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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외과 칼잡이 의사 고 박영훈 장로와 양덕호 장로
2018/06/25 14:0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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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훈 전 원장(1930 ~2017.8.31).jpg
 
양덕호 장로(국제신문 발취).png
 
1970~1990년대 한강 이남에서 외과 의사로서 외과부분 명의 칼잡이는 장기려 박사가 인정 한 고 박영훈 전 고신의료원 원장과 양덕호 선생(전복음병원외과 2과장)으로 의료계에서 인정 하는 분이다. 박영훈 의사는 장 박사 밑에서 간이식 수술을 배우며 실험
을 위해 개의 배를 개봉하여 큼직한 손으로 오장육부를 살피고 생각지 못한 장기를 꺼내 수술하는 등 손 감각이 수술하기엔 타고 난 외과 의사였다. 장 박사는 평소에 자신의 제자로 경북의대 출신 박영훈 선생과 부산의대 출신의 양덕호 선생을 영원한 외과 의사 제자로 양성하고 자랑해 왔다. 혹자는 말하기를 큰 아들이 박영훈 선생(송도제일교회원로), 둘 째 아들이 양덕호 선생(산정현교회원로)이라 말했다. 박영훈 선생은 장 박사 말년에 고신 교단 장로로 남아 복음병원 원장 바턴을 이어 받은 관계로 장 박사와 다소 소원해져 통합 교단 부산노회 소속 산정현교회 시무장로로 있었던 양덕호 장로와 함께 신앙생활을 했다. 박영훈 원장을 병원 후계자로 삼았지만, 영적 후계자는 양덕호 장로를 삼아 같이 교회생활을 했다. 하지만 장 박사의 신앙은 말년에 함석헌 선생과 함께 내촌 우찌무라 간조선생의 무교회주의 일명 ‘퀘이커교’에 심취되었다. 그로인해 장 박사는 산정현교회에서의 십일조생활을 무시했고 결국 가정교회 형태의 신앙으로 일관해 교회를 나와 버렸다. 1975년 8월 여름 부산 모임을 복음병원 원장 사택에서 성경공부 식으로 하다가 산정현교회에서 때로는 예식장에서 함석헌 선생을 한 달 한 번씩 초청하여 부산모임 성서 연구를 하는 가운데 장 박사는 장로교의 헌법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말을 했고, 함석헌 선생이 맞장구를 쳤던 기억이 난다.
세월에 따라 신앙도 변하는구나 생각하면서 부산 성서연구 모임이 말년에 무교회주의로 간 함 옹의 퀘이커교로 인식하였다. 당시 산정현교회 담임했던 박광선 목사는 매우 당황했으나 장 박사의 고귀한 명성과 인격 때문에 당회에서는 거론조차 못 한 채 넘어갔다.
 
▲박영훈 전 원장
박영훈 전 원장은 말년에 외롭게 세월을 보내면서 오전에는 부평교회 옆에 있는 명성다방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우리가 명성캠프로 이름을 정하고 이곳에 모이는 인사로는 부민교회 원로 윤은조 장로, 고 정기상 장로, 그리고 황규제 전 병원 재정부장장로와 필
자가 만나 식사와 다과를 나누며 지나간 역사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어느 날 하루 박원장 왈 “신사장 한국기독신문에 연재했던 기획물 뉴스초점 글을 한권의 책으로 만들면 얼마나 비용이 나오나”고 해서 한 몇백 만원 소요된다고 했다. 그 이틀 날 병원 신협에서 신용대출로 돈을 주면서 이것가지고 출판을 해 보라고 했다. 한 두 달이 지난 후 신협에 이자연체가 되어 박 원장 집에 이자연체 지불등기를 받아 본 사모 목 권사가 전화가 와서 “이것이 어찌 된 것인가”라고 물어 사실대로 이야기 하고서야 안심 했다는 것 이었다. 행여 영감이 못된 도박이나 주식 투자를 하는가라고 의심을 했던 것이다. 명성캠프에 모인 인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아니 병원장 수 십 년간 하면서 어찌 비자금 하나 모아 둔 것이 없어 신용대출을 얻었나”고 했다. 박 원장이 정말 정직하고 깨끗하게 병원장 재직을 했다는 증명을 저절로 입증했다.
 
▲양덕호 장로
한편 양덕호 장로는 장 박사의 청십자병원에 남아 병원이 해체하고 복지재단 청십자복지회 이사장으로 유업을 계승하며 장 박사의 못다 이룬 가난한 이웃 섬김을 가업으로 모라복지관 등 복지 사업을 지금까지 산정현교회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장 박사의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일등 양아들답게 농어촌 의료봉사도 부산노회 남선교회연합회와 공동으로 해마다 농촌 미자립 지역을 돌며 노구를 불문하고 무료진료를 해 오고 있다. 장기려 박사의 인재 양성은 이 두 분의 외과 칼잡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의 인재는 예수 정신으로 삶속에서 사랑을 실천할 때 비로소 빛 이 나고, 소금으로 헌신하는 것이다. 두 분은 하늘나라에서 만나겠지만 양덕호 장로는 지금도 노인 요양병원에서 진료하며 건강한 강의로 노인학교에 무료 강의하는 아름다운 여생을 보내고 있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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