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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사회]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2)
2018/09/21 14:3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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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선교 탐방기
이병수 교수.jpg
 
동유럽은 복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라입니다. 금년 2월에 방문한 코소보는 대다수가 무슬림들이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알바니아는 50-60%가 무슬림들입니다. 코소보의 수도 프리스티나의 높은 지역에 올라가서 도시 전체를 바라볼 때 뾰쪽한 두 탑을 가진 모스크가 얼마나 많은지, 가슴이 미워지고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모스타르에서 금요일 낮 12시에 모스크에서 예배가 드려졌는데 그 모임에 참석해 보았습니다. 선교학을 가르치고 이슬람을 강의하는 입장에서 그런 경험이 그들을 이해하고 아는데 현장 경험으로 매우 중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모스크 안에는 건장한 남자들로 가득 찼습니다. 백인 젊은이들이 가득 찬 모스크, 매우 이상하였습니다. 중동의 사람들 약간 검은 피부의 사람들로만 이슬람을 신봉하고 모스크에서 예배하는 모습들만 상상하다가 그런 모습을 보니 매우 신기하고 약간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예배는 매우 진지한 모습들이었습니다. 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사라예보가 수도입니다. 이 두 나라들은 본래 동로마제국 비잔틴 제국의 나라들이었고 그리스 정교 및 동방 정교의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동유럽 특히 발칸 반도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수 백 년 동안 받는 가운데 많은 나라들이 무슬림 국가가 되었습니다. 무슬림 국가의 수준에 해당하는 코소보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저희 고신대학교 국제문화선교학과 제자들이 사역하고 있어서 더 동유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는 독신 선교사로 오랫동안 활동했던 선교사님이 곧 은퇴를 하고 저의 제자는 선교사 비자를 받는데 어려움을 겪어서 신분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어서 그렇게 된다면 사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는 한국 선교사가 거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독자 여러분들 가운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선교사로 헌신할 수 있는 젊은이들을 추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여름에 방문한 불가리아도 현지인의 보고에 의하면 10-20%가 무슬림들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유럽이 무슨 선교지이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세계 선교 상황을 보여주는 중요한 표현이 “From Everywhere to Everywhere”입니다. 사실 모든 곳이 선교지입니다. 그 이유는 유럽이 선교사를 보내는 나라였지만 그곳이 무신론 및 세속화 가운데 무신론자들이 급증하고 무슬림 이주민으로 가득 찼기 때문에 선교지인 것처럼 한국도 250만 명의 이주민과 200여개국가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고 젊은이들의 복음화 비율은 약 4%에 이르고 무신론자들이 급증하기 때문에 선교지인 것과 같습니다.
체코는 카톨릭 국가이고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1517년 보다 100년 전 천주교의 개혁을 부르짖었던 얀 후스(1372-1415.7.6.)가 출생한 곳이고 그는 1415년에 참된 성경적 개혁적 신앙 때문에 화형에 처하게 됩니다. 그곳이 현재 개신교의 숫자는 매우 적고 무신론자가 거의 90%에 해당하고 캐나다에서 온 선교사의 보고에 의하면 체코 현지인의 개신교 교회가 문을 닫아가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체코에서 한인 목회를 하는 한국인 목사님의 보고에 의하면 더 놀라운 것은 그 체코 현지인 개신교 교회도 선교에 대해 관심도 없다는 것입니다.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3. 세르비아 난민촌 봉사
세르비아에 며칠간 머물면서 난민촌을 방문하여 약 5백 명에 해당하는 난민들을 국제 선교단체 OM과 함께 섬겼습니다. 국가별 봉사자들은 미국, 프랑스, 스페인,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아르헨티나, 몰도바등 서구 대부분의 나라들이 와서 봉사했습니다. 한국인은 저희 부부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대부분의 난민들은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라크, 소말리아 지역에서 온 난민들이었습니다. 난민의 약 절반은 이란인이었고 그 다음으로 많은 난민이 아프가니스탄인이었습니다. 체코 프라하에서 동유럽 선교사 대회(8월 6-10일)에 참석하였습니다. 물론 헝가리와 체코는 동유럽이라기보다는 중유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나라를 버스로 이동했습니다. 버스를 사용한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경제적으로 저렴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버스로 이동하는 가운데 동유럽을 조금 더 가까이 볼 수 있고 현지인들을 직접 만나고 알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숙소는 대부분 그 나라에 계시는 선교사님들의 댁에서 지냈습니다. 대부분의 나라를 이동하는데 사용한 버스요금이 2-3만원 이었습니다. 저 아내는 국적이 대만이라 비자 받는 어려움 때문에 쉽게 비자를 받을 수 있는 터키를 경유해서 동유럽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7월 17일 터키 이스탄불에 저녁에 도착해서 하루를 선교사님 댁에 머물고 아침 일찍 나와서 이스탄불 국제버스 정류장에서 오전 9시 버스로 첫 동유럽 나라 불가리아 소피아로 향했습니다. 소피아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7시경이었습니다. 10시간 정도 소요되었습니다. 비용은 약 2만5천원이었습니다. 한 나라를 통과하는데 소요되는 버스비용이 매우 저렴했습니다.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로 이동하는데 기차 비용은 일인당 14유로 약 2만 원 가량이었습니다. 무궁화호 값과 비슷했습니다.
동유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99년에 발생한 동유럽에 발칸반도의 국가 코소보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코소보 사건은 슬라브계 정교회 국가 세르비아와 알바니아계 무슬림 국가 코소보와의 전쟁이었습니다. 그 전쟁으로 많은 코소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거의 인종청소 수준이었습니다. 수많은 코소보 여성들이 세르비아 남성에게 성폭행 당하면서 여성들이 겪은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비록 동유럽이지만 유럽에서 ‘문명의 야만’에 해당하는 이런 참극이 일어날 수 없다는 생각 가운데 미국을 중심한 연합군이 코소보 전쟁을 종식시켰습니다. 지난 2월 코소보의 수도 프리스티나에 가서 보니 코소보 전쟁을 종식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의 동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사건을 보도한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수많은 코소보 젊은이들이 빌 클린턴에게 열광하는 장면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동유럽에 관심을 가지게 된 두 번째 사건은 1990년대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쟁이었습니다. 크로아티아는 요즈음 동유럽에서 관광지로 뜨는 중요한 곳입니다. 크로아티아의 두브르부니크라는 도시는 아드리안 해의 보석이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그곳이 전 세계의 관광도시로 주목을 받고 있고 일본인이 그렇게 가고 싶어하고 한국사람도 많이 가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 전사한 수많은 사람들을 기념하는 곳도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도시에서 보게 되었고 하지만 그곳에 기독교인이 매우 적어 선교사가 필요한 곳입니다. 그곳에는 코저는 보스니아의 도시 중 모스타르라는 곳에 금년 2월 달에 방문하고서 너무나 놀라웠던 것은 도시 곳곳에 총알자국이 가득한 건물이었습니다.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의 모스타르의 공동묘지에서 보았습니다. 이 두 전쟁은 유럽에서 일어난 인종적종교적 전쟁의 대표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정치학자 사무엘 헌팅튼은 「문명의 충돌」에서 이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두 나라의 사건을 그 당시 접하고 언젠가는 그 나라를 꼭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럴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코소보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조만간 저의 아내가 대만국적이라 유럽에 가는데 비자를 받아야 해서 이 비자(E-Visa)를 받고 쉽수 있는 나라가 터키이기 때문에 터키로 비행기를 이용해서 먼저 갔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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