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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난민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의 시각 (1)
2018/07/23 14:3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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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독일생활 초기에 어학원을 다니면서 함께 공부하는 다양한 외국인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은 경험이었다. 그중 크로아티아 출신의 ‘안나’가 있었는데, 그녀는 보스니아 남자인 ‘사울’이라는 애인과 함께 유고전쟁에서 피난 온 난민이었다. 사울은 항상 활기차고 허드렛일을 하며 열심히 살려고 했지만, 안나는 늘 고향과 두고 온 가족에 대한 향수로 슬픈 모습이었다. 이들과는 오랫동안 교제를 가졌다.
그러면서 나는 독일 안에는 일하고 공부하기 위해 온 외국인뿐 아니라, 난민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별히 1990년대 초 유고연방이 붕괴되고 보스니아 내전이 일어나면서 많은 난민들이 독일로 오게 되었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난민들은 안나나 사울처럼 착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전쟁이나 박해로 인해 고향을 잃고, 집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기에 마음 깊은 곳에는 슬픔과 상처가 있었지만, 독일에 와서 살 수 있게 된 것만도 큰 행운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계속 여기에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독일은 피난 온 난민의 경우는 전쟁이 끝나고 삶의 터전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 냉정할 정도로 다시 돌려보냈다. 그래서 우리 딸도 같은 반에서 아주 친하게 지내던 보야나라는 친구가 보스니아로 돌아갈 때에 이별의 큰 슬픔을 나누어야 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딸 아이 반에서 국경너머 화란으로 수학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그 반에 있던 보스니아 난민인 비올짜는 국경을 넘을 수가 없었다. 난민들은 보통 비자가 아니라 체류를 허락하는 둘둥(Duldung)이라는 것을 받는데, 독일 국경은 물론 자신이 속한 주 경계조차 벗어나지 못하게 그 거주가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다. 이들은 둘둥으로 체류연장을 받으면서 그때마다 엄격한 심사를 받아야 했고, 정식 일자리는 가지지 못하면서 주로 3D 업종에서 값싼 노동력으로 사용되는데 만족해야 했다. 이 기간 중에 죄를 범하게 되면 바로 추방이 되는 것이므로 대부분의 난민들은 독일 사람보다도 더 착하게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여간 수학여행에 이 비올짜가 못 가게 되었을 때에 선생님과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모두가 보쿰(Bochum) 시청으로 달려가 피켓을 들고 데모를 하면서 시장에게 친구가 같이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시장은 아이들을 정중히 만났고, 비올짜에게 특별 허가증을 내주어 수학여행을 같이 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그리고 며칠 뒤, 시청 중앙에 “우리는 함께 해요”라고 쓴 큰 현수막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보쿰시 신문 1면에 이 현수막과 아울러 시장이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게재되면서 이 내용이 소상히 시민들에게 전달되었다. ‘우리는 우리를 찾아온 난민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현수막은 마치 그런 우리의 목표는 하나이고 그래서 수학여행을 계기로 선생과 학생들 그리고 시장 모두가 이 목표에 도달했다는 승리의 선포 같았다. 이 모든 것은 미래 이 사회주역이 될 아이들로 하여금 어려운 약자 특별히 피난 온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교육 그 자체였다.
이처럼 독일에서 여러 난민들을 접하면서 나는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 나와 같은 사람들임을 배웠다. 그들은 전란을 피해 좀 더 안전한 곳으로 피난 와서, 좀 더 평안한 환경에서 자식을 잘 키우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남의 나라에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도 마다않고 입으면서 모든 것을 참고 조심하면서 살아가는 나그네 들이다.
난민은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저 강도만난 이웃일 뿐이다. 물론 그들 중에는 이상한 사람이나 위험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난민이 아니더라도 어느 사회나 있기 마련이다. 치밀한 난민정책을 통해서 그런 사람을 잘 찾아내고 분류해 내는 것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벼룩을 잡으려고 초가산간을 태우는 식으로 난민의 위험성을 부각하려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다.
나그네를 돌보는 것은 모세오경에 담긴 가장 중요한 정신이 아닌가? 강도만난 이웃을 돌아보아야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의 중심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다른 누구보다도 난민을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고 따뜻함으로 영접해야 할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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