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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기독교이야기] 망명객 박영효는 왜 어빈 선교사집에 거했을까?
2019/01/07 13:4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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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사학자 김경해(金慶海) 선생의 도움으로 1907년 6월 11일자‘ 대판조일 大阪朝日’신문을 통해 일본에서 망명 중이던 박영효가 1907년 6월 8일 밤 외국선박을 이용하여 은밀하게 부산으로 왔고 외국 선교사집에 머물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게 되었다. 6월 13일 자 ‘대판매일 大阪每日’에는 ‘朴泳孝의の擧動’이란 제하에서 보다 분명하게 “박영효는 안영중(安永仲) 외 수행원(從) 두 사람을 데리고 관부연락선으로 은밀하게 당지에 왔다. 초량판 위에 있는 미국 선교사 어빈 댁에 갔다.”고 보도하고 있다. ‘대판매일’ 6월 14일자 신문에서 특파원은 “지금 미국선교사 어빈 씨 댁에 있는 박영효 씨를 방문하였다”고 보고하고 있다. ‘대판매일’ 6월 17일자 “부산에서의 박영효”라는 기사에서도 박영효는 초량에 있는 어빈 선교사 집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보도하고 있다. 그가 귀국한 점에 대해 ‘대판조일’신문 6월 14일자는 “부산의 박영효는 13일 특사로 입경(入京)의 은전을 받게 되었다고 보도하고 있고, 15일자 신문에서는 ‘朴氏 身分 復舊’라는 제목으로 선교사 어빈 댁에 머물고 있던 박영효는 이또 총감(伊藤 銃監)의 추천으로 한황(韓皇)의 특사를 받아 金陵尉로 복구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당시는 대한제국기였음으로 고종을 대한제국의 황제, 곧 한황으로 호칭하고 있고, ‘금능위’는 관직이름이었는데, 그 직을 회복하게 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박영효가 22년간의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할 때 부산의 선교사 어빈 집에 일주일 가량이나 머물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박영효는 기독교 신자였을까?  
박영효는 한말의 정치가이자 개화사상가였다. 그는 판서(判書) 원양(元陽)의 아들로서 철종(哲宗)의 사위였는데, 북경과 천진을 오가는 오경석(吳慶錫)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고, 그의 일가인 박규수(朴珪壽)를 통해 개화사상을 접하게 된다. 그의 형인 영교(泳敎), 김옥균, 홍영식, 서광범도 이런 영향권 안에서 개화사상가로 발돋움 하게 된다. 박영효는 김옥균보다 꼭 십년 연하였으나 문벌이나 지위가 높아 항상 어른 대접을 받았다. 1882년에는 제3차 수신사로 일본 방문했고, 이듬해 한성순보를 창간(1883년 10월)했다. 태극팔괘의 도안을 기초로 태극기를 처음으로 제작한 이도 그였고, 1884년에는 김옥균(金玉均), 서광범(徐光範), 서재필(徐載弼) 등과 갑신정변을 주도했다. 그러나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자 일본으로 망명을 떠나 곧 바로 요코하마 성서공회의 헨리 루미스를 찾아 갔는데, 루미스는 그들에게 숙소를 제공했다. 이것이 박영효가 기독교와 접촉하는 계기가 된다. 개화파 인사들이 선교사인 루미스를 찾아간 것은 신변 안전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루미스와 지내는 동안 이들은 한국에서 보수파가 정권을 잡았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이제 귀국은 요원한 현실이었다. 쿠데타를 주도했다는 이유에서 박영효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처형되었고, 그의 아내는 친구 집 문 앞에 자신의 갓난 여아(女兒)를 놓아두고 한강에 투신했다. 
위험을 감지한 박영효는 서광범과 서재필과 더불어 미국행을 결정했다. 이 때 루미스는 미국에 안전하게 입국할 수 있도록 소개장을 써 주고, 또 미국 동부에 정착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미국에서 서재필은 유수한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잠재적인 인정받고 의학을 공부하게 되어 한국인 최초의 의사가 되었다. 그러나 박영효는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1886년 5월 31일 일본으로 돌아 와 요코하마에 2년 이상 머물렀다. 이때에도 루미스는 변함없이 박영효를 지원했고, 자주 자기 집에 그를 초대했으며, 필요할 경우 그에게 서적도 빌려 주었다. 박영효는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 미국 선교사들과의 교제하면서 한국도 일본처럼 서구문화와 기독교를 과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확신하게 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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