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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기독교이야기30]부산해관원 조너슨 헌트(Jonathan H. Hunt)- 2
2018/05/28 12:2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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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트는 1887년 조선정부에 부산 해관터를 넓히기 위해 매축허가를 요청하였고 공사비 1천양을 지원받아 해관부지 부근 일대를 매축했다. 청나라 기술자가 설계하고 공사를 착공했고, 공사는 1888년 4월 29일 완공되었다. 이것이 부산해안의 첫 매축이었다. 1889년 10월에는 조선정부로부터 2,546량을 지원받아 매축지와 연결된 해관잔교(海關棧橋)와 보세창고를 건축했다. 헌트가 이임한 이후의 일이지만 1902년에는 부산매축주식회사가 기존의 선류장(船留場)에서 구 부산 본역(현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교보 빌딩과 무역 빌딩 근처)에 이르는 곳까지 매축하여, 1908년 8월 총면적 약 13만 5777㎡[4만 1375평]의 매축을 완료하였다. 그런데 그 동안 청나라가 부산해관의 주도권을 행사했으나 1984-5년의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게 되자 부산해관에 관한 실권은 일본이 장악하게 되었고,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이후 1906년1월부터는 일본인이 해관장에 임명되고 이름도 해관에서 세관으로 개칭된다. 이렇게 볼 때 헌트는 부산 해관 역사 초기의 중요한 인물이었고, 이 시기 부산을 오고간 선교사들과 접촉하며 상호교류 했던 중요한 인물이었음을 알게 된다. 노해리(Harry A. Rhodes)에 의하면 1891년 9월 당시 부산에 정주하던 유일한 서양인은 영국인 세관원 헌트 가정과 하디 의사 가정뿐이라고 말한다. 이 시기 내한하여 부산을 거점으로 다른 선교지로 이동했던 이들은 헌트의 도움을 받았다. 헌트는 조선어도 잘 했다고 한다. 러시아 첩보 장교로 1895년 12월 8일 부산을 방문했던 카르네프 육군중령은 이 점을 증언하고 있다. 그는 보좌관 육군 중위 미하일로프를 대동하고 7일 나가사끼를 떠나 이세마루호로 부산에 왔는데, 작은 만의 해안에 있는 일본인 거류지의 2층집에 살고 있던 미국인 L. F. 스미드를 만난 이후 헌트를 만났는데 이런 기록을 남겨주고 있다. “스미드 씨 집으로 숙소를 전한 후 나는 세관으로 향했다. 그곳의 책임자는 전형적인 영국인으로 이름은 J. H. 헌트이고 10년간 부산에 살고 있는데, 조선말을 잘 하였고, 이 나라에 대해서 그리고 이 나라가 지니고 있는 능력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헌트 씨는 탐험대가 말(馬)과 그 밖의 것들을 구입하고 임대하는데 필요하다면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했다. 다음날 나는 다시 헌트 씨를 만나러 갔다. 그의 집은 일본인 구역의 동북쪽, 이른바 외국인 거류지에 있었다. 가는 도중에 우리는 험한 기슭 오른편에 M. G. 셰벨레프가 사들인 부지를 지나가게 되었다. 그 부지 아래에는 조선인들의 농가가 몇 채 있었다. 헌트 씨의 집 앞으로는 포대가 위치하기 좋고 모든 만으로 나갈 수 있으며, 만을 향하여 총을 쏠 수 있는 산이 만(灣)쪽으로 향하여 돌출되어 있었다. 일본인들이 막대한 자금을 들여 이 산을 사고자 했으나 조선의 조정은 헌트씨의 조언에 따라 이 산을 팔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헌트 씨와 스미드 씨와 함께 부산에서 지금껏 살아온 주석윤 동래 관찰사를 찾아갔다. 산에서 내려와 반 베르스타 쯤 가서 우리는 관찰사가 거주하는 초량이라는 마을로 들어갔다.” 선교사들의 기록을 보면 헌트와 관련된 일화가 적지 않다. 초기 선교사들은 선교지 답사를 위한 지역 순회 여행을 다녔는데, 평양에 처음으로 선교여행을 갔던 이는 아펜젤러로 일려져 있다. 아펜젤러는 1887년 4월 24일 평양을 방문했는데, 이때 동행했던 이가 다름 아닌 부산에 체류하던 세관원 헌트였다. 언더우드가 평양에 처음 간 때는 1887년 가을이었다. 이때 언더우드는 평양 의주 소래 송도로 첫 여행을 갔고, 언더우드는 1889년 3월 릴리아스 홀톤과 결혼하게 되자 신호여행을 겸해 다시 평양을 방문한 일이 있다. 헌트가 아펜젤러와 같이 평양을 방문한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선교를 위한 지역 순회는 아니었을 것이다. 1885년 10월 입국한 헌트는 서울에서 근무하던 중 부산으로 왔는데, 그도 평양을 가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펜젤러와 동행한 것으로 보인다. 헌트가 기독교 신자였던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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