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8.10.22 12:51 |
부·마 민주화 운동의 실상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2018/07/23 14:23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구글+로 기사전송 C로그로 기사전송
역사의 진실은 사실에 근거한 현장을 녹여내는 살아있는 인물들의 목소리나 자료가 말하는 팩트이다.
지난번 부마항쟁에 얽힌 이야기를 보도한 본보 ‘역사의 현장’을 보고 그 때를 경험했던 살아 있는 교계 인사들의 전화를 받았다. 그 가운데 임동규 목사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보충하려 한다.
그는 1979년도 4월 부산 생명의전화(이사장 김동수 장로)가 첫 창립되었을 때 전화 상담원 제1기생을 모집했다. 이들의 교육을 위해 무료 강사진을 구성하였는데 일주일을 남겨 놓고 갑자기 강사진들이 하지 못하겠다는 통보가 왔다.
창립을 불과 일주일 남겨 놓고 만만의 준비를 다한 상태인데 이게 웬 말인가? 커다란 시련이 아닐 수가 없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가 알아 봤더니 최성묵 목사와 임동규 EYC 회장이 있는 이상 생명의전화 창립은 요원하다는 전갈을 받았다. 의논한 끝에 두 분은 자진 사퇴하기로 하고 부산 생명의전화가 탄생 된 것이다.
생명의전화는 이 땅에서 목숨을 끊고 자살하는 이들을 전화 상담을 통해 그들을 살려 내는 귀한 선한 사마리아 운동이고 이 땅에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살리는 작은 예수 운동이다. 문제는 정보기관에서는 이 두 분이 들어가서 어떤 반정부 운동을 하기 위한 레즈탕드 지하 조직을 하려고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 당시 소위 반 체제인사들로 낙인 찍힌 블랙리스트 인사로 분류 된 것이다. 그 당시 일반 경찰 조직체에서 사법, 교통, 경찰관 업무보다 최고의 비중을 쳐 주는 경찰 정보과 형사들을 으뜸으로 대우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들이 정보과에서 몇 년간 고생한 후엔 진급과 동시에 좋은 보직으로 발령받기 때문에 그런대로 생색을 내고 다닌 정보과 형사들은 누구나 진급은 따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고가 점수로 파출 소장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훗날 옷을 벗고 난 후에 시민운동체에 들어가서 활동하여 부산에 시민단체의 대부가 된 인사도 눈에 띄게 TV에 나와 선한 어른 노릇을 하는 분도 있다.
그 때 당시 교회 안 밖으로 민주화 운동 했던 고호석 씨나 이호철 씨도 부산 YMCA나 중부교회를 드나들면서 브릿찌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기자의 예리한 판단에 의하면 필자는 때로는 경찰 정보과 형사에게 슬쩍 정보를 주면서 그들이 수집된 정보나 상부에서 내려 온 고급 정보도 서로 나누는 일도 있었다. 한 실제 일은 김광일 변호사외 임기운 목사를 경찰군·합수부에서는 검거령이 내려진 1979년 3월 어느 날 서부 경찰서 정보과 윤 모 형사가 "빨리 피하라"고 귀띔을 해 주는 바람에 김광일 변호사 사무실에 달려 가보니 법정에 변론하고 있어 쪽지을 건너 주고는 변론 마치면 바로 법원 청사 뒷문에 대기하고 있는 같은 부산중앙교회 장로인 임 모 교수의 피아트 승용차로 급하게 피했던 사실 때문에 임기운 목사는 대공 분실 망미동 보안사 에 연행 되어 결국 죽음을 당하였고 김 변호사는 합수부 인사들과 협상 끝에 여관방에서 조사 받기로 하고 겨우 죽음을 면한 사실이 있다. 그 인연으로 김 변호사는 필자의 신문에 재정 후원자로 무료 변호로 훗날에 크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임동규 목사에 대한 이야기로는, 경남정보대학교 초빙강사로 수락 받고 출근을 한 주일 남겨놓고 있는데 학교 당국의 아는 교목께서 “미안합니다. 여러 말 못할 사정상 강사가 취소되었는데 양해해달라”는 전화통보를 받아 그만 둔 사실도 있다. 그리고 부산YMCA 프로그램 간사직에 응시했는데도 사정상 거절된 일도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뻗쳐진 것이다.
부마항쟁에 몸담았던 역사의 진실을 한편이라도 사실로 남겨 보겠다는 의지가 보여 부족한 필자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음성이 마치 그의 살아 있는 그의 유언으로 느껴졌기에 더욱 애착이 갔다.
알고 보니 슬하에 딸 셋을 두었는데 첫째 딸이 심장병으로 일찍이 하늘나라에 간 것이 한이 된 2017년 10월 어느 날 서울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를 찾아가 자신의 남은 꿈을 호소하면서 자신이 이제 할 일이 있다면 심장병으로 간 딸아이와 같은 소아 청소년 심장병 무료치료를 위한 재단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말하였다. 가만히 듣고 있던 김삼환 목사는 정말 가슴 아픈 자녀의 이야기에 감동이 되어 기금 3억 원을 약속했다, 그래서 2017년 11월 고신대복음병원 당시 병원장 임학 장로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하고 병원 안에 자선 무료심장병 치료를 위한 사무실과 근무 할 자원 봉사자 몇 분과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청원했다.
작년 11월 동래 농심호텔에서 만난 임학 병원장은 너무 범위가 벅차고 그때 당시 소아 심장병 환자는 거의 대부분 서울 중앙 병원에 치료받는 추세라서 정중히 거절 했다.
임동규 목사는 이런 사유로 거절 된 것 보다 거절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고 필자에게 전화로 들려주었던 내용은 "병원에서는 실무 관계자들이 말하기를 기금으로 제공하는 김삼환 목사는 WCC세계대회 부산 유치의 준비위원장으로서 고신 교단과의 신학적 이념에 맞지 않아서 거절 했다는 소리를 듣고 대단히 실망을 했다는 것이었다. 굴러들어 온 기부 능굴도 선한 사업인데도 이런 이유로 거부 한 것이 정말로 안타까웠다.

신이건 사장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kcnp1@hanmail.net
한국기독신문(www.kcnp.com) - copyright ⓒ 한국기독신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 많이본기사
  • 화제의 뉴스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정기구독신청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한국기독신문 (http://www.kcnp.com) | 창간일 : 1995년 4월 11일 | 발행인 : 김해옥 | 편집인 : 신이건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신상준 국장 
    602-053   부산광역시 서구 까치고개로 229번길 47-1
    사업자등록번호 : 758-96-00228 | 정기간행물등록 : 부산, 아00259
    대표전화 : 051-245-1235 | 팩스 : 051-245-2763 | kcnp1@hanmail.net
    Copyright 2015. kcnp.com All right reserved.
    한국기독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