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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회] 다문화 선교, 나는 왜 다문화 선교 사역에 종사하게 되었는가?
2018/01/22 14:0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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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수 교수.jpg
 
1.국제결혼
제가 다문화 선교 사역에 종사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었습니다.
첫째, 제가 국제결혼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1982년 대만국적의 중국인 화교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저의 아내는 중국 산동출신의 비단장사 아버지와 전북출신 한국 여성 어머니의 결혼을 통해 출생한 혼혈 여성이었습니다. 저의 아내는 태어나자 피부가 매우 희고 머리카락이 노란색이라 주변 한국친구들에게 외국인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저 아내는 무슨 말인지 영문도 모른 채 주변 친구들에게 ‘대놈’(그 당시 중국을 큰 나라 대大자의 의미로 ‘큰놈’)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어린 시절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저의 세 아들들도 태어나서 피부가 너무 희고 머리카락이 노란색이라 저희 집에 놀러 오던 어린이들이 저희 집 세 아들들을 보고서는 한국 사람과 중국 사람이 결혼하면 백인이 태어나느냐고 궁금해서 묻기도 했습니다.
 
2. 미국유학생활
둘째, 제가 미국 유학생활(1988-1996)동안 미국교회와 학교로부터 받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저희 집 세 아들들이 한국에서 영어를 잘 배우고 가지 못해 미국생활에서 영어의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 우리 자녀들의 초등학교 미국 담임선생님이 이 사실을 알고서 저희 집 세 아들을 위해 한국에서 30년 넘게 부산 초량에 있는 침례병원에서 선교사역을 하셨던 은퇴 선교사님을 찾아내어 세 아들들의 영어 선생님으로 도와주신 것입니다. 그 선교사님 부부들은 우리 자녀들에게 영어만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니라 미국 문화 미국교회 생활 특히 주일예배를 섬기는 것과 교회 올 때 입고 오는 옷차림 그리고 중요한 명절 때는 맛있는 과자와 선물로 저희 자녀들을 따뜻하게 섬겨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분들은 저희 세 자녀들과 저희 가족들에게 ‘나그네를 사랑하라’는 성경말씀을 실천적으로 사셨던 것이죠. 저는 무엇보다도 감사하고 놀라운 것은 자기학교에 온 외국인 학생 3명을 돕기 위해 미국인이면서 한국 언어와 문화를 잘 알고 이해하는 그런 은퇴한 선교사님 부부를 찾아내는 학교 측의 관심과 섬세한 배려와 사랑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큰 감동이었는지 모릅니다.
다른 하나는 미국 교회로부터 받은 사랑입니다. 제가 다닌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남부 미시시피주 잭슨에 소재한 리폼드 신학대학원에서 성탄절이 다가오자 외국인 유학생 자녀에게 선물을 주고자 하여 유학생 자녀 숫자에 따라 선물신청서를 주었습니다. 그 선물 제안은 잭슨에 위치한 잭슨 제일장로교회였습니다. 일인당 선물금액은 약 15달러였습니다. 그 당시가 1994년 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도 세 장을 받아서 세 아들 각자에게 자기가 원하는 선물을 기록하라고 하는데 장남은 야구 방망이, 둘째는, 야구 글러브 막내는 기록을 하지 않고 저에게 자전거를 기록하라고 했습니다. 자전거 가격은 100달러정도 될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것을 적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저희들이 사는 학교 캠퍼스 기숙사에는 미국학생자녀들과 한국 유학생 자녀들이 함께 거주했는데 저의 가정의 세 아들들에게만 자전거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막내가 “아버지 다른 가정에는 거의 자전거가 있는데 우리 집에는 남자가 셋 있는데도 자전거가 없어요. 자전거를 지원서에 적어주세요”라고 재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제가 앞서 지원서를 작성했던 두 장을 대신해서 한 장에 우리가정은 세 명 몫으로 자전거를 주시면 좋겠습니다하고 지원서를 작성하고 학교에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성탄절 선물을 유학생 자녀에게 제공한다고 학교에서 연락이 와서 선물을 제공하는 잭슨 제일장로교회로 저희 부부와 세 아들들과 함께 갔습니다. 그 교회는 큰 홀이 있었는데 그곳에 가보니 먼저 와있던 외국인 유학생과 그 자녀들, 행사를 진행하는 교회 당사자들 그리고 선물이 가득 높이 쌓여있었습니다. 그런데 선물을 보니 자전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족에게 선물을 줄터이니 오라고 했는데 와보니 자전거 선물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행사 진행하는 분이 유학생 자녀 이름을 한사람씩 부르고 선물을 주었고 마지막 선물까지 다 주어 홀 안에는 선물이 하나도 없었고 우리가족만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행사 진행하는 연세든 인자한 여성 한분이 저희 집 첫째 아들 이름 폴(Paul)을 부르는데 홀 문이 열리면서 학생들이 자전거를 몰고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한대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두 대 세대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다섯 대를 몰고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까? 너무나 놀랍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매우 놀라워하고 감격스러워하고 있는 중 사회를 본 연세든 여성분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당신 가족은 한 대를 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섯 대를 준비하셨습니다.” 그 자전거 다섯 대를 각 자전거 한 대마다 비누와 향수와 아름다운 선물들을 걸어서 주었던 것입니다. 그 깊고 섬세한 사랑에 감탄할 따름이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섬세함에서 나타납니다.
어떻게 자전거 다섯 대를 마련했는지 궁금해서 사회자에게 물었습니다. 그 교회는 초·중·고등학교와 매우 큰 수련회 장소와 병원을 운영하는 교회였는데 초등학교6학년 전체 학생이 우리 가족을 위해 자전거 다섯 대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 자리에 함께 한 6학년 여학생에게 제가 너는 얼마를 기부했느냐고 물었더니 85달러를 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 돈을 모았느냐고 물었더니 매주 금요일 토요일을 몇 주 동안 애기 돌보는 일을 해서 모은 돈이라고 했습니다. 힘들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5식구들에게 자전거를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뻐서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전거를 사기 위해서 후원한 학생들 수십 명이 축하 및 격려 글자를 적은 큰 종이를 문고로 만들어서 우리가족에게 선물로 주었던 것입니다. 그곳에는 다양한 내용의 격려가 빼곡하게 차있었습니다. 그 격려의 글들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미국 유학생활의 추억입니다.
저는 그 선물을 받은 그곳에서 하나님께 질문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 엄청난 사랑에 어떻게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런 감동을 주었습니다. “네가 받은 그 사랑을 공부마치고 한국에 돌아가서 국내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와 유학생들에게 전하라”
그래서 저는 1996년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그 미국에서 겪었던 사랑의 보답으로 저희 아내와 함께 모 교회에 출석하는 중국인 근로자를 섬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저의 아내가 중국어 설교와 통역사역, 그 외 김해 양산 창원 및 경남지역 여러 곳에서 일하는 중국인 근로자들의 애로점을 듣고 그들이 직면한 문제들을 돕기도 했습니다.
 
3. 국제다문화 사회연구소 사역
이렇게 시작한 다문화 사역이 2015년 고신대 젊은 교수들 몇 사람의 제안으로 국제다문화 사회연구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연구소는
가. 6차례 국제학술대회를 포함해서 학술대회 개최 및 논문집 발간 예정
나. 법무부 위탁교육 사회통합 프로그램으로 한글학교 및 문화 교육
다. 다문화 가정 학생들 위한 장학금 후원
라. 이주여성 및 외국인 유학생 무료 운전교육 협력
마. 김해지역 시리아 난민 의료 및 교육사업 지원
바. 부산시내 초중등교사들을 위한 다문화 이해 교육연수
사. 부산지역 내 만 명에 이르는 외국인유학생 중 아프리카 학생들 의복 및 장학후원입니다.
아. 최근에 미얀마 로힝야 족 과 시리아 난민 사역에 관심을 가지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4. 저희 연구소의 다문화 연구 및 선교사역 특히 난민사역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기도 및 후원과 협조해 주시는 모든 성도님들과 교회 앞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시기를 기도합니다.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14:28-29).

이병수 교수.jpg▲ 국제다문화 사회 연구소 주관 9개국 출신 친교 교제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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