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8.10.19 13:09 |
[기독교 교양 읽기 40] 《신》이 기독교 인문학 발전의 계기되길
2018/07/23 13:1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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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 교회부흥도 담보할 수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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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증명한다!
이 책은 우선 방대하다. 900쪽이 넘는데다 고대 철학에서 현대 신학까지 가로지르며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가를 이야기한다. 즉, 서양문명에서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인식하고, 신학적으로 이를 어떻게 증명했는가를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하나의 주제를 증명하기 위해 세부적인 명제까지도 가능하면 상세하게 설명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3부 ‘하나님은 창조주다’라는 주제를 이야기하면서, ‘창조론이 왜 《고백론》 안에 있나’ ‘창조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창조의 목적은 무엇인가’를 소주제로 내세워 하나씩 설명한다. 또한 이들 소주제를 설명하는 내용도 만만찮다. ‘태초는 언제인가’부터 시작해서 ‘영원이란 무엇인가’ ‘시간이란 무엇인가’ ‘천지란 무엇인가’ ‘창조의 여섯 날이 문자 그대로 6일인가’ ‘다윈의 진화론과 그 영향’ ‘창조론은 진화론을 수용할 수 있나’ 등 별도로 신학적/철학적 곁가지를 끄집어내 일일이 설명한다.
이를 위해 플라톤과 신플라톤주의를 받아들였던 아우구스티누스를 중심으로 교부철학과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고 요한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자, 칼 바르트와 파울 틸리히 등 현대 신학자들의 주장까지 연결시켜 하나님을 증명한다. 책이 방대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은, 나름대로 전문용어를 피하고 쉬운 낱말과 대화체 문장을 사용함으로써 독자들이 좀 더 친근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 《신》 || 저자 김용규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튀빙겐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위르겐 몰트만과 에버하르트 융엘의 강의를 들었다. 저서로는 《데칼로그》 《생각의 시대》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 등이 있다. Ivp, 2018. 42,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데칼로그》 / 김용규 / 포이에마
《하나님을 말하다》 / 팀 켈러 / 두란노

《신》이 기독교 인문학 발전의 계기되길
그럴 때 교회부흥도 담보할 수 있을 것
 
▌좌담: 김길구,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크기변환_Creation_of_Adam_Michelangelo.jpg▲ 유발 N. 하라리는 이제 인간이 신이 되고자 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선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용규는 기독교 인문학으로 하나님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신앙과 이성의 균형을 유지할 것을 권면한다. [그림은 미켈란젤로가 그린 이탈리아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아담의 창조〉]
 
“하나님은 모든 존재물이 존재하는 바탕입니다. 즉, 모든 존재물은 하나님 안에서 존재를 부여받아 존재하지요. ‘하나님은 존재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주마저 자기 안에 포괄하며, 무소부재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존재할 뿐 하나님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유일자다’라는 말은 바로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존재는 또한 자신의 내적 법칙인 ‘말씀’으로 모든 존재물을 자기 안에 창조하지요. ‘하나님은 창조주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부단히 자신의 피조물들과 관계하며 그들을 오직 자신의 의지대로 이끌어 가지요. ‘하나님은 인격적이다’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습니다.” [본문 56~57쪽에서]
 
인문학을 망라하여 신을 이야기하다
김길구 오늘로 ‘기독교 교양 읽기’가 마흔 번째를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는 900쪽이 넘는 아주 두꺼운 책을 택했습니다. 저자가 2010년에 펴냈던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의 개정증보판이라 할 수 있는, 《신》입니다. 이 책은 신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이 세대를 향해, 나름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김현호 저자는 이 책에서 서양철학과 신학, 역사, 문학에 더해 현대 물리학 등을 망라하여, 인문학적으로 오늘도 우리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이야기합니다. 최근 과학을 무기로 한 무신론자들을 비롯해 첨단기술을 이용하여 인간이 신적 존재로 바뀌고 있는 현실에서,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섬세하고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김수성 저자는 이 책의 목표를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바르고 정치한 이해를 통해 서양문명의 심층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이 책은 불신자나 일반 교인들을 대상으로 인문학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기독교의 하나님을 증명하는데 집중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궁극적인 목표는 ‘인문학으로 하나님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길구 맞습니다.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란 부제가 있습니다만 저자는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신을 떠난 인간’의 문제로 진단하면서 다시 신본주의적 관점에서 해답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켈란젤로가 그린 이탈리아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중에서 〈아담의 창조〉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책 맨 앞에 언급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현호 이 그림에서 흰 수염을 휘날리며 막 창조된 아담과 손가락을 마주대려고 하는 할아버지 같은 모습의 하나님이, 실제로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의 모습에서 나온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당시 인문학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한 르네상스인들은 제우스를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여겼다고 합니다.
 
‘인문학’과 ‘기독교 인문학’ 구분해야
김수성 그렇다면 ‘인문학적으로’ 하나님을 증명한다는 말에 있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김길구 저자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인문학은, 정확하게는 ‘기독교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르네상스 당시의 인문학은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의 회복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에 비해 기독교 인문학은 당연히 하나님 나라가 그 주제가 되어야겠지요.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기독교 인문학의 지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현호 그래서 저자는 먼저 그리스철학을 이야기하고 이어서 르네상스 초기 인문학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단테의 《신곡》에서 인용을 하고, 그것들을 기독교 인문학의 정점인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비롯한 다양한 저작과 상호 비교하면서 하나님을 속성을 찾아나가는군요.
김수성 역사적으로 본다면, 신이라는 코드로 서양사상의 두 기둥인 헬레니즘적 인문학과 히브리즘적 기독교 인문학을 가로 세로로 직조하면서, 하나님의 모습을 불신자나 일반 신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군요.
김길구 그래서 사회학자 등에게서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만, 신을 잃어버린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는 바는 적지 않다고 봅니다. 단적인 예로 헬레니즘 전통의 ‘불변성’과 히브리즘 전통의 ‘역동성’을 비교한 것은 하나님을 증명하는데 아주 중요한 키워드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인격성을 이야기합니다.
김현호 변하지 않는 제우스는 오늘날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책 속에 갇혀 옛날이야기로만 읽혀지는데 비해, 역동적인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오늘도 우리와 함께 다양한 모습으로 역사하고 있다고 구체화합니다.
김수성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 상호모순이 되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도 누누이 지적하고 있듯이 초기 기독교사상에는 그리스 철학이 상당부분 흡입되었고, 아직도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교회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는 자기가 원하는 神 만들어
김길구 사실입니다. 기독교 역사가 증명하고 있듯이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교부철학시대에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더하여 신플라톤주의에다 기독교 옷만 입혀 교리화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스토아철학이 기독교에 영향을 미칠 때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김현호 저는 대표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정점으로 동물-식물 등으로 계층화시킨 ‘자연의 사다리’가 기독교에 유입되어 ‘존재의 사다리’로 변형되었다는 것이 기억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천사-인간으로 서열화되고, 교회 안에서도 교황-주교-사제-평신도로 계층화되었죠. 사실 이 ‘존재의 사다리’는 사회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김수성 저자는, 대표적인 신학자인 바울이나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리스 철학에 영향을 받기는 했음에도, 이에서 벗어나 ‘십자가의 은총’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교리를 확립한 인물들이라고 지적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들의 사상을 물려받아 ‘존재의 사다리’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만인제사장설 등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아직도 직분을 계급으로 착각하는 교인들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김길구 끝으로 아우구스티누스가 “네가 하나님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 뭐 그리 놀라운 일인가? 만일 네가 그분을 파악한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했던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면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자칫, 내가 창조한 하나님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김수성 유명한 신화학자인 조셉 캠벨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신이라는 관념의 진정한 의미는 초(超)‘신학적’입니다. 이것은 정의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이 신비스러운 초신학, 살아 있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자 종말이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떠받치는 힘입니다.” 내가 만든 하나님을 내가 신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말입니다.
김현호 역사적으로 인간이 이성을 중시하면서 이러한 일이 일어났죠. 근대주의의 물결이 몰아치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아니 ‘이성이라는 하나님’이 세계를 잘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자만했습니다. 그러나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포악하고 어리석은가를 실감했습니다. 그 결과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하였지만, 이제는 첨단 물질문명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결과를 빚고 있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만의 하나님을 창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길구 이 책을 계기로 여러 사람이 다양한 저작물을 많이 출판하여 기독교 인문학을 더욱 발전시키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사회에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교회의 부흥도 새롭게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에는 제임스 K. A. 스미스가 쓴 《습관이 영성이다》(비아토르, 2018)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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