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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부산기독교이야기20] 한문서당: 부산에서의 첫 선교학교
2017/12/18 16:0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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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방 첫 선교학교라고 할 수 있는 ‘한문서당’(漢文書堂)에 대해서는 이미 필자의 ‘부산지방 기독교 전래사’(글마당, 2001)에서 소개한 바 있다. 그러나 여기서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이 학교를 설립자인 베어드는 선교학교로 간주하지 않았고, 기독교적 자선 사업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것은 후일 그가 숭실학교를 실제적인 선교학교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였다. 실제로 선교사가 부산에 설립한 첫 학교인 한문서당은 선교를 위한 의도의 학교 교육 기관이었다는 점에서 선교학교라고 할 수 있다.
이 학교는 1895년 1월 베어드의 사랑채에서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는데, 학교 설립은 그 이전부터 준비해왔다. 1893-4년도 부산지부전도보고서에서, “사랑채에서 작은 한문학교(asmall Chinese school)를 개설할 준비를 갖추었다”고 말하면서 이 학교에서 가르칠 교사를 위해 1백엔의 예산을 요청한 바 있다. 그리고 1895년 부산지부 전도보고서에서 “한국의 소년들을 위한 이 학교 설립 건에 몰두해 왔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그해 연례회의에서 돌아온 이후 운영되기 시작했다는 기록을 보면 1895년 1월부터 학교교육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름은 한문 서당이었으나 꼭 한문만 가르친 것은 아니었다. 조선어, 산수, 지리 등과 더불어 성경을 가르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hinese school, 곧 ‘한문서당’이라고 명명한 것은 한문을 가르치고자 했던 주민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첫 교사는 서초시, 곧 서두엽이었다. 그에게 월 7엔의 사례를 주기로 하고 채용했고, 그의 아들은 일정한 봉급없이 보조교사로 가르치게 했는데 한번씩 선물을 주는 것이 예우였다. 개교할 당시 5명의 학생들로 출발했는데, 2월 중순경에는 20명이었고 점차 증가하여 25명까지 불어났다. 그 후 45명까지 불어났으나 다시 감소되기도 했다. 학적 관리가 어려울 정도로 출결이 들쑥날쑥했다. 기독교 교육에 불만을 가진 이들도 있었고, 이사를 가는 학생도 있었고, 또 학교가 학비를 요구하지 않았으나 경제적으로 어려워 공부를 못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1895년 평균 출석 인원은 25-35명 정도였다. 학생들의 연령대는 18세 미만이었는데, 처음에는 연령에 따라 두 학급으로 나누어 운영하다가 하나로 통합했고, 1894년 3월 부산으로 온 어빈의사(Dr Charles Irvin) 부인인 베르타 (Bertha)는 2월말까지 산수를 하루 2시간씩 가르쳐 주었다. 베어드는 순회전도여행으로 부산을 떠나 있는 날이 많았는데, 이럴 경우 베어드의 부인 에니(Annie)와 한국인 서초시 선생이 학교를 관장했다.
학교교육에 대한 베어드의 보고서를 보면, 1. 베어드는 매일 아침 성경을 한 시간씩 가르쳤고, 2. 처음에는 어빈 부인이 후에는 아담스(J.Adams)가 산수를 가르쳤고, 3. 나머지 시간에는 서초시기 한자와 조선어(언문)를 가르쳤다. 4. 처음에는 일반적으로 조선에서 사용되는 한문책을 읽게 하다가 점차 ‘진리편독삼자경’(眞理便讀三子經)과 조선말로 된 전도문서를 읽게 했다. 4. 베어드 부인 에니는 찬송을 가르쳤다. 또 성경 구절을 암송하게 하고 성경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또 주일날에는 모든 학생이 두,세 차례의 예배에 참석하게 했는데, 그 결과로 부모가 회심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베어드는, “몇몇 경우에 굳게 닫혀 있던 가정이 자식이 학교에 다니게됨에 따라 우리에게 그 문을 열고 있으며 적어도 한 가정 이상이 그런 계기를 통해 예배에 참석하고 스스로 신자임을 고백하였다”고 보고하고 있다(Evangelistic Report of Pusan Station for 1895).
그런데 학교 설립 그 이듬해에는 총 학생수가 이전해의 70명에서 100명으로 불어났고, 출석율은 30-60명 정도였다고 한다. 베어드가 출타중에는 에니가 교장직무를 대신했는데, 에니는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쳤고, 아담스 목사의 부인이 학교 운영을 도와주었고, 어빈 부인은 다시 산수를 가르쳤다. 이제는 모든 학생이 ‘진리편독삼자경’(眞理便讀三子經)을 공부하도록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무상으로 가르쳤으나 능력이 있는 학생들에게는 헌금을 권장했다고 한다. 이 학교가 부산지방에서의 첫 선교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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