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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삼손, 신앙의 영웅이 가야할 길을 묻다
2018/04/09 11:5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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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호 -강진구교수(6면)사진.jpg
 
기름기를 뺀 영화 ‘삼손’
<십계>와 <벤허>를 기독교영화의 진수로 여기는 기성세대에게 구약성경에 나오는 삼손의 이미지들은 모두 세실 드밀(Cecil B. DeMille)감독의 영화 <삼손과 데릴라>(Samson And Delilah, 1949)로부터 나왔다. 드밀 감독은 근육질을 뽐내는 괴력의 사나이 삼손(빅터 마추어)을 히브리민족의 신앙과 전통을 어기고 이방인 블레셋족의 아름다운 처녀 데릴라(헤디 라마)와 사랑에 빠져 몰락하고 마는 영웅의 모습으로 그려냈다. 이 영화는 미국 개봉 연도 흥행순위 1위를 기록할 만큼 크게 성공했고 그 영향력은 온 세계로 퍼져나갔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성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삼손이 그리는 사랑과 모험을 거대한 화면에 담았으니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침대에서 이루어지는 신분을 초월한 남녀 간의 사랑과 사자를 찢어죽이고 블레셋 사람을 몰살하는 액션장면은 자칫 선정성과 폭력성 논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지만 인간이 저지른 죄와 이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란 성경의 기본 배경덕분에 윤리적 비판을 면할 수 있었다. 세실 드밀 감독의 <삼손>은 한마디로 대중이 좋아하는 대중을 위한 대중영화로서 충실했다는 평을 받아왔다.
세실 드밀 감독의 <삼손과 데릴라>의 힘이 너무 큰 것인지 지금까지 그에 필적할 만한 ‘삼손 영화’들은 영화관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일부 교회 교육용으로 나온 DVD나 TV용 드라마로 연출된 작품들이 있었지만 1949년작 <삼손과 데릴라>에 필적할 만한 영화는 나타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브루스 맥도널드 감독의 영화 <삼손>이 2018년 새로운 이미지로 탄생했다. 나름 그 이유가 있다.
최신 영화 <삼손>이 <삼손과 데릴라>와 다른 점은 제목을 통해 상징적으로 그러난다. 성경이 주목한 인물은 어디까지나 ‘삼손’이지 ‘데릴라’가 아니란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데 세실 드밀 감독 이후 삼손은 항상 데릴라와 짝지은 캐릭터로 인식되어 왔다. 물론 삼손의 타락과 비극적 인생에 데릴라는 결정적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성경 사사기에 언급된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삼손이다. 드밀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서 데릴라를 삼손과 대등한 비중을 부여하며 연출했다. 삼손의 고뇌만큼이나 데릴라의 유혹은 강하게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이후에 나온 삼손 관련 영화들 가운데는 바로 데릴라의 유혹에 연출 역량을 치중한 나머지 성경의 내용을 묘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영화들도 있었다.
브루스 맥도널드 감독의 새로운 영화 <삼손>은 데릴라의 선정적 유혹을 걷어내고 삼손에게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삼손이 놀라운 힘으로 벌이는 살육장면 역시 성경의 내용을 이해시키는 한도 내에서 폭력이 절제된 모양새를 이루고 있다. 한마디로 일반대중이 기대했던 화려하고 스펙터클하며 더 나아가 선정적인 장면은 쏙 빠진 기독교 신앙영화의 본래 모습을 찾으려는 의지를 확고하게 보여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 때문인지 <삼손>은 국내개봉을 앞두고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12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이는 <삼손>을 만든 제작사의 면모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삼손>을 제작한 퓨어 플릭스(Pure Flix Entertainment)는 미국에서 기독교영화를 잘 만들기로 소문난 기독교영화전문제작사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4년간 개봉된 퓨어 플릭스의 영화만 해도 <신은 죽지 않았다1,2>를 비롯해서 <예수는 역사다>, <신을 믿습니까> 등 이미 네 편에 달한다. 퓨어 플릭스가 미국에서 제작‧배급한 영화 타이틀이 수십편에 이른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퓨어 플릭스 영화들은 계속 대한민국에 수입 개봉될 가능성이 높다.
퓨어 플릭스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영화 사역(MOVIE MINISTRY)’에 대한 사명선언문을 붙여놓고 있다.
‘우리의 열정은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의 문화에 영향을 주는 영화를 창작하는 것입니다(Our passion is to create films that impact our culture for Christ)’
할리우드가 지향하는 세속적이며 상업적인 성공과 달리 기독교 신앙영화의 순수성을 고집하는 퓨어플릭스의 사명선언문은 <삼손>이 왜 <삼손과 데릴라>와 다른지를 상징적으로 설명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삼손의 힘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영화 <삼손>은 삼손과 데릴라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드밀 감독의 영화와는 다르게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나실인 삼손과 이스라엘 민족을 지배하고 있던 블레셋의 발렉왕(빌리 제인)과 그의 패역한 아들 랄라(잭슨 라스본)과의 대결 구도로 이끌어가고 있다. 이것은 삼손의 정체성을 데릴라와의 관계에 치중하지 않겠다는 감독의 성경적 충실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영화는 감독의 상상력이 개입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내용과 적어도 90% 정도는 일치하고 있다.
영화의 주된 갈등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삼손과 우상 다곤(Dagon)을 섬기는 블레셋과의 싸움으로 묘사되며, 그 내면에는 하나님이야말로 참된 신이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점이다. 흥미롭게도 블레셋 왕 발렉이 우상 다곤을 정치적으로 활용한다는 언급을 통해 다곤신이 진정한 신이 아닌 단지 통치의 수단에 불과한 사실을 고백하는 장면이 영화에는 등장하고 있다. 블레셋의 발렉왕(빌리 제인)은 아들 랄라(잭슨 라스본)에게 이렇게 말한다.
“신이 무엇인지 알아야 해. 저들에겐 상징이자 평민들에겐 숭배의 대상이지만 우리에겐 통제의 수단이야. 내가 다곤이고 너도 다곤이 될 수 있어.”
우상숭배를 통해 백성을 통제하는 한편으로 스스로가 우상이 되고자 하는 과거 권력자의 속성을 한순간에 알아챌 수 있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영화는 또한 삼손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나실인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며 삼손에게 일어나는 문제들이 나실인으로 지켜야할 약속을 소홀히 여긴데서 비롯되었음을 분명히 한다. 나실인이란(민6:1-21) 구별된 자의 의미로 삼손은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야 하며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고 삭도를 머리에 대지 않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나실인으로서 지켜야 할 이 약속들을 모두 어기는 죄에 빠져들고 말았다.
우리는 흔히 삼손이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머리카락이 잘렸기 때문이라고 속단하고 만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일로써 삼손이 힘을 쓰지 못하게 된 본질적인 이유가 되지 못한다. 삼손이 힘도 쓰지 못하고 블레셋에 붙잡혀간 이유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사람으로서 약속을 지키지 않고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한 채 죄의 구렁텅이 속으로 자신을 방치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삼손이 긴 머리카락을 가졌기 때문에 놀라운 힘을 썼다고 기록하고 있지 않다. 어디까지나 하나님께 감동되어 있을 때 그 힘이 나타났을 뿐이다. 즉 삼손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었을 때 손에 아무 것도 없어도 사자를 찢어 죽일 수 있었고(삿14:6), 수수께끼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기 위해 아스굴론에 내려가 그곳 사람 삼십 명을 쳐 죽일 수 있었다(삿14:19). 삼손의 힘의 근원은 단순히 머리카락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밝히고 있는 것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 수 없다. 영화 속 삼손은 말한다. “벌써 두 개를 어겼는데 머리마저 자르면 내 힘이 사라질까봐 두려워요.”
 
포스트모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의미
2018년 영화 <삼손>은 예술적이거나 대중적 의미보다도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기독교인에게 신앙적 영웅의 삶이 무엇인지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근본적으로 사사기의 문화적 상황은 지금의 포스트모던 사회와 닮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기 보다는 개인의 선택과 취향을 중요하게 여기고 또한 이를 가치판단의 근거로 삼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17:6, 21:25)
이 보다 더 사사기의 주제를 압축할 수 있는 구절은 없다.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생활로부터 멀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과 같은 이방 족속들에 의해 지배당하고, 고통을 겪으면서 비로소 하나님을 찾아 도움을 호소하며 울부짖으면 그 때 하나님은 사사를 보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는 이야기는 사사기에서 늘 반복되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 원인은 하나님 중심의 사고와 행동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바로 잡아주고 인도할 지도자가 부재했던 까닭이다.
예술과 패션에서 동성애에 이르기까지 현대인들은 자신의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맞으면 그것을 옳다고 여기는 문화적 상대주의에 익숙하다. 지나친 상대주의는 진리마저도 개인의 판단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즉 하나님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재단해 버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신앙과 전통 그리고 도덕적 규범은 무시당하기 쉽다. 현대인들은 삼손의 힘이 넘치는 외모에는 눈길을 주지만 그 힘이 어디로부터 왔는지에 대해선 알지 못하며 관심조차 없다. 누군가 삼손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려도 그것은 개인의 사소한 의견으로 치부해버릴 뿐이다.
영화 <삼손>의 한국어 포스터에는 ‘주여 당신의 힘을 주소서!’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영화 속에서 삼손이 힘이 필요할 때 마다 하나님께 간구했던 표현이다. 어벤져스와 같은 만화적 영웅들이 자신의 능력을 뽐내는 영화들 속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제대로 된 영웅의 일갈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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