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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기독교이야기29] 부산해관원 조너슨 헌트(Jonathan H. Hunt)
2018/05/08 14:1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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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방에서 일한 초기 선교사들의 행적을 뒤지다보면 한 사람의 이국인과 마주치게 된다. 선교사는 아니었으나 선교사역에 영향을 주었고 선교사들의 왕래와 부산 정주에도 도움을 주었던 인물, 그러면서 서양인들의 인적 연쇄 중심에 있었던 인물. 그가 바로 세관원 헌트(Jonathan H. Hunt)라는 인물이다. 그는 영국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영국계 미국인이다. 한문으로는 하문덕(河文德)이라고 불렸다.
우리나라에서 세관을 처음에는 해관(海關)으로 불렀는데, 1904년부터 지금의 세관(稅關)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부산에서의 해관은 따지고 보면 강화도조약으로부터 시작된다. 일본은 1875년 5척의 군함으로 부산에서 무력시위를 벌이고 강화도에서는 운요호사건(雲揚號事件)을 계기로 1876년 2월 27일 이른바 ‘강화도 조약’을 채결한다. 조선은 20개월 이내에 부산항 이외에 2개항을 개항하고 일본 상인들의 자유보장, 일본영사의 주재, 일본인 범죄행위에 대한 영사 재판권 인정 등을 채결했다. 부산항 개항업무는 동래부사가 주무로 관장했고, 조정에서 파견한 감찰관이 동래부사와 협의하여 외교업무를 처리했다. 1883년 8월 19일 외교 및 통상 사무를 위해 부산에 감리(監理)를 두었고, 동래부사 이헌영(李憲永)이 겸직하였다. 1883년 7월 3일, 혹은 11월 3일에는 부산해관이 설치되는데, 이때를 근대 부산세관 역사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부산해관은 본정 2가 3번지의 일본인 가옥을 빌려 개청했는데, 얼마 후 인근 일본인 가옥으로 이전했다가, 이곳이 부산 본정 2정목, 곧 지금의 중구 동광동 2가였다. 1885년에는 현 부산데파트(중구 동광동 1가 1) 자리에 목조 2층 청사와 보세창고 1동을 지어 이전하게 된다. 독립관서로서 감리서(監理署)가 설치된 때는 1890년이었다. 그러나 1895년 5월 1일 폐지되었다가 1896년 8월 7일 다시 설치된다. 참고로 부연하면 인천해관은 1883년 5월 12일에, 원산해관은 10월 1일에 설치된다.
그런데 부산해관이 설치되고 부임한 첫 해관장이 영국계 미국인 넬슨 로바트(William Nelson Lovatt, 1838-1904, 재임기간 1883-1886)였다. 그는 1883년 10월 5일 45세의 나이로 부산으로 부임하였고, 11월 3일에는 부산 해관의 공식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1884년 7월에는 부인과 4살 되는 딸이 부산으로 왔는데, 이들이 부산에 온 그리고 부산에 거주한 첫 서양인 가족이었다. 로바트는 1886년 5월 이임하게 된다. 2대 해관장은 프랑스인 피리(Alexandre Theophile Piry, 1851-1918)였는데, 1886년 6월 1일 부임하여, 1888년 7월 26일까지 근무했다. 공식직함은 Acting commissioner, 곧 海關稅務司補였다. 3대 해관장으로 부임한 이가 조나단 헌트(Jonathan H. Hunt, 재임기간 1888-1898)였다. 김재승, 윤광운 등 해관 관련 연구자들이 그를 영국인으로 기술하고 있으나 그는 영국인이 아니라 영국계 미국인이었다. 나는 나의 『부산지방기독교전래사』에서 그의 이름을 ‘존 헌트’라고 썼으나 최근 입수한 웨인 패터슨의 저서(In the Service of His Korean Majesty)를 통해 헌트의 이름이 존이 아니라 조나단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1885년 10월 3일 신임 총세무사 헨리 메릴(Henry F. Merrill)을 수행하여 조선으로 입국하여 서울의 총해관에서 서기로 근부하던 중 부산 세관으로 오게 된 것이다.
그는 1888년 7월 27일 부임하여 1898년 2월 18일까지 10년간 재임했다. 부임 당시 그의 공식적인 명칭 또한 해관세무사보였다. 당시 조선 정부는 관세행정 및 해관운영 등에 관한 경험이 전혀 없었으므로, 청국의 이홍장(李鴻章)이 추천한 독일인 묄렌도르프(Möllendorff, 穆麟德)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협판으로 고용해 해관 창설과 운영에 관한 업무를 총괄하게 했다. 그런데 그의 권고로 위에서 소개한 외국인들을 해관장으로 초빙하게 된 것이다. 3대 해관장 헌트는 이홍장의 추천으로 부산으로 왔고, 그의 재임기 중구 중앙동에 있던 부산해관부지 매축공사(釜山海關敷地埋築工事)를 했다. 부산해관이 개설된 당시 부산항만 설비 혹은 시설로는 일본 전관 거류지 동쪽 용미산(옛 부산시청 자리, 현 부산 롯데 월드 예정지) 아래 약 2만 3140㎡(7,000평)의 선류장(船留場)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무역의 발달에 따라 소형 선박의 정박에 이용되는 선류장이 아니라 대형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항만이 필요했다. 그래서 부산해관 북쪽 해안의 매립 공사를 의도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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