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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마의 어둠을 밝힌 순교자를 마음에 담다
2018/12/12 10:3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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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하이엇 감독의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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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고 오래된 성서영화의 발견
영화 <바울>(Paul, Apostle of Christ, 2018)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 10월 31일 국내 개봉을 시작한 이후 12월 4일 현재 233,863명의 유료 관객을 동원하여 전통적인 형식의 성서영화(Bible Cinema)로서는 보기 드물게 꾸준히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추정 제작비가 5백만 달러에 불과한 작은 영화로서 과거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 서사적 특징을 배제한 가운데 이룬 성과로 의미가 매우 깊다. 한국 영화계의 비수기인 11월을 택해 개봉하는 바람에 대형 상업영화로부터 상영관을 뺐기지 않을 가능성을 높인 것도 흥행에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상영관수가 적은데다 여전히 한국극장가의 고질적인 병폐인 징검다리 식 개봉(1회, 3회, 5회 상영과 같이 띄엄띄엄 상영시간을 배정하는 것)에도 불고하고 이룬 성과여서 차후 한국의 기독교영화 관객의 기호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가치가 충분하다.
지금까지 제작된 성서영화는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된 영화로써 세실 드 밀 감독의 <왕중왕>(1927)에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까지 영화사 초기부터 현재까지 기독교영화를 대표해왔다. 둘째는 예수 외에 성경의 인물이나 사건을 다룬 영화로써 <십계>(1956)나 금년에 새롭게 제작 개봉된 <삼손>(2018)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셋째가 매우 흥미로운 성서영화의 부류인데 예수시대 혹은 초대교회를 배경으로 삼은 기독교영화들이 있다. <벤허>(1959, 2016)나 <부활>(2016)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들 영화들의 주인공은 예수가 아닌 가공의 인물들이다. <벤허>의 주인공은 유대인 귀족이었다가 노예로 전락한 유다 벤허이고, <부활>의 주인공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현장에 있었던 로마의 군인이다. 이 두 인물의 경우 예수님 시대에 살았을 가능성은 있지만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인물로서 성서영화가 단지 성경의 내용을 영상화하는 기능에만 머무르지 않고 상상력을 통해 외연이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세 번째 부류의 성서영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간접적으로 묘사하거나 제한된 노출을 시도하면서도 주인공의 인생변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로서 예수를 등장시킴으로써 전통적 성서영화의 흐름으로부터 단절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중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영화 <바울>은 두 번째와 세 번째의 특징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작품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사도 바울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 회심할 뿐만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신앙 가운데서 순교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존재한다. 영화에서 이 부분은 바울의 회상 장면으로 처리되고 있으다. 즉 주인공은 바울이지만 바울을 주인공으로 만든 이는 예수 그리스도란 점에서 성서영화가 중요하게 여기는 신앙의 정통성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흥미로운 사실은 바울이 갇힌 로마 감옥의 새로운 소장으로 부임한 모리셔스 갈래스란 인물의 등장이다. 그는 물론 성경에 나오지 않는 인물이지만 이 영화가 역동적으로 진행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충실한 로마 군인 출신으로 처음에는 바울을 학대하며 그리스도인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도 바울과 그의 편지를 적어 나르는 누가와의 만남을 통해 내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관객은 갈래스 교도소장의 등장으로 인해 긴장감과 더불어 마침내 신앙의 감동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거룩한 상상력이 얼마나 관객들에게 재미를 부여하는 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난 속에서 사랑과 은혜를 강조하다
앤드류 아이엇(Andrew Hyatt) 감독의 영화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의 현실과 회고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강조하는 작품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표현하는 일은 성서 영화에서는 흔한 일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잔혹한 죽음이 이어지는 박해 속에서 사랑과 은혜를 관객에게 이해시키는 일은 매우 특별하다. 특히 복수가 스크린에 가득 찬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현대사회에서 힘으로 응징하지 않고 용서와 사랑 그리고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는 일은 매우 특별할 수밖에 없다.
서기 67년 로마는 예수를 믿는 추종자들이 로마의 불을 질렀다는 소문으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은 거리에서 화형을 당하거나 몰래 숨어 살아야 하는 불안과 공포의 분위기에 휩싸인다. 신실한 믿음을 지닌 브리스길라(조앤 월리)와 아굴라(존 린치)는 예수 믿는 공동체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지만 사람들은 극심한 박해 속에서 로마를 탈출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지고 만다.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지도자인 사도 바울(제임스 펄크너)의 의견을 구하고 그의 편지를 기대하고 있다.
이 때 의사 누가(제임스 카비젤)가 로마를 방문하여 로마에 숨어 지내는 그리스도인과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 사이를 왕래하며 서로의 뜻을 전달하는 한편으로 바울의 신앙여정에 대한 구술을 받아 적음으로 인해 ‘사도행전’이 탄생하게 되는 과정을 관객은 목격할 수 있다.

영화가 제공하는 세 가지 미덕
영화 <바울>에서 관객이 지켜 본 가장 큰 미덕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고난 받는 로마 그리스도인의 상황과 이에 대응하는 바울의 ‘성경적 방식’이며, 둘째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식이고, 셋째는 누가의 의료행위에 나타난 신앙과 지성의 통합적 이해 방식이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관객들은 역사의 기록에 남아있는 ‘인간 촛대’의 순교현장을 접하게 된다. 로마제국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타키투스(Tacitus, 56?~120?)는 14년에서 68년 사이의 로마 역사를 다룬 〈연대기>(Annals〉)에서 네로가 광적인 잔학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리스도인을 죽였다고 말하고 있다. <연대기> 속에 묘사된 그리스도인의 순교 장면 가운데는 십자가의 처형뿐만 아니라 짐승의 가죽으로 싸서 개들에 의해 찢겨 죽기도하고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해가 진 후 로마의 거리 곳곳 마다 화형에 처해져서 히브리서 11장 후반부에 나오는 믿음을 지키는 신앙인이 겪었을 시련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깨닫게 한다.
로마의 골목 곳곳 마다 나무에 매달려 산 채로 화형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고난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로마의 어둠을 밝힌 것은 그리스도인들 이었다’는 역사의 기록은 사실이며 또한 진실된 신앙의 결과였다. 가로등이 없던 시절 그리스도인들은 ‘인간 촛대’라는 순교방식을 통해 거리의 어둠을 밝혔고, 사랑과 봉사를 통해 부패하고 잔인한 로마인의 마음에서 어둠을 내쫓았다.
로마에 대한 복수와 저항의 의지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솟구쳐 올랐을 때 영화 속 사도 바울은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12:17)고 누가에게 전한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율법에 미쳐서 예수를 따르는 자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과거가 있었고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나고 사랑으로 변화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감옥에서 누가에게 구술한 바울의 회상장면은 사도 바울을 생애를 연대기로 처리한 과거의 영화와 달리 매우 생동감을 갖게 만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빛낸 공로는 누가가 바울이 갇힌 교도소 소장의 병든 딸을 고치는 장면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로마의 제3군단 사령관 출신으로 마멀틴 감옥의 소장으로 부임한 모리셔스 갈래스(올리비에 마르티네즈)는 제3자의 입장에서 바울과 누가를 지켜보는 사람이다. 바울이 결코 로마에 불을 지를 사람이 아니며 누가 또한 참된 신앙인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는 입장이다.
그는 자신의 병든 딸이 회복될 수 있도록 사도 바울에게 기적을 행해줄 것을 바라지만 바울은 누가를 존경받는 의사로 갈래스 교도소장에게 소개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간직한 사람들이 생존해 있던 시절에 병 고침의 기적은 어쩌면 로마인의 마음을 순식간에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감독은 그 병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의사 누가를 등장시킨다. 사람들은 감독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교도소장의 딸이 병중에서 회복되는 장면과 기독교인들이 로마인들의 구경꺼리가 되기 위해 순교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정면을 교차 편집함으로써 신앙이 일으키는 기적이 무엇인지를 감동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즉 인간 촛대로 순교한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어둠을 밝혔듯이, 또 다른 순교자들의 믿음으로 인해 로마의 어린 아이는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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