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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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트의 딸 리즈(Leeds)가 콜레라라에 감염된 사소한 일이 선교사들에게 영향을 준 일도 있었다. 1890년 5월의 일인데 헌트의 딸이 아프게 되자 부산에 있던 게일은 서울에 와 있던 헤론 의사(Dr John W. Heron, 체한기간 1885.6-1890. 7)에게 부산으로 와 치료해 주도록 부탁했다. 이 소식을 들은 헤론은 그를 치료하기 위해 급히 부산으로 내려오게 된다. 이때 동행했던 이가 캐나다 침례교 출신 독립선교사 말콤 펜윅(Malcolm Fenwick)이었다. 이 점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 리차드 럿트(Richard Rutt)의 기록이다. 부산에 온 헤론은 헌트의 딸을 치료해 주었고, 이때 당연한 일이지만 부산에서 일하고 있던 게일도 만나게 된다.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게일에게 헤론은 서울로 올라와서 같이 일하자고 제안한다. 그래서 게일은 부산에서의 활동을 접고 그해 5월 말경 서울로 올라가게 된다. 서울로 간 미혼의 게일은 헤론의 집에 체류하게 된다. 마펫이, 헤론의 집은 “모든 신임 선교사들이 집이었고 거의 모든 사람이 그들과 함께 하숙을 했다”고 엘린우드에게 썼을 만큼(1890년 7월 24일자 편지) 헤론의 집은 임시 거주지였다. 그런데 두 달 후인 7월 26일 토요일 오전 8시 헤론은 한국에서 5년간의 사역을 마감하고 34세의 나이로 급성 이질로 사망하게 된다. 제중원에서의 격무로 건강을 잃었지만 다른 선교사들과의 인간관계의 파괴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죽음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마펫은 해석했다. 헤론의 부인 하티 깁슨(Hattie Gibson)은 과부가 되었고, 두 딸 애니 그리고 제시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약 2년이 지난 1892년 4월 7일 게일은 헤론의 부인과 혼인하게 된다.
헌트와 관련된 또 한 가지 일은 그가 캐나다에서 온 의료선교사 하디(Dr Robert Hardie)를 부산 세관에서 일하도록 배려한 일이다. 1890년 9월 30일 내한했던 하디 의사는 제중원의 임시원장으로 일했는데, 이 때 본국으로부터의 후원이 원활하지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격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헌트는 그를 부산으로 오도록 초청해 주었고 세관전용 의사로 세관의 선박검역관으로 일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래서 하디 의사는 1891년 4월 14일 부산으로 오게 된다. 부산으로 옮겨 왔으나 생활이 안정적이지 못했다. 이 때 하디는 호주선교사 매카이를 통해 호주선교부로 이적을 고려했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헌트는 그를 항만지역 의사로 일하도록 배려해 주었던 것이다. 하디는 1892년 11월 18일 원산으로 떠나기까지 1년 5개월간 부산에서 체류했다.
헌트와 관련된 흥미로운 기록은 헌트의 딸 리즈와 한국인 권순도(權順度, 1870-?)와의 열애사건이다. 이 점에 대한 기록은 부산의 향토사가였던 박원표의 기록뿐이므로 고증이 필요하지만 사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권순도는 경남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출신인데, 서양문물에 관심을 가진 진취적인 청년이었다. 이런 연유로 부산 해관장 관사에서 일하게 되는데 이런 관계로 해관장 헌트의 딸을 알게 되었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두 사람은 사랑에 취해 도피행각을 벌이다 부모의 반대로 헤어지게 된다. 부산에서 10여년간 일했던 헌트는 1898년 2월 부산을 떠나게 되자 딸 리즈도 한국을 떠나게 되지만 그해 리즈는 아들을 낳았다 한다. 그 후에도 리즈는 아들 소식과 함께 권순도에게 편지와 돈을 보냈다고 한다. 해관을 나온 권순도는 포목상을 열어 부자가 되었고, 친구 이재영(李宰榮)과 함께 가홍정(駕虹亭)이라는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시간이 흘러 8·15 광복 직후 하와이에서 열린 한국인 동포 모임에 영국인 장교 한 사람이 나타난다. “제 어머니는 영국 사람이지만 아버지는 부산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인 여러분, 행운이 있길 빕니다.”
 
부산해관에서 10년간 근무했던 헌트는 1898년 2월 19일 부산을 떠나 청나라 황주해관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약 2년 간 근무했던 헌트는 1901년 5월 23일 런던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경북 칠곡에서 출생했으나 곧 부산 좌천동으로 이주하여 성장한 출신 독립운동가 장건상(張建相, 1882-1974)이 1908년 미국유학을 떠날 때 게일의 추천장을 가지고 연해주와 시베리아, 유럽을 거쳐서 미국에 도착하게 되는데 런던에서 헌트를 만났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를 보면 헌트는 런던에서 노후를 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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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기독교이야기31]부산해관원 조너슨 헌트(Jonathan H. Hun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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