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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부산기독교이야기21] 규범학교: 부산에서의 여아를 위한 야간학교
2018/01/02 13:5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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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교수 copy.jpg산에서 윌리엄 베어드가 시작한 남아를 위한 한문학교(ChineseSchool for Boys) 외에도 어빈의사 부인 베르타(Mrs Bertha Irvin, nee Bertha Kimmerer)은 여아들을 위한 야간 학교를 열었는데, 그것이 규범학교(閨範學校, a night school of girls)였다. 여기서 말하는 ‘규범’은 사람이 행동하거나 판단할 때에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할 가치 판단의 기준을 의미하는 ‘규범’(規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부녀자가 지켜야 할 도리나 범절을 의미하는 ‘규범’(閨範)이었다. 규(閨)는 규방(閨房), 곧 부녀자의 거실을 의미하는데, 이를 도장방이라고도 말하다. 여아들에게 여성으로서의 사람의 도리를 다할 수 있도록 기본적 지침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규범학교로 지칭하게 된 것이다. 남아들을 위한 한문학교가 당시 한국인의 학습 인식에 부응하여 한문을 가르친다는 의미로 ‘한문학교’로 칭했지만 사실은 한문 외에도 기초 학습과 교양, 특히 성경과 기독교 신앙교육을 지향했듯이, 규범학교도 그러했다. 한국인의 정서에 부응하여 규범학교로 칭했으나 규방교육 정도가 아니라 기초 학습과 성경을 가르치려는 의도에서 시작한 학교였다.
베르타는 남편 어빈 의사(Dr Charles. H. Irvin, 漁乙彬, 1862-1933)를 따라 1893년 11월 내한하여 1894년 3월부터 부산에서 체류했는데, 1895년 1월 이후 베어드가 설립한 한문학교에서 가르치던 중 여자들을 위한 학교가 절실하다고 보아 1897년 야간 과정의 규범학교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특히 극빈자들의 아동들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한 의도였다. 이 학교는 15여년간 존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학교에 대한 자료는 전무하다. 오직 노해리의 자료(Harry Andrew Rhodes, History of the Korea Mission Presbyterian Church USA,1884-1934)가 유일하다. 이 자료에 의하면, 개교하던 해인 1897년 평균 출석 학생은 16명이었다. 1901년에는 학생 수가 25명으로 증가되었는데 주 3회 수업을 실시했다. 이 해 4월에 이 학교에 재학하고 있던 나이가 가장 많았던 한 학생이 장사를 하는 크리스천 남성과 혼인했는데 이것이 부산에서의 첫 기독교식 혼인식이었다고 노해리는 간주하고있다(위의 책, 131쪽). 이 혼인식은 한국적인 것과 미국식을 혼합한 예식이었으나 기독교식이었다고 한다. 1908년에는 이 학교 교사를 건축했는데 서울 제중원 건축을 후원했던 세브란스(L. H. Severance), 갬블(Mr D. B. Gamble) 그리고 한국인 호씨(Mr Ho)가 재정적인 후원을 했다. 교사 신축 후 1909년 가을학기에 이 교사에서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이 당시 부산에는 20개의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남학생수는 138명, 여학생 수는 142명이었다고 한다(131쪽). 여아들에 대한 교육 또한 널리 인식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여학교를 세워 10여년 가까이 학교를 운영한 것은 베르타의 성공적이었다. 이런 점에서 베르타는 매우 효과적으로 학교를 운영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어빈 의사는 1911년 선교사직을 사임하게 되는데, 베르타 또한 학교를 사임하고 학교운영을 위철지(George H. Winn) 선교사의 부인에게 인계했다. 어빈의사가 한국인 여성과 사랑에 빠져 베르타는 남편과 이혼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학교를 위철지 선교사 부인에게 인계했으나 이들이 1914년 대구지부로 이동하게 되어 학교는 곧 폐쇄되었다. 규범학교가 15여년간 부산에 존속했음에 불구하고 이 학교에 대한 기록이 전무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흥미로운 점은 ‘찔레꽃’ 등을 썼던 여류소설가 김말봉(金末峰, 1901∼1961) 여사가 규범학교에서 공부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사위 정하은 박사가 펴낸 『김말봉의 문학과 사회』(종로서적,1986), 411쪽에 보면 김말봉은 “미국인 어을빈의 부인이 경영하는 기독교계 소학교에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침”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학교가 규범학교였다. 오래지 않아 학교가 곧 폐쇄되자 김말봉은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에 편입하게 되는데, 이 때 동료들이 여성 정치인인 박순천(朴順天), 후일 양성봉 부산시장의 아내가 되는 문복숙(文福淑), 박시연(朴時淵)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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