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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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읽는 십계명
요즘 기독교인들은 십계명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구태의연한 옛날 이스라엘의 법규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십계명을 현대적 의미로써 풀이한다. 문화의 옷을 입혀 보여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화현상으로만 이야기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어차피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신학적인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종교는 문화의 옷을 입고 나타나므로, 십계명을 기독교문화로 표현해낼 수 있다’고 전제한다. 그래서일까, 십계명을 문자 그대로가 아닌, 현재 우리의 삶과 환경에서 확장하여 해석한다. 또한 그의 그림에 관한 지식을 보여주듯, 곳곳에서 다양한 명화를 꺼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괜찮은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신학적인 문제를 문화로 설명하려고 하니, 가끔 부대끼는 곳이 툭툭 튀어나와 앞뒤 맥락을 연결하며 읽어야 하는 부분도 있다. 그래도 십계명을 문화적으로 해석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설명하고자 한 시도만큼은 충분히 흥미를 끌만하다.
이 책은 저자가 2015년에 《월간고신 생명나무》에 연재했던 글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펴낸 것이다. 당시 《월간고신 생명나무》에서는 한 해 전체를 십계명 특집으로 배정하고, ‘원문으로 읽는 십계명’ ‘문화로 읽는 십계명’ 등 다섯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 《십계명, 문화를 입다》 || 저자 안재경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경기도 남양주의 온생명교회 담임으로 시무하면서 웹진 〈개혁정론〉의 운영위원 및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고흐의 하나님》 《렘브란트의 하나님》 등이 있다. SFC, 2017. 10,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데칼로그-십계명,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김지찬 / 생명의말씀사
《삶의 목적과 의미》 / 마이클 호튼 / 부흥과개혁사
《오래된 새 길》 / 김기석 / 포이에마

 
기독교문화의 풍성한 발전이 곧, 복음 전파의 지름길이다
▌좌담: 김길구,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Marc-Chagall-The-Story-of-the-Exodus_5. Moses Beholds All the Work.jpg▲ 십계명은 오늘 우리의 무분별한 문화에 비춰 새롭게 인식해야 할 중요한 규범이라 할 수 있다. [그림은 마르크 샤갈이 그린 ‘Moses Beholds All the Work’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십계명을 케케묵은 옛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라, 하지 말라’는 요구 또는 명령들의 모음집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람이 이룬 모든 것을 문화라고 한다면, 사람은 어느 누구도 문화를 피하거나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세상 문화로 말미암는 십계명에 관한 왜곡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인은 문화로 인해 왜곡된 십계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결국 믿음까지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서문’ 중에서]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십계명
김길구 오늘날 우리 한국 기독교계가 고민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로 기독교문화의 침체 또는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야기할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기독교문화를 다시 한 번 고민하게 하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현호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기독교 예술단체가 설립되어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라는 카테고리를 넘어 일반인들에게까지 어필하거나 그들과 공유할 수 있는 작품 활동은 부족한 것도 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수성 저자는 십계명 하나하나를 이야기하면서 대체로 독자에게 익숙한 그림을 먼저 끄집어내 소개합니다. 서문에서는 고갱의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누구며 어디로 가는가?〉를, 제1계명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를, 제6계명에서는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제시하였습니다.
김길구 계명을 이야기하기 위한 예시로서 그림 등 유명한 작품을 먼저 소개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흔히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하는데, 현대인들에게 다소 멀게만 느껴지는 십계명의 의미를 우선 그림을 통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배려한 것 같습니다. 사실 저자는 그림과 관련된 책을 저술하기도 한 분이죠.
김현호 십계명을 현재 우리 사회의 현상과 비교하면서 설명한 것도 관심을 끄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단적인 예로 제3계명을 이야기하면서 오늘날 우리 교회에 제대로 된 ‘고백문화’를 만들어 가야함을 역설합니다. 그리고 제1계명에 ‘신들의 공습이 시작되었다’, 제3계명에 ‘하나님의 이름을 찾아주세요’ 같이 친근한 제목을 붙인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타 종교에 비해 상당히 윤리적인 규범
김길구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볼까요. 사실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문화는 장르 간에 균형이 깨지게 됩니다. 특히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말씀을 내세움으로써 문자적인 면에서는 지속적으로 발전하였지만, 조각이나 회화 쪽은 상당히 침체일로를 걷습니다.
김현호 초대교회 이후 계속 논란은 있었지만,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상을 일반화하였지요. 특히 문맹자가 많은 현실에서 그림이나 조각으로 이들에게 성경 말씀을 깨닫게 한다는 의도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방정교회에서는 이콘(icon)이 크게 발달하였죠.
김길구 루터와 츠빙글리,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은 성상을 강력하게 반대하였습니다. 루터는 이것이 ‘우상 숭배를 조장하는 행위’라며 ‘예배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한다. 말씀은 우리에게 빛과 지침을 제공’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렇기에 기독교는 ‘책의 종교’로서 발전해 왔습니다. 이에 따라 기독교 미술은 상상력을 풍부하게 발휘하지 못하고, 성경 말씀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데 그칩니다.
김수성 기독교가 말씀 중심으로 발전해왔다면, 십계명 역시 과소평가할 수 없는 의미를 가진 규범으로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십계명은 당시 인근 지역의 다른 신들에 대한 예배 행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윤리적인 생활규범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처음에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고 선포한 것부터 그러합니다.
김길구 당시 다른 신들에 대한 예배에서는 인신공양이나 신전 창녀들과의 결혼예식 등이 횡행했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이스라엘민족에 대해서 ‘살인하지 못 한다’ ‘간음하지 못 한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인명존중사상을 고취하고, 예배를 빙자한 난혼(亂婚)을 경계하라고 한 것입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앞선 윤리의식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현호 오늘날에도 십계명은 우리 믿음의 나침반으로 역할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항상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십계명은 나침반과 같이 결국 우리가 나아갈 바를 바르게 가리켜줍니다. 광야에서 헤매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올바로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주었던 것과 같이.
김수성 십계명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궁극적으로 해방과 평등공동체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규범이라고 지적하는 분도 있습니다.
김길구 이집트에서 해방된 이들에게 하나님은 참인간다운 삶을 누리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은 이집트 종살이에서는 꿈도 꾸지 못했던 달콤한 휴식의 시간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족간의 유대를 돈독히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김현호 그런데 주 5일 근무가 일반화된 오늘날의 현대인에게도 안식일은 찾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생산성 향상에 내몰린 현대인, 오로지 발전만을 추구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쉬는 것이 사치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조금 더 깊게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도
김수성 디지털 네트워크가 우리의 안식을 빼앗아 가버렸죠. 쉴 사이 없이 울려대는 벨 소리와 문자 소리, 여기에 더하여 소셜 미디어(SNS)가 더해져 스스로 24시간 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도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아주 가볍게 터치하고 지나쳐버렸습니다.
김길구 이 책이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현상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다루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문화만 입힐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를 좀 더 깊이 있게 분석하면서 십계명 본래의 의미를 되새겼으면 참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입니다. 단적인 예로, 제8계명 ‘도둑 아닌 사람이 없다’에서 앤디 워홀의 〈마르린 먼로〉 작품을 인용하면서 천박한 자본주의의 무분별한 가짜 복제에 대한 부분만 강조했습니다. 대중이 그에게 환호하는 이미지의 대중화, 과거 소수 특권층의 소유에 대한 표현의 보편화와 같은 의미는 간과하였습니다. 또한 미술사의 교과서라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서론은 ‘미술(Art)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기독교문화를 논하기에 앞서 인용된 사진 11컷 전부가 저명한 서양예술인의 작품인데, 성경을 소재로 한 것은 3건에 불과합니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현호 신학적 의미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한계 때문이 아닐까요. 또한 잡지에 ‘문화로 읽는 십계명’이라는 타이틀로 연재해야 하는 한계도 작용했을 것이고요.
김수성 어쨌든 십계명에 문화의 옷을 입히는 시도는 바람직하다고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갈수록 빈약해져가는 기독교문화의 토양에 대해 우리 모두의 관심을 촉구한 저작이라 생각합니다.
김길구 저자가 지적했듯이 현대는 이미지라는 우상이 지배하는 사회로 급변하고 있습니다. 주체성이 부족한 사람은 아예 이미지를 숭배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기독교가 나가야 할 길은 기독교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발전시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김영봉 목사의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IVP, 2016)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정리: 김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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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양 읽기37] 기독교문화의 풍성한 발전이 곧, 복음 전파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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