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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사회] 지구촌과 난민: 한국사회와 교회의 역할
2018/11/26 15:5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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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수교수(신규).png
 
본 칼럼에서는 최근 한국사회와 교회의 최대 쟁점중의 하나인 난민 문제를 몇 차례 기독교적 관점에서 다룬다.   
 
1. 시작하는 글
‘난민인정 0명, 인도적 체류 허가 339명.’ 제주에서집단 난민 신청을 한 예멘인 458명에 대한 법무부 심사 결과가 지난 10월 17일 발표됐다. 인도적 체류자는 취업 활동과 제주도 밖에서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지만, 난민처럼 가족을 한국에 데려올 수는 없다. 정부의 결정은 양쪽 모두에서 공격받았다. ‘여론의 눈치를 보며 난민 지위 인정을 망설였다’는 비판과 ‘여론을 무시하고 사실상 전원 인정 결정을 내렸다’는 반발이 동시에 나왔다. 우리는 이 결정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최근 한국을 방문한 전 세계 난민 보호를 총괄하는 유엔난민기구(UNHCR) 필리포 그란디 최고대표의 생각을 들어보자. 지난 10월 23일 이틀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그는 24일서울 중구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 사무실에서 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난민신청자의 지위를 두고 격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사람들에게 보호가 제공됐다는 사실”이라며 정부의 결정을 긍정 평가했다.
난민이 한국사회의 뜨거운 감자다. 무엇보다도 이슬람 난민이 문제다. 본 글에서는 난민 문제의 발생원인과 해결책을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그 해결책은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년-2017년)의 지적처럼 사회문제에 대한 ‘구조적’ 대안책(국가 및 국제정치)과 ‘개인적’ 대안책(개인적 구호활동)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전자와 관련하여 보다 더 나은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와 세상을 만드는 노력의 관점에서 난민문제가 발생하게 된 정치 구조적 문제의 접근도 필요하다. 후자의 난민에 대한 개인적 자선의 구호적 활동도 매우 중요하다. 정치구조의 문제는 정의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어떤 학자는 개인적 자선과 구조적 접근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선은 우연히 이루어지지만 정의는 계속 진행된다. 자선은 위로하지만 정의는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다. 자선은 증세를 다루지만 정의는 그 원인을 문제 삼는다. 자선은 개인을 변화시키지만 정의는 사회를 변혁시킨다”. 따라서 본 글은 난민에 대한 구조적 해결책과 개인적 해결책, 국가 및 법과 국제정치의 구조적 접근과 난민에 대한 개인적 해결책 접근으로 교회 및 기독교인의 역할로 접근한다.
 
2. 난민 발생의 원인
이 부분에서는 중동, 아프리카 및 유럽의 난민 발생의 원인을 몇 가지 관점에서 살펴본다. 이 원인들은 한국사회가 유럽 난민사태를 보면서 한국의 난민사태를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좋은 역사적 반면교사의 역할을 하는데 참조점이 될 수 있다.
첫째, 오늘날 난민 발생 원인이 소위 실패한 국가-즉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권력이 무너진 국가(시리아, 예멘, 레바논, 이라크, 리비아, 소말리아, 콩고, 에리트레아...)에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대부분은 내전으로 치닫게 되고 수많은 난민이 발생했다. 1990년대 코소보 내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및 크로아티아 내전도 이와 같은 상황가운데 많은 난민을 발생시켰다. 국가와 정부의 실패로 불가항력적 상황에서 생긴 난민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조금 더 이해하는 인도주의적 관점이 필요하다. 한 언론사는 현재 예멘 인구 2800만의 3분의 2는 구호물자에 의존해 살아간다고 보도했다. 사우디는 손쉽게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이 3년간 이어지고 있고 그러나 이후로도 교착 상태는 3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피해는 그곳에 살고 있는 예멘인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극심한 기근에 역사상 최악의 콜레라까지 겹쳤다. 국제사회의 평화 중재 노력도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예멘 정부군과 후티 반군 사이 평화회담은 2016년 이후 공식 중단됐다. 지난달 유엔 중재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약 2년 만에 정부군과 반군의 평화회담이 추진됐지만, 회담 당일 반군 측의 일방적인 불참으로 무산됐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예멘 내전이 이대로 지속될 경우 약 1200만 명이 심각한 굶주림에 시달릴 수 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 방송사는 예멘 내전으로 40만 명에 이르는 어린이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 어린이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예멘에서는 3년 반째 계속되는 내전으로 수많은 사람이 고통 받고 있다. 생지옥이다. 예멘 북부의 한 병원에는 뼈가 앙상한 아이가 극심한 배고픔의 고통에 이내 울음을 터뜨린다. 또 다른 아이들은 울 힘도 없는 듯 눈동자가 초점을 잃었다. 심한 영양실조인 아이의 부모들도 굶주리긴 마찬가지이다. 주민들은 모두 나뭇잎을 뜯어 만든 먹거리로 끼니를 때우며 목숨을 겨우 부지하고 있다."7개월 된 딸은 태어난 이후로 한 번도 우유나 음식을 먹지 못했어요. 먹을 게 나뭇잎밖에 없어요." 영양실조 어린이 어머니의 고백이다. 전쟁 이후로 매일 다섯 명꼴로 어린이가 죽거나 다쳤는데, 앞으로 더 많은 어린이들이 굶주림에 희생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예멘 난민이 처한 고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제주도 예멘 난민에 대한 국내 반응은 인도주의적 차원이냐 국가 안전의 차원이냐로 여론이 팽팽하다. 하지만 예멘 난민들이 처한 고통이 얼마나 심각하냐는 고통의 차원 즉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시각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예를 들면 서구의 국가 중 특히 미국은 시리아 난민의 경우는 그 나라의 상황이 비상시국이기에 그 곳에서 미국으로 유입된 시리아 난민들은 거의 다 난민으로 바로 인정하는 경우이다.
둘째, 유럽의 난민문제는 역사적으로 거슬러 가서 볼 때 유럽이 저질렀던 식민지 정책과 양차대전의 결과 가운데 생긴 부산물의 결과다. 오늘날 중동 및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는 난민은 유럽의 원죄의 결과라는 것이다. 특히 이 입장은 동유럽 슬로베니아 출신 슬라보예 지젝은 그의 책 「새로운 계급투쟁」에서 잘 언급되고 있다. 그는 유럽의 최대위기로 평가되는 난민문제에 얽힌 모든 층위의 논의를 구체적이고 과감하게 시도하면서 난민과 테러의 진정한 원인을 연구한다. 이 모든 유럽의 난민문제는 유럽의 자업자득이라는 것이다.
셋째, 이런 유럽의 난민문제를 해결하는 접근에서 유럽 및 국제정치의 부재도 중요한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 입장의 대표적 학자는 프랑스 정치철학자 알랭 바디우이다. 그에 의하면 오늘 유럽에서 발생한 난민의 문제는 각국의 “정치의 부재”와 유럽을 포함한 “세계적 차원의 정치의 부재”이다. 난민에 대처하는 국제정치의 부재는 유럽이 정치적으로 정신적으로 나뉘어져 있고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유럽은 사실 각자도생의 국수주의 및 민족주의적 흐름 가운데 진행되기 때문에 난민 문제에 대한 조직적 연합적 접근이 되지 못하는 것도 난민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넷째, 난민문제에서 유럽이 지나치게 경제적 및 자국의 안전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도 문제이다. 이것은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타자의 추방(Die Austreibung Des Andern)」에서 잘 나타나 있다. “오늘날의 난민의 위기는 유럽연합이 이기적 목적을 좇는 경제적 상업 연합에 지나지 않음을 폭로한다.” 마지막으로 난민문제의 접근에서 실패의 이유 중의 하나는 서구 철학의 다문화주의의 피상성에서도 기인한다. 톨레랑스 및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유럽의 다문화주의 철학이 경제적 이해관계와 자국의 안전문제에 직면할 때 그것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수사’에 불과한 것인가를 쉽게 드러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표자가 최근 만난 유럽의 학자 중의 한 사람은 유럽 사람이 관용과 톨레랑스를 가장 많이 언급하고 외치지만 그들이 가장 관용적이지 않다는 고백을 한 것을 들었던 적이 있다. 무엇보다도 자유·평등·박애라는 프랑스혁명의 정신에서 태동한 유럽이 유럽에 일하러 온 중동 및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노동자들에 대한 인종차별 및 혐오로 상처받은 난민 및 이주민들이 2015년 파리 테러의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런 난민문제를 유럽의 정치 구조적 관점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여러 유럽의 학자들 가운데서 나타난다. 그 중의 한사람이 지젝인데 그의 책 <새로운 계급투쟁>에서 그는 유럽사회가 “난민문제를 범유럽적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일관된 계획을 찾아볼 수 없다”고지적하면서 현재의 난민상황에 비추어볼 때 그 목표를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곤경에 처한 난민이 더는 고향 땅을 버리지 않도록 전 세계적으로 사회의 기초를 재건하는 일이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목표”라고 한다. 하지만 유럽적 차원에서 연대를 통해 유럽의 문제를 극복해야 하는데 연대가 쉽지 않고 무엇보다도 문제는 유럽이 분열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이런 난민문제를 한국사회와 우리교회와 기독교인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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