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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났던 부산 YMCA 사무총장 최성묵, 임동규 목사
2018/03/26 16:5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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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6_165519.png▲ 좌로부터 고 최성묵 목사, 임동규 목사
 
  고 최성묵 목사는 포항 흥해 출신으로 서울대학 수학을 전공하다가 3년 중퇴하고 한국 신학대학 신학과 연세신학대학원 석사을 마치고 부산 미문화원 프로그램 인턴 간사로 근무하다가 부산YMCA가 부산 중구 광복동 시대인 1972년부터 1975년 8월까지 딱 3년 4개월간 부산YMCA총무로 들어가 근무를 했다. Y에 들어간 것도 과히 개혁 드라이브로 요즘 말하면 혁명적 내부개혁을 주도하다 싶이한 성공한 개혁운동이었다.
그 당시 이사장은 부산초량교회 시무장로로 성장기업 총수인 故 정태성 장로와 그 기업 그늘에 있는 수족과 다름이 없는 김정식 성창기업 총무 이사, 한국요업 대표이사 서석호 장로 등 이사를 몰아내는데 일등공신이 최성묵 목사였다. 함께 도왔던 여해룡, 이직형, 이관동, 김인수 젊은인사들이 중앙동에 있던 Y건물을 팔았던 기금일부 2천만원상당액을 정태성 이사 사돈인 백흥섬유(주) 백남조 부전교회 장로에게 차용해 주었다가 회사가 부도로 낭패를 당하자 이 문제를 걸고1차 개혁을 감행하여 이사장퇴진과 아울려 개혁을 주도하여 일괄 이사진 완전 물갈이하였고, 그 성공으로 최성묵 목사가 총무로 들어가게 되었다.
1972년 2월, YMCA정기총회를 보름 앞두고 미문화원에서 모의를 하였다. 부산YMCA총회 시 정태성 이사장 주류이사들을 갈아엎어야 한다고 그 당시 부산 교계의 양대 산맥이었던 故 김길창 목사가 설립 한 남성학교 계열 학교 경성대 교수 교직원 다수를 Y정회원으로 가입시켜 인원 동원에 활용한 것이다.
부산Y가 광복동에서 더부살이로 또다시 부산 역전 앞건물에 전세 신세를 지게 된 몇 년 사이 최성묵 총무는 지금의 초량동 Y로 가기위한 전초 기지로 건물신축에 따른 설계이며 건축을 위해 죽을 고생을 한 시기였다. 입에 겨우 풀 칠할 정도로 가난한 기독교 대표기관이었다.
서울 유명 반 체제인사 강원룡 목사, 한완상 교수, 서남동 교수, 문익환 목사, 문동환 목사, 김동길 교수 등 유수한 민주인사들이 방문해 강연과 세미나를 열어 6월 민주항쟁의 씨앗을 심기시작하면서 민주열기를 서서히 지피기 시작했다.
우연의 계기가 된 장소에 방화사건이 된 미문화원, YMCA의 개혁모의를 했던 곳이 미문화원이고 1980년 광주민주화사태에 미군이 전시작전권을 장악하고 있는데, 왜 광주사태에 군을 파송하여 억울한 민중을 죽게했느냐라고 미군에 대한 항거표시로 미문화원에 방화한 문부식, 김은숙 고신대학생들이 그 당시 최성묵 목사가 시무하던 부산 중부교회에 교회학교 교사로 출석하고 있었던 것이 우연의 일치였을까?
 
△임동규 사무총장 12년간
 1년간 김정광 목사(7대)에 이어 김봉배 총무(8대)가 3년 간 헌 신 하 였 고 , 제 9대(1996-2008) 임동규 사무총장으로 가장 왕성한 활동과 사업, 부산Y에 길이 남을 업적을 완성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임 목사는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은 원래 부산영도중앙교회, 지금의 땅끝교회 다녔던 청년 임동규씨는 일찍이 부산대 정외과를 나와 통합교단 청년연합회 전국회장과 부산 초교파청년연합운동체인 Eyc기독청년협의회 부산회장 등 청년운동으로 뛰어들었던연고로 부산Y 사무총장에 잘맞는 시민운동체의 리더로 발휘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부산Y가 초량동 현 위치에 지상19층 지하5층 연면적 2502평, 신축회관빌딩을 짓고 나서 건축빚에 앉게된 것이다. 175억 5천만원의 막대한 부채를 갚을 길이 희박하고 거리로 쫓겨 앉게되자 Y이사로 그리고 시민중계실 법률자문인사로 가깝게 지낸 노무현, 문재인 쪽에 줄을 서 시공사인 금호건설회사 오너에게 빚 탕감을 시도한 것이다. 물론 이에 앞서 김대중 대통령 시절부터 호남기업인 금호쪽에 영‧호남 관계개선으로 부산 유일한 시민의 대표기관인 부산Y를 살려야 한다는 일간지 신문방송의 언론플레이로 여론이 확산되자 금호도 부담을 앉고 있었던 상황. 이 일을 다름 아닌 임동규 사무총장이 해 낸 것이다. 금호그룹 오너를 만나 협상하면서 빚 탕감을 받아냈다.
협상한 결과 Y건물 19개 층에서 4개 층만 Y소유 분양으로 하고, 나머지는 지분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매듭지었다.
그 많았던 170억원의 건축 부채를 마무리 한 것은 순전히 임동규 사무총장의 피나는 노력과 활동덕분으로 길이길이Y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최근 2017년 9월 28일 자갈치 오아제뷔페에서 만나, 언젠가 앓기 시작한 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인 임 목사는 필자에게 자기가 겪어 온 부산Y비화를 신문에 밝혀 연제를 부탁했다.
인간 임동규는 파킨스병에 걸려 있어도 그의 정신은 영롱하게 과거를 기억하며 후세에 역사의 한 부분을 남기고 싶어했다. 임 목사의 쾌유를 기원한다. Y사무총장의 임기를 마친 후 필자의 소개로 필리핀 두마케티에 이문선 선교사가 세운 장로신학대학교 총장으로 1년간 헌신하고, 부산에서 손자들과 오손도손 지내고 여생을 보내고 있다.
임 목사는 YMCA 시무 중 12년간 빚 갚는데 4년간 저력했다. 그리고 통합 측 장로회신학대학원에 35세 나이에 77기로 졸업하고 목사안수 후 인명진 목사가 시무 개척한 호주한인교회에 4년간 목회를 하고 돌아와서 부산Y에 사무총장 12년간 헌신한 입지적 인물로 부산 Y역사에 길이 남아있을 것이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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