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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양 읽기 42] 초기 선교사들, 부산항으로 입국했다!
2018/10/29 14:4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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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시각으로 본 한국 기독교 역사

이 책은 ‘부산에서 바라본 한국 기독교회사’라는 점을 내세운다. 그동안 대부분의 한국 기독교회사가 서울을 중심으로 씌어졌지만, 초기 선교사들이 이 땅에 첫발을 내디딘 곳이 부산임을 새삼 일깨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발자국이 너무도 희미하여 찾기조차 어렵지만, 그들의 흔적을 하나씩 좇아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한다.
여기에 더하여 저자는 일제하 신사참배를 둘러싸고 배교와 순교의 갈림길에서 벌어졌던 목회자들의 ‘민낯’을 드러내 보이고, 이로 인해 해방 후 분열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아픔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역사적 질곡도 부산이 주요 무대가 되어 일어났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 역사적 사실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이로 인해 오히려 ‘불교 도시’ 부산에 복음의 씨앗을 더욱더 흩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며, 역사적 아이러니를 따듯한 시각으로 해석한다.
또한 한국전쟁으로 인해 부산지역 기독교계에 나타난 두 가지 상반된 현상도 담담하게 풀어낸다. 북한지역에서 피란 내려온 교인들로 인해 부산경남지역의 교회가 오히려 더 발전할 기틀을 마련하게 된 점과,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시대적 사회 분위기와 환경으로 인해 부산이 다양한 이단이 발붙이고 발흥할 수 있는 요람이 된 점이다.

◈ 《다르게 다가서는 역사》 || 저자 탁지일은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세인트마이클칼리지에서 교회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부산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로 재직하면서 월간 《현대종교》 이사장 겸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교회와 이단》 《찬송으로 듣는 교회사 이야기》 등이 있다. 예영커뮤니케이션, 2018. 13,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호주선교사 맥켄지의 발자취》 / 헬렌 맥켄지 / 대한기독교서회
《부산경남지방 기독교회의 선구자들》 / 이상규 / 고신대학교출판부


초기 선교사들, 부산항으로 입국했다!
기존의 교회사는 객관적인 사실마저 소홀히 취급해

▌좌담: 김길구,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특별손님: 탁지일 부산장신대 신학과 교수

“대부분의 한국교회사 서술에는 첫 상주 선교사 알렌이 조선으로 가기 위해 1884년 9월 14일 상해를 떠났다고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알렌의 일기와 보고서에 따르면, 알렌은 9월 14일에 이미 조선 부산항에 도착해 있었다. 백낙준에서 시작된 이러한 오류는 … 1차 자료에 대한 재확인 없이 정설로 굳어져 왔다.” [본문 34쪽에서]
9면-문화.JPG▲ 《다르게 다가서는 역사》는 부산에서 바라보면 한국의 교회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음을 지적하는 책이다(왼쪽으로부터 김수성, 김현호, 탁지일 교수, 김길구).
 
초기선교사들의 부산항 입국은 팩트!
김길구  오늘은 이 책의 저자 탁지일 교수님을 모시고 진행하겠습니다. 복잡한 퇴근시간에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신 교수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환영). 이 책 제목에 ‘다르게’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다른 교회사와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나는지요?
탁지일  한마디로 부산과 경남의 시각으로 바라본 기독교회사라는 점입니다. 여태까지 나온 교회사 대부분은 서울 중심 시각이었습니다. 각 교단에서 펴낸 역사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기 선교사들은 거의 예외 없이 부산항을 통해 입국, 며칠 후 제물포항으로, 그리고 거기서 서울이나 평양 등으로 갔습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교회사 책에는 이 객관적인 사실조차도 소홀히 취급하고 있습니다.
김현호  부산에서 특별히 한 일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탁지일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초기 선교사들이 부산항으로 들어온 후 부산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혀 만나지 못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김수성  이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알렌의 일기를 보면 부산의 왜색 도시, 일본인들의 도시로 표현했습니다. 선교사들의 그런 인식이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요?
탁지일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초기 선교사들이 부산항을 통해 이 땅에 발을 내디딘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즉 팩트(fact)입니다. 이것은 사관(史觀)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교회사에는 선교사가 제물포항에 도착한 날짜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칫, 본국이나 일본 등에서 바로 제물포항으로 입항해 서울로 간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김길구  제물포가 서울의 관문이었다면, 부산항은 조선의 관문이었죠. 그런데도 서울의 학자들은 제물포만 언급하고 있군요. 그런데 이 사실이 중요한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탁지일  제가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부산은 다른 지역에 비해 기독교세가 상당히 약한 곳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초기 선교를 공부할 수 있는 역사적 유적이나 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부산의 신학생들은 물론, 기독교인들이 비빌 언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몇 년 전에 광복동 입구에 선교사들의 ‘입국 표지석’을 세운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습니다.

하디, 부산서의 고난이 부흥운동 촉발
김현호  저는 캐나다 선교사인 로버트 하디가 원산부흥운동을 촉발하게 된 계기가, 부산 영도에서의 고난과 좌절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를 관심 있게 보았습니다.
탁지일  하디는 토론토대학교 의대를 졸업한 엘리트 의사로서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영도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본국의 지원마저 끊기자 선교는커녕 직접 가족들의 생계비를 벌어야 했고, 영도의 거주지도 오가는 선교사들의 임시거처(road house)였습니다. 콜레라 등 전염병에 걸린 외국인 환자가 있으면 이곳에 격리 수용하기도 했고요.
김수성  그렇더라도 부산에서의 어려움을 원산부흥운동과 연결하기에는 사실 관계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탁지일  한마디로 행간을 읽고 싶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원산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하다가 갑자기 공개적인 회개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연결고리를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어느 구절이 그를 자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성경구절에서 그는 부산에서의 고난과 역경을 떠올렸고, 그동안 남 탓만 하였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문제임을 고백한 것이지요.
김길구  초기에 각 교단의 선교사들은 지역을 나눠 선교했습니다. 이러한 것이 신앙의 형태에 영향을 미쳤는가요?
탁지일  북쪽에서 선교했던 캐나다의 경우, 지역에 한정해서 선교한 것이 아니라 조선 사람들이 가는 곳이면 시베리아, 만주, 일본까지 따라갔고, 거기서 민족교육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에 비해 북장로교는 주로 서울과 평양, 경북 지역의 관료층이나 양반층을 대상으로 선교했습니다. 이렇듯 선교부에 따라 신앙 형태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이보다 더 관심을 끄는 것은 각 선교 교단과 담당한 지역이 서로 관련성이 있었던 점입니다. 남장로교의 경우 호남을 담당했는데 농업지역이라는 점, 북장로교와 북감리교가 담당한 서북지역은 상공업지역이라는 관련성이 있었습니다.

기독교 전래사를 상징하는 센터 필요
김현호  부산경남지역은 호주 선교부가 담당했죠.
탁지일  호주선교본부를 부산을 콕 집어 선교하기로 작정한 것은 헨리 데이비스의 순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선교를 위해 부산에 왔다가 다음날 죽음을 맞이한 그의 열정을 호주선교본부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복병산 기슭에 있던 데이비스의 묘가 사라진 것입니다.
김현호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데이비스의 묘비가 있었던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일대가 개발되면서 아예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탁지일  안타까운 일이죠. 이 일대를 중심으로 호주선교부의 기독교 전래사를 기념할 수 있는 센터를 교계에서 하나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이런 센터는 역사성, 접근성, 연계성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데, 데이비스의 묘가 있던 지역은 이 모두를 만족하는 입지라 할 수 있습니다.
김길구  신사참배와 관련해 부산경남지역 교회가 전국적으로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가요?
탁지일  지역마다 조금 차이는 있었습니다. 단적인 예로 평양 등 교회가 융성했던 곳은 신사참배 반대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이에 비해 서울과 같이 학교나 병원을 중심으로 선교하던 곳은 폐쇄를 피하기 위해 소극적으로나마 신사참배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산경남은 적극적인 친일과 함께 이에 강력하게 저항하던 인물을 배출한 곳이기도 합니다.
김수성  그래서 부산경남을 ‘배교와 순교의 땅’이라고 불렀군요.
김현호  당시 호주선교부는 절대 반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부산경남지역의 교회 확산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요?
탁지일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당시 거창, 진주, 마산, 통영 등지에 산재해 있던 재산이 호주선교부가 일제에 의해 철수한 후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들 센터가 사라진 것은 분명히 선교에 마이너스 역할을 했을 겁니다.

부산, 이단 발흥에 좋은 조건 갖춘 곳
김현호  신사참배 문제가 한편으로는 교단 분열이라는 결과를 낳기도 했죠. 그럼에도 이에 대한 참회의 모습은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김길구  부산이 이단의 요람이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 되었죠?
탁지일  몇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먼저 부산은 본래부터 불교세가 강한데 비해, 기독교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유입된 교인으로 인해 갑자기 확산되는 등 기독교의 뿌리가 약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단이 생겨나더라도 일반시민들의 눈에는 차이가 없었고, 교세도 약하기 때문에 이를 통제할 힘도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이단이 발흥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김길구  상당히 의미 있는 지적인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한정된 지면으로 인해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신(新)사도행전을 써내려가길 간절히 바랍니다. 다음에는 한국교회탐구센터에서 펴낸 《페미니즘 시대의 그리스도인》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얼마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미투’운동과 관련하여 관심을 가질만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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