 노예를 확대가족’으로 묘사한 부분은 초대그리스도인들의 노예에 대한 전향적인 사고를 볼 수 있습니다.
김형기 이 책은 철저한 고증을 통하여 당시의 사회상을 마치 드라마를 보듯 글과 삽화로 재현해 놓았는데‥당시의 의복, 목욕, 음식, 헤어스타일, 장식, 부적, 부부관계, 음담패설, 금융업 등의 깨알상식과 네로치세의 정치상황, 그리고 기독교인의 대처방법 등이 흥미롭네요. 특히 다신교 문화에서 가정 신단의 폐지와 로마인들의 남자 중심의 문란했던 성의식과 만연했던 동성애를 멀리한 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김현호 흥미로운 것은 만연했던 동성애의 원인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특이한 성향의 성적 친밀감에서 찾지 않고 여성차별적 시각에서 접근했네요. “여기에 난제가 하나 있다. 우리문화에서는 남자가 이성보다도 동성과 더 깊은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여긴다. (중략) 아내는 남자와 같은 지적 혹은 정서적 능력이 없으므로 완전한 우정이나 사랑을 발전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긴다.”는 대목입니다. 이런 불평등한 남녀관계를 수평적인 관계로 인식하고 권장한 초대교회는 분명 시대를 앞서 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noname010.jpg▲ 바울은 로마에 있는 우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미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강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그것을 먹음으로써 믿음이 약화될 수도 있는 사람들을 배려해야 한다고 단호히 말한다. <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본문 50~51p 중 만찬회장의 모습
 

‘세상을 뒤엎은 힘’은 믿음 안에서 구별된 삶
김길구 ‘실천적 무신론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입으로는 그리스도인인데 행동은 그렇지 못한 교인을 일컫는 말이지요. 이 50쪽 분량의 얇은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렇지 않은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 책의 장점 같습니다.
김형기 ‘나의 새로운 신앙이 내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할 최선은 방법은 가족과 일과 사회생활이 뒤섞인 아주 전형적인 하루를 묘사하는 것이다’란 말이 가슴에 와 닿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실천적 기독교인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리트머스시험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현호 초대받은 만찬장에서 이루어지는 신격화된 황제에 대한 헌주는 하나님만을 섬기는 기독교인이나 유대인들에겐 지지도 부인도 할 수 없는 불편한 자리였을텐데 책속에서도 그 상황을 애매하게 묘사했더군요?
김길구 동시대의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라고 했지만 성서 전체의 맥락으로 보면 불의한 권력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을 만을 말하지 않아요. 당시의 초대교회는 세계최강의 제국 로마의 지배아래 흩어져 있는 소규모의 가정공동체 집단에 불과했고, 이들이 직면한 과제는 적대적인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바꿀 수 없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김형기 불의한 권력의 상징인 네로치세의 로마대화재와 기독교인들의 박해로 얘기를 옮겨 보지요. 우리가 흔히 얘기하듯 네로가 로마재개발을 위하여 일부로 방화를 하진 않았지만, 열흘간 계속된 화재로 제국의 수도인 인구 100만의 도시 중 절반이 연기로 사라졌습니다. 대참사로 흉흉해진 민심을 돌리기 위한 네로 황제의 선택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화재의 주범으로 조작하여 많은 기독교인들희생되었습니다.
김현호 유세비어스의 《교회사》에는 네로의 ‘비이성적인 광기’로 수천 명이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사도바울과 베드로가 순교했지요.
김길구 반론도 있어요. 교회사가 출간 된 해가 312년으로 화재가 일어난 64년과 시차가 너무 커 다소 과장되었다는 설입니다. 당시의 로마지역의 기독교공동체는 3,000여명에 불과 했으며 교인들 중 10%선인 200~300명 정도의 신자들이 순교했다는 주장입니다.
김현호 역사의 아이러니 중에 하나지만 이 박해 후에는 목표를 달성해서 그런지 네로의 박해도 시들해지고, 기독교인들의 누명도 벗겨지자 로마시민들 중에는 동정심도 생겨나면서 그리스도교가 더욱 왕성해 집니다. 순교의 피가 헛되지 않고 열매를 맺은 것이지요.

구제활동도 ‘예배’의 일환으로
김길구 다시 돌아가서 참혹한 화재 현장에서 초대교인들이 박해 직전까지 구호활동을 펼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김현호 이 구제활동을 결의하기 위한 회의에서 구제사역을 ‘예배’의 일환으로 여기는 결의를 한 것입니다. 시편의 노래를 부르며 옷을 수집하여 나누어 주고, 음식을 주변 동네에 가서 나누어 주고…
김형기 선한사마리아인의 예처럼 이웃사랑 실천이라는 관점에서 봉사는 당연하게 받아드려졌을 것이고.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했겠지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에 의하면 로마인들은 인근에 있는 국가들, 지성(知性)은 그리스인보다, 체력은 게르만족보다, 기술력은 에트루리아인보다, 경제력은 카르타고인보다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나면 상류층들이 먼저 나서는 희생정신, 그리고 기부정신과 활발한 사회공헌활동으로 평민들의 신뢰를 얻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사회적 분위기가 최강의 나라를 만들었다고 했으니까요.

- 끝으로 이 책의 부족한 면과 느낀 점 한마디씩
김형기 양도 적고 읽기도 편해 좋았습니다. 한정된 지면의 부족 때문이겠지만 그리스도인끼리의 토론과 대화의 부족, 개종에 따른 내면적 갈등과 심층묘사가 미흡했지 않았나 싶어요. 신앙과 생활을 접목시켜 우리자신을 돌아보게 하다는 면과 신선한 구상으로 신학적, 신앙적 주요 이슈들을 요약해서 잘 다뤄 그룹 활동교재로 활용하면 좋겠습니다.
김현호 다 읽고 나니 크리스천의 하루는 하나님나라를 지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상에서 복음의 가치를 어떻게 담을 건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성찰의 시간이었습니다.
김길구 장시간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믿고 보는 톰 켈러의 《내가 만든 하나님》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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