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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영훈 장로(명예원장)의 서거 1주기 맞이하여(3)
2018/09/21 15:2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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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박영훈 원장은 송도는 의과대학을 중심한 메디컬 센터로, 고신대학은 부산의 근교로 신학대학원은 수도권으로 이전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고신대학을 이전한 부지를 찾고자 박 원장과 서 장로는 부산 근교의(양산, 김해, 사상구, 북구, 영도 등) 여러 곳을 수시로 방문하여 현장을 확인하여, 여러 장소를 학교 관계자에게 제시하였으나 빈번 거절당하였다. 이러한 사항에서 마치 영도 동삼동(현 대학위치) 모자원에서 소유한 부지를 매각 요청있어 김모 원장(성결)을 만나 면담 결과 부지 73,000여평, 예상 가격은 2억원으로 절충한 결정 결과를 이사장에게 보고하여 고신대학교 이전 부지로 1980년 7월에 매입하였다. 부지 매입자금은 병원에서 전액 부담 하였다.
이 부지는 해발 180미터 이상 이므로 학교 용지로 사용하기 위하여 부산시 토지개발위원회 심위 통과하여 건설부 중앙토지개발위원회에까지 통과하는 과정에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어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과 박 원장의 집념으로 이뤄진 것이다.
병원 3동과 영도 고신대학 설계를 대형설계 사무소인 서울 우일건축 사무소에서 맡겨 처리하였고 시공사의 결정은 재단에서 입찰하기로 하고, 조건 계약과 총공사비를 10년간 분할하여 지급하기로 하여 입찰 참여자가 대동 건설(대동조선)만 참여 67억원의 공사계약을 1982년 4월에 체결하였다
이 당시 병원의 적립자금은 겨우 3억원 밖에 없었다.
그러나 공사를 착공하여 준공하기 까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박 원장은 굴하지 아니하고 인내와 집념으로 1984년 10월에 마무리 하였다.
 
▲신학대학원 천안 이전
1986년도에 신학대학원을 수도권으로 이전하기 위하여 첫 단계로 인천시 부평에 있는 김 모 목사님이 운영하는 서울신학교의 건물 및 부지를(땅 소유자 부평시) 고 한명동 목사님의 주선으로 박 원장에게 인계 하도록 하여 박 원장이 이사장과 협의 소유권을 고려학원으로 이전을 부평시청에 불하 신청 8억7천만에 신학대학원 부지로 취득 하였다. 고인은 신학대학원을 수도권에 이전을 위하여 밤 낮 주야로 관계기관에 찾아가서 청원 하였으나, 정부의 정책이 수도권에는 이전 허가는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고 1995년도 신학대학원을 부득이 천안시 삼용동산201-1의 부지 32,500평을 매입하여 1996년 4월에 착공 1998년 8월에 준공하여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천안으로 이전하였다 이 당시 박 원장과 故 곽삼찬 이사장간에 건축 규모문제로 다른 의견과 건축공사비의 조달이 어려움으로 건축업자의 데모 등으로 수난을 당하기도 하였고 이 때 신한은행에 인천 부평 부지를 담보하여 신학대학원의 건축비를 지급하고 준공하였다.
이 후 복음병원의 사태로 인하여 법인이 관선이사회로 금융거래의 부도로 신한은행애서는 인천시 부평의 부지를 채권자로서 공매결정 부지의 구입금액의 13배 102억에 매매 신학대학원 공사비 차입한 금액을 상환하여 마무리하였다.
그 밖에도 박 원장은 김해복음병원을 순수한 생각으로 의과대학 부속병원을 전환하기를 원하여 시작하였지만 교단의 일부 사람과 일부 이사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박 원장을 옆에서 지켜본 서판수 장로는 “박 원장의 근소한 삶 오래된 옷, 양말 등 뀌어서 입고, 출장 여비를 남으면 반환하시고 음식도 비싼 것을 먹지 아니하시고 자가용도 없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시는 소박한 모습 지금도 생각이 난다”고 박 원장을 매우 존경해 왔다.
박 원장은 한 평생을 병원과 교단, 대학을 위하여 헌신하고 봉사하고 걱정하시다가 2017년 8월 31일에 생을 마치고 하나님 곁으로 갔다.
오늘의 고신대학복음병원이 있기까지 그 누구보다도 희생 하신 고인의 모습을 작금 병원에 근무하시는 구성원들은 잊어서는 아니 된다.
고인이 남긴 업적들을 회고 하면서 서거 1주기를 맞이했는데, 조촐하게 가족들끼리 모여 추도예배를 드린다는 소식이다. 평소 평가에서 부족한 점은 자신이 데리고 온 경북의대 출신 이승도, 정병채, 이시래, 구자연 교수 등 대부분이 등을 돌려 후계 계승에 실패한 점들은 안타까운 의사 세계의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을 보는 듯하다. 그래도 김재도 전 원장 만은 의리를 지켰다는 점이다. 평생을 모셨던 서판수 장로와 관계는 부자 관계 못지않게 좋아졌는데 말년에는 사이가 소원한 것도 노년의 귀가 여린 탓이 아니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끝>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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