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8.12.07 22:07 |
할아버지의 DNA가 손자에까지 이어진 가족 이야기
2018/11/26 15:3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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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려 장로와 그의 손자 장여구 교수
한국의 전형적인 바보 같은 의사, 장기려 박사(1911~1995)가 하늘나라로 가신 지가 23년이 흘렀다. 4대에 걸친 의사 가문에 얽힌 가족 이야기를 언급할까 한다.
장기려 박사의 성품은 늘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하고 인자한 얼굴을 지닌 채 호감을 느끼게 했다. 복음병원 원장을 재직하면서 직원들에게 얼굴 붉히게 큰 소리 한번 치거나 화난 얼굴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직원들의 한결같은 여론이다. 김동길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같은 분은 수많은 사람을 만난 사람들 가운데 그중에 예수를 가장 많이 닮은 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것은 그의 표정에 나타내며, 그의 성품과 인자하며 말씨 또한 어린아이 같고 그의 행동이 바보 같은 것을 두고 모두들 이 세상에서 보기 드문 할아버지 의사로 신실하고 다정 다감한 친구로 남아 있었기에 우리는 이 땅에 작은 예수라 일컫는다. 땅 한평 없는 그야말로 무소유로 평생을 살다가 1995년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그토록 사모하던 아내가 있는 저 하늘나라로 갔다. 그의 천진난만 한 미소에서 우리는 평화를 배웠고그의 잔잔한 미소는 사랑과 화평이 있는 이 땅의 하늘나라를 맛보았을 것이다.
그 할아버지 장기려 장로(산정현교회 원로)1911년 평안북도 용천군 양하면에서 부유한 농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940년대 평양의 기독병원 외과과장으로 젊은 의사 세계에서는 외과 수술의 명의라는 소문이 널리 알려 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김일성 맹장수술을 집도했다는 소문에 있어 필자가 어느날 정식으로 물어 보니 다른 동료의사가 수술하는 것을 옆에서 도왔다는 것이 와전이 된 것 같다고 솔직한 대답을 해 주었다. 월남할 11월 가을 날 아내와 첫째아들과 딸 하나을 남겨 둔 채 둘째 아들 장가용의 손목을 잡고 단 둘이서 미군 짚차를 타고 내려 온 것이 평생 돌아가실 때까지 독신으로 늘 부인과 두고 온 자녀를 그리며 살아왔다. 둘째 아들 가용씨는 서울 대학교 <해부학>의사에 이어 친 손자 장여구 교수(54, 인재대 서울 백병원 외과 교수)도 평생 의료봉사의 길을 걸어 온 할아버지처럼 인제대 백병원 의사, 간호사 50여명으로 구성된 블루크로 의료봉사단을 1997년 창단하여 장기려 무료 진료소를 만들어 노숙인과 노인,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의료 봉사를 해 오고 있다. 2001년부터 1년에 세 차례씩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등을 찾아 지금까지 해외 빈민층 12000여 명을 무료로 진료해 왔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장 교수는 지난 1월 국민 추천포상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장 교수의 아들도 현재 중앙대 의대에 재학 중인 아들 까지 4대에 걸 친 의사 가문이다.
평소 장가용 교수 아들 집에는 잘 가지 않고 그렇게 잘 지내는 편이 아니었는가를 알고 있다.
장기원 교수(연세대 수학교수)가 그의 사촌이고 미국에는 사촌 장 교수의 딸 장혜원씨를 통해 이북에 있는 그의 아내로부터 그리운 안부 편지를 한 통 받은 적이 있다. 아마 이북에 있는 딸도 의사로 재직하고 아들에 대해서는 아는바가 없다. 월남하여 온 이후로 복음병원을 거창고교 교장이었던 전영찬씨와 더불어 설립하는 과정에서 박영훈 그의 제자가 경북대 의대 학생으로 방학 때를 기해서 장 박사를 도와 왔던 계기가 평생을 장 박사 제자로 삼아왔다. 장 박사는 평소 그의 고향 용천 출신 함석헌옹을 데리고 한달씩 부산모임교회없는 종들의 모임으로 한때 무교회주의자였던 내촌 우찌무라 간조선생의 정신에 심취하기도 했다.
한국 최초로 청십자 의료 보험조합을 창설하여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를 여는데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고, 가난한 환자를 돌보기 위하여 동구 수정동에 청십자병원을 설립하였다가 훗날에는 청십자복지회 법인으로 전환하여 그의 제자 양덕호 장로와 산정현교회 박영규 장로가 지금은 모라동에 이웃 주민들을 위한 모라 복지관등을 운영한 이시대의 숨은 의료계의 영웅으로 자리 매김했다.
어느 날 자기가 집도한 결핵 척추환자인 이동기씨를 일어서지도 못하는 안타까움 때문에 그를 위해 간병인을 붙여 간호 뿐아니라 아미동 골짜기에 조그만 한 집을 사 드려 기거케 하면서 훗날 그의 배후자를 중매까지 하여 결혼식에 주례를 직접하여 평생을 돌보는데 물질적으로 때론 손 수 쌀 포대를 들고 그의 생활에 보탬이 된 행동은 과연 이 시대의 작은 예수와 같은 행동을 해 왔다. 이러한 사실은 필자가 그의 뒤를 따라가 보고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어서 부산일보에 미담으로 크게 보도 된 적이 있다. 이동기씨 슬하에는 1남은 공군사관학교를 나와 조종사가 되었고, 딸은 간호대학에 들어 가 훌륭한 나이팅게일을 받은 간호사가 된 사실을 본보에 보도 한 사실이 있다. 훗날 장박사에게 왜 이토록 이 분한테 헌신하느냐?” 물었듯이 내가 잘못 수술하여 이렇게 된 가난한 이웃을 어떻게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있겠는가라고 말하는 가운데 사연을 듣게 되었다. 이동기씨는 누워서 를 쓰고 수필을 써서 한 권의 책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이렇게 장박사는 의료인으로써 책임을 질 줄 아는 이 시대의 참 사도요 전도자이자 바보의사이다.
복음병원 옥탑 거실에는 그의 이북에 두고 온 처 자식 사진을 탁자위에 걸 쳐 놓고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아내에게 오늘 나는 무엇 무엇을 하러 가요 오늘도 하나님 은혜로 잘 계신는 지요?”라고 안부로 영혼과 사랑의 대화를 나눠는 사실을 직접 듣고 적십자 로 통해 이산가족 찾는데 신청을 왜 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하였듯이 나보다 더 급한 분들이 줄을 서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매일 말로 대화하고 있지 않느냐? 하늘 나라에 가면 영원히 만날 건데라고 말을 들을 때 뭉클 하는 감정을 겨우 억제한 기억이 난다. 그 당시 한완상 통일부 장관이 직접 옥탑 방에 있는 장박사을 찿아 와서 이산가족 신청을 하면 꼭 가족을 만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해도 정중히 거절 한 것을 보고 한편으로는 바보같기도 한편으론 숭고한 성직자같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지금은 고 장기려 장로는 평화로운 하늘 보좌 옆에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오손 도순 잘 지내고 있지 않을까? 그가 평소 즐겨 부르는 찬송 419주 날개 및 내가 편안히 쉬네 밤 깊고 비바람 불어 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켜 주시니 거기서 편안히 쉬리로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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