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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영훈 장로(명예원장)의 서거 1주기 맞이하여(1)
2018/08/27 13:1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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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 박영훈 장로는 1930년 8월 23일에 때어난 2017년 8월 31일 88세에 서거했다.
고인은 평생을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근면하고, 겸손함과 복음병원, 교단, 대학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왔다.
고 장기려 원장은 복음병원의 시작에 공헌하였다면, 고 박영훈 원장은 교단, 대학, 병원의 발전과 성장에 기여했다.
근 40년을 모셨던 서판수 장로(전 병원 행정처장)는 고인이 된 박영훈 장로의 1주기를 맞이하여 고인이 고신교단과 고신대학, 복음병원을 위하여 회생과 헌신과 봉사하신 삶을 회고한다며, 그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
서 장로는 거창창남교회 출신으로 1968년 10월28일에 당시 서무과장인 이재술 장로의 소개로 복음병원에 경리담당자로 입사했다. 이 때 고인은 미국 하버드 대학병원에서 연수 중이므로 뵙지 못했고 병원장인 고 장기려 원장을 만났다. 이날 오후 5시경 사택에서 입사 인사를 드릴 때 서 장로의 손을 잡고 “열심히 하세요”라고 말했다. 이때 서 장로는 역시 장기려 원장은 겸손하고 존경을 받을 분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서 장로의 병원 업무는 병원의 살림을 사는 경리업무와 야간 당직 등 일인 2역을 해야 할 상황으로 기숙사에 기거하면서 매일 밤 늦은 시간까지 앞만 보고 열심히 일을 했다. 그 당시 병원의 재정은 좋은 편이다. 부산시내 병원 중 유일하게 보너스 200%을 주는 병원이고, 유능한 외과계 의료인이 모이는 병원이었다.
고인의 미국 하버드 대학병원 연수는 1968년부터 1월부터 1969년 2월까지였다. 연수의 경비로 병원에서는 가족의 생활비를 지급하고, 미국의 체류경비는 부산 국제시장에 소재한 비니루상사(주) 고 양재원 사장(전 거창대성고등학교 이사장)이 월 1,000불을 부담했다. 또한 고 장기려 원장의 사택 건축비와 현 복음병원 1동 3층 병동 특실의 공사비를 기증했다. 이 분은 당시 서무과장 이재술 장로의 고향 친구이다.
서 장로와 고 박영훈 장로의 만남은 1969년 3월이다. 미국 연수를 마치고 귀국해 병원에 외과부장 겸 외과과장으로 근무하며 병원의 살림살이를 관여하는 자리였다.
고인이 미국 연수 기간 동안에 가정의 여러가지 일들을 보살핀 것에 감사하며, 귀국 후 가정에 저녁 초대를 받아 식사를 하면서 병원의 현안에 대한 일들을 나눈 일이 있다. 이 때 고인의 생각은 병원이 현재의 상황에서 안주하지 말고 비전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야한다는 것이다.
인재를 모으고 양성하는 일, 병원의 암센터 건립과 시설 장비를 보완하는 일, 의료인 양성을 위한 의과대학설립과 고신대학육성, 신학대학원 수도권 이전으로 교단에 기여하기 위해 병원의 경영을 이때부터 계획하고 있었다.그러나 1971년 후반기에 병원에 시련이 다가왔다. 이재술 서무과장의 사직과 이사회 이사간의 분쟁이 시작하여 법정 고소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희생자가 생겨 고인이 괴로워하는 일들이 있었다. 이사회의 분쟁과 1972년 부산대와 경북대 출신 의사간의 소소한 일로 고인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병원을 떠나 침례병원 외과부장으로 이동해 좋은 조건으로 근무했다.
이사회의 새로운 구성과 행정처장(B장로)이 밖에서 부임하여 1975년 1월에 서 장로는 경리계장에서 원무과장으로 자리를 이동하여 근무했다.
병원의 내분 이후 경영의 악순환으로 어렵고 사채를 이용하여 자금 조달을 하는 실정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사회(이사장 H 목사)에서는 병원의 경영진단을 실시해 문제점에 대한 대안으로 고인 박영훈 장로를 다시 모시는 것을 결의 하였다. 결의 내용은 고 장기려 원장은 61세 정년 명예원장으로 하고, 고인을 2대 병원장으로 70세까지 평생의 신분보장하고 경영권, 인사권 등의 전권을 주는 조건이었다.
1975년 11월에 서 장로는 고인과 시내 모처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병원의 현안과 앞으로의 대안 등을 논의하였다. 1976년 1월 1일로 고인이 진료부장으로 취임, 6월 21일에 병원장으로 취임하고 고 장기려 병원장은 명예원장으로 추대하여 평생을 사택과 급여를 드리는 것으로 하여 이 약속은 고인이 돌아가기 전까지 이행하였다.
고인이 취임하면서 서 장로는 1976년 1월 1일부로 총무(경리)과장으로 발령, 다시 병원의 살림살이를 맡게 되었다.
고인이 계획해 추진한 일들을 정리하여 보면
1. 암센터 건립하는 일을 먼저 추진하였다. 고인은 미국에서 연수 중에 연구한 간 이식수술을 개의 시험으로 성공한 후 간암 환자의 간 절제 수술 등을 시술하였고, 이후에 치료 시설이 없을 환자가 서울 연세 암센터로 이전하는 현실을 보고 암 센터의 건립이 시급함을 인지했다.
이 당시 전임자가 병원 2동 건물을 건립하다가 중단한 곳에 암 센터로 용도 변경하여 재추진하기로 하고 병원사정이 어려우므로 건축은 부민교회 이모 장로에게 병원 형편대로 건축비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착공하여 완공하였다.
장비는 고인 정기상 장로가 스펙을 작성하였고, 서 장로는 자금조달을 위하여 한국개발리스(주)와 절충하였다. 이때 한국개발리스(주)에 고인 남영환 원목실장의 자녀가 근무하여 도움을 받았고 암치료기구의 제작사가 일본 NEC사로 리스회사는 일본이 출자한 회사이므로 2백만불의 장비를 구입하여 암센터를 1978년에 개원하였다. 이 암센터의 개원은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고인 집념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 당시 복음병원이 암센터를 개원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복음병원은 존재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노후화된 시설과 장비 보완에 고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고인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한 이는 고 정기상 장로와 미국의 고 하병국 목사이다. 이를 실행한 이는 서 장로였다.
건물의 증축과 개축은 1.2.3.5동은 고인의 생각으로 이루어졌고 주요 장비인 CT는 부산에서는 최초로 1978년에 암센터의 개원과 동시에 설치 가동하여 영호남 지역의 주민의 진별 진단에 크게 기여하였다 할 수 있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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