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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조지뮬러 ‘임창호 목사’ 이야기
2017/12/29 13:3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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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현 교회와 장대현 학교를 세운 임창호 목사의 은혜로운 이야기
DSC09619.JPG▲ 임창호 목사
 
통일부가 제출한 자료(2017년 8월 기준)에 의하면 국내에 거주하는 탈북민은 약 30,0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 중 10-19세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11.6%의 비율로 약 3천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탈북하여 이 땅에 들어와 있지만, 대한민국은 아주 차갑고 무심한 세상으로 이들을 맞이한다. 하지만 그런 학생들을 사랑으로 품고 하나님나라의 꿈과 소망을 주는 이가 있다. 2007년 ‘장대현 교회’와 2014년 ‘장대현 학교’를 세운 임창호 목사이다. 탈북청소년들의 희망이 되고 있는 그는 작년(2017년) 21세기포럼 문화재단에서 발표한 제12회 기독문화대상 교육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기로 했다.
   
△ 교회에 첫 발을 들이다
초등학교 2학년, 임 목사는 매주 일요일 파란 가방을 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가는 앞집 친구를 하루는 몰래 따라가 보았다고 한다. 친구를 뒤따라 도착한 곳은 교회였다. 동네 모든 친구들이 모여있던 교회를 바라보면서 밖에서 서성거리는 임 목사에게 “왜 빨리 안들어가고 있냐”고 말씀하는 선생님의 손길에 이끌려 처음으로 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처음 교회라는 곳에 가보게 된 임 목사는 예배시간에 성가대 가운을 입고 찬양하는 어린이 성가대에 마음을 뺏겨버렸다. 그걸 눈치 챈 선생님은 임 목사에게 어린이 성가대에 들어가는 것을 권유했고, 그 때부터 임 목사는 눈이오나 비가오나 교회를 빠지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성실히 교회를 다녔던 임 목사는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소천하게 되었고, 그 충격으로 1년 반 뒤 어머니도 소천하게 되었다. 사춘기의 나이에 부모님을 잃은 임 목사는 큰 슬픔과 어둠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자칫 방황하며, 나쁜 쪽으로 빠질 수 있었지만, 그 시기에 교회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로 큰 위로를 경험했다고 한다. “전도사님이 하루는 저를 찾아와 우리는 어른이 되면 아빠와 엄마를 떠나 독립을 하는데 네가 조금 더 빨리 독립한 것뿐이라며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준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방황하고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었던 임 목사에게 혼자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교회 친구들이 매일 찾아와 위로했었고, 전도사님과 교회의 사랑으로 어려웠던 청소년 시절을 이겨 낼 수 있게 되었다. 또 하나님의 은혜와 마음의 치유를 경험하며 더 깊은 신앙의 성숙이 있는 시간이되었다고 한다. “그 때, 교회라는 곳이 이렇게 큰 위로의 공간이고 가족같은 사랑의 공동체임을 깨닫게 되었어요. 나도 커서 전도사님과 같이 슬픔을 당한 자, 힘이 없는 자에게 희망을 주는 목사가 되고 싶다고 그때 결심하게 되었답니다”
그 뒤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순종하겠다는 결단으로 흔들리지 않고 고등학교, 대학교를 지나며 성장했다. 뒤에서 지원해줄 가족도 없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공부하여 신학교와 박사학위까지 받게 되었고, 어릴 때 경험한 하나님과 교회의 사랑을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DSC08071.JPG▲ 탈북민들과의 교제하는 임창호 목사
 
△ 북한을 향한 마음
1993년 고신대학교 교수로 임명받고 3년 반 정도 시무하다, 미국에 있는 텍사스주 휴스턴 한인교회에서 계속된 청빙요청으로 교수를 그만두고 담임목사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2003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탈북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당시 국내 탈북자의 수는 전체 1,500명 정도로 매우 작았고, 북한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시기였지만 미국에서는 연방국정부, 연방국회, UN등에 증언하러 온 탈북자들이 많았다. 그 가운데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교회에 초청해 북한에 대한 실상과 간증을 듣게 되었는데, 약 3일간의 집회 속에서 평생 처음 듣는 북한의 이야기는 임 목사의 삶을 바꿔 놓았다. 임 목사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그 집회시간동안 교인뿐만 아니라 목사들도 많이 울었어요. 우리가 모은 돈을 북한에 보내면 그들이 조금이라도 잘 먹고, 따뜻하게 보낼 줄 알았는데, 북한국민들은 여전히 굶어죽고 북한 고위 관리가 자기들 주머니만 두둑해지는 것이 현실임을 듣고 충격적이었어요. 북한 실상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미안함과 무심했던 그런 복잡한 마음이 오니까 눈물이 멈추질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이후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 3,600개 교회 중 2,300개의 교회가 연합하여 통곡기도회가 일어났다. 2004년 9월 27~28일에 1,650명이 모여 지금까지 북한에 대해 너무 무심했던 것을 회개하고, 북한 동족을 위해 울며 기도하는 시간을 첫 시작으로 '북한의 자유를 위한 미주한인교회연합(KCC)'이라는 단체의 대변인자리를 맡아 50개의 도시를 돌며 기도운동을 했다.
그 뒤 2006년 다시 고신대학교에서 교수직을 제안받아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한국에서도 끊임없이 북한을 위한 기도모임을 진행했다. 하루는 북한 탈북민들이 임 목사를 찾아왔다고 한다. “몇 명의 탈북민들이 저를 찾아왔었어요. 북한을 위한 기도를 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 한국에 있는 북한동포들은 갈 교회가 없어서, 자신들을 위한 교회를 만들어 달라는 거였어요” 그 뒤 2007년 3월, 9명의 성도로 시작한 ‘장대현교회’가 시작되었다.
 
△한국의 조지뮬러 ‘임창호 목사’
북한을 향한 임창호 목사의 마음이 얼마나 뜨거운지 매일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처음 장대현 교회가 시작하고 1년 만에 60명의 탈북민들이 다닐 정도로 부흥하게 되었다. 하지만 무상으로 사용하던 건물이 경매 위기로 넘어가게 되어 교회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을 때, 경주에 있는 ‘읍천교회’가 이 소식을 듣고 장대현교회를 위해 지금의 예배처소를 마련해주었다. 장대현 교회를 섬기며 교육받지 못하는 탈북민 청소년들을 위한 학교가 필요하다 생각했던 때, 어느 독지가가 12억이 넘는 4층 건물을 기증해 ‘장대현 학교’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탈북민 아이들에게 교육과 생활하는 모든 것을 무료로 지원하고 있는 장대현 학교는 매 달 운영비를 맞추는 것도 기적이다. 하루는 전주에 있는 한 분이 2천 만원을 아무 이유도 없이 보내왔다고 했다. 임 목사는 잘못 보내진 것이리고 생각하고 전화를 드렸는데, 그 분은 고향이 평안도였던 어머니가 별세하신 뒤 북한을 위해 도와야한다는 어머니 말을 지키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장대현 학교를 듣게 되고, 그동안 꾸준히 지켜보았다고 한다. 학교가 정말 학생들을 위해 헌신하고 일하는 모습을 지켜본 뒤 도움이 되고자 돈을 보냈다고 했다. 또 ㅎ회사 인사부에 직원 몇 명이 학교를 찾아왔다. 1년 한번 최고의 부서에게 보너스를 주는데 이번에 받게 되어 좋은 일에 쓰고 싶어 이리저리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믿지 않는 직원들도 많이 있었던 부서에는 한 장로의 소개로 장대현 학교를 알게 되어 둘러본 뒤 크게 감동받고 3천 만원의 보너스를 기증하기도 했다. “넘치게 채워주시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하루 모자람 없이 채워지는 것을 경험해요. 가끔 정말 힘든 순간들마다 하나님께서 놀랍게 채워주시는 것을 직접 보며 5만 번 응답받은 조지뮬러가 어떻게 응답받게 되는지, 그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지금은 알 것 같아요”
 
△임창호 목사의 비전
임 목사의 비전은 변함없이 북한을 향하고 있다.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장대현교회가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받았고 한국에 정착하는 것을 목표로 지냈다면 앞으로 10년은 힘들고 어렵지만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향해 나누고 베푸는 그런 교회로 성장하는 꿈을 꾸고 있다. 또, 환경과 재정의 제한으로 장대현 학생수가 20여명 불과했는데, 기숙사를 신축하여 50여명의 재학생이 되기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작년의 경우 8명의 학생만 뽑는데 54명이 지원하여 떨어진 수십 명의 아이들이 울며 돌아갔다고 전했다.
또 개인적으로 임 목사는 장대현 학교 교사선생님들이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지치지 않기를 바랬다. ‘통일소망’이라는 같은 꿈을 꾸고, 장대현 학교라는 비전을 향해 가는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양육하며 가르칠 때 지치지 않고 매일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로 일어나고 더 깊은 영적 성숙이 있는 2018년이 되길 간절히 기도했다.
임 목사의 바램대로 장대현 교회가 탈북민들에게 희망이 되고, 장대현 학교 학생들이 통일시대를 이끌어 가는 이 사회의 지도자들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KakaoTalk_20170529_012836801.jpg▲ 임창호 목사의 가족사진
 
[ 이지혜 jinam0521@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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