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8.01.19 19:09 |
[기독교 교양 읽기 33] 성탄은 하나님의 아픔에서 태어난 복음!
2017/12/18 14:1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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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은 용서받을 자의 책임까지 짊어지신 하나님의 사랑

표지.jpg▲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
일본 신학자가 쓴 '아픔의 신학' 책
까다로운 책이다. 단어도 낯설고 문장도 한 번 더 읽게 만든다. 그래서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나님의 속성을 가리켜 ‘아픔’이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일본인을 위한 신학 책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일본인들만이 알 수 있는 국학의 심상, 불교 용어, 비극적인 내용의 가부키에서 드러나는 쓰라림 등으로 하나님의 아픔을 설명한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아픔은, 진노의 대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임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조직신학자이다. 모든 것을 꼬치꼬치 따지고 설명하면서 아픔을 이야기한다. 한편으로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또 한편으로는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도 한다. 몰트만에 의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고, 많은 신학자들이 지금도 이 ‘하나님의 아픔’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7년 박석규 목사에 의해 번역되어 출판되었는데, 2014년에 이원제 목사가 다시 번역하여 출판하였다.
평신도는 뒤쪽에 있는 ‘해제’를 먼저 읽고 본문을 읽을 것을 권한다. 번역자인 이원제 목사가 이 책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글을 잘 써놓았다. 그리고 말미에는 ‘아픔의 신학’를 넘어 생각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도 세월호 사건 등을 예로 들어 지적해놓았다.
◈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 || 저자 기타모리 가조(北森嘉藏, 1916~1998)는 이 책 한 권으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일본 신학자이다. 도쿄신학대 조직신학 교수 등을 역임했고, 저서로는 《구원의 논리》 《일본인과 성서》 등이 있다. 원제 ‘神の痛みの神學’. 새물결플러스, 2017. 17,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끙끙 앓는 하나님》 / 김기석 / 꽃자리
《긍휼: 예수님의 심장》 / 하재성 / SFC

고갱, 황색예수.jpg▲ 기타모리 가조의 ‘아픔의 신학’은 예레미야 31장 20절을 내세운다.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개역개정).” [그림은 폴 고갱의 ‘황색 예수’]
성탄은 하나님의 아픔에서 태어난 복음!
아픔은 용서받을 자의 책임까지 짊어지신 하나님의 사랑
▌좌담: 김길구,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한때 우리나라에도 ‘민중신학’이 한창 연구되었던 적이 있다. 박정희 정권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민주화된 후로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이에 비해 1946년에 발표된 기타모리 가조의 ‘아픔의 신학’은 오늘날에도 세계적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패전 직후 일본에 등장한 ‘아픔의 신학’
김길구 신학은 그 시대의 산물입니다. 고트족 침입 시 로마의 위기 앞에서 선 아우구스티누스, 중세를 닫은 마틴 루터, 히틀러 치하의 정치범 사형수 본 회퍼, 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 칼 바르트가 그러했습니다. 그 시대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신앙적 응답이 곧 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적 배경을 알고 나면 신학이 나름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최근 많이 거론되는 ‘하나님의 아픔’과 관련된 신학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현호 그동안 우리는 서구 신학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익숙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 인간과 같이 희로애락을 가지신 하나님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자칫 편향된 모습의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와 같이 고통을 겪는 분이라는 측면에서 본 ‘아픔의 신학’은 우리에게 또 다른 성경의 세계를 열어줍니다.
김수성 그동안 이 자리에서 두어 번 이와 관련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프다》 《세월호, 희망을 묻다》 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들 책은 고통당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고통을 이야기한 것이었죠.
김길구 맞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아픔에 관한 연구입니다. 즉, 높은 곳에 계시면서 무소부재(無所不在)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낮게 내려와서 인간처럼 고통을 겪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그동안 대부분의 신학이 서구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이 ‘아픔의 신학’은 아시아, 특히 패전 일본에서 나타났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끌었습니다.
김현호 ‘아픔의 신학’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부서진 현실을 하나님께서 끝까지 감싸 안으시는 구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아픔이 해결되고 우리의 상처는 치유된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여기서도 모성적 하나님의 속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김길구 저자는 하나님의 아픔은 진노의 대상을 사랑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죽음에 내주었다는 것이죠. 예레미야 31장 20절 “내 마음이 아프다”는 구절을 “내 창자가 아프다”로 번역한 일본어 ‘문어역성서’를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아픔을 구체화합니다.
 
너무나도 ‘일본적인’ 신학으로 표상화
김수성 기타모리의 신학이 서구사회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몰트만이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1972)에서 언급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한편, 칼 바르트는 기타모리의 신학이 너무도 일본적이라고 비판합니다.
김길구 기타모리의 신학이 일본적이라는 것은 우선 불교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즉, 일본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절복(折伏)’ ‘섭수(攝受)’ 등 많은 불교 용어로써 아픔의 신학을 전개합니다. 이는 외래종교를 일본화시키는 특유의 국민성에 기인합니다.
김현호 불교 용어를 차용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부자연스럽기는 하지만, 자기 나라 사람들이 어려운 신학적 용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김수성 자칫 본래의 의미가 왜곡될 가능성은 있을 것입니다. 한 예로,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에 나오는 초창기 일본 그리스도인들을 들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일본의 ‘오오히(大日)’로 인식하고 신앙했다는 것입니다. 즉, 형식은 기독교를 받아들였지만 신은 하나님이 아닌 일본의 신을 믿었던 것이지요.
김현호 불교 외에 일본 국학(國學)도 거론합니다. 특히 여기서는 일본인의 감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모노노아와레’를 언급합니다. 이 말 뜻은 ‘어떤 사물이나 상황에 접했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절절한 느낌’을 가리킨다고 하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일본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인 것 같습니다.
김수성 기타모리는 일본인들이 ‘하나님의 아픔’을 느끼게 하기 위해 몇 편의 가부키도 동원합니다. 특히 예로 든 가부키의 내용은, 은혜를 입은 옛 주군의 자식을 지키기 위해 자기 자식을 희생물로 내놓고, 그 아이가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결코 내색하지 않는다는, 상당히 비극적인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면서 이 아픔을 ‘쓰라림’이라는 단어로 표상화합니다.
김길구 이에 대해 기타모리는 헤겔 철학을 원용하여 일본의 신학을 내세웁니다. 먼저 그리스-로마적인 그리스도교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갈수록 복음의 진리에서 퇴락하자, 게르만 민족인 루터를 통한 종교개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루터의 하나님의 모습에서도 ‘하나님의 아픔으로서의 은총’에는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부키 등을 언급하며 일본의 비극의 근본인 ‘쓰라림’을 통해 하나님의 아픔을 파악하게 된다는 다소 국수주의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김현호 너무도 일본적이라는 것이 장점도 되고 단점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타모리가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서의 아픔입니다. 곧, 용서하는 자가 용서해야 할 죄인의 책임을 짊어지고 그 아픔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의 사실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복음으로서의 사실이었다고 강조합니다.
 
가해자-피해자 관계에도 적용될까?
김수성 그런데 이런 복음을 신앙하고 있음에도 무고한 죽음과 같은 사건에 맞부딪칠 때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딜레마에 빠지는 게 현실인 것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도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아픔을 당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신정론(神正論)으로서도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게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느니, 하나님도 그들과 함께 슬퍼하신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김길구 기타모리의 신학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아픔의 신학’은 패전 후 공황 상태에 빠진 일본인들에게 위로가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가해자로서 피해자에 대한 뼈저린 반성을 촉구하는 데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현호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적·사회적 문제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신자들은 아가페 사랑의 시금석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불의와 배신, 하나님의 법을 떠난 자들에 대해 손 내미신 미라클이라면… 가해자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손 내미는 사랑으로 이 고리를 끊어야겠지요. 어렵겠지만 이것이 산상수훈의 정신이고 하나님의 애달픈 마음일 겁니다. 물론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는 정의를 요구해야하지만 이 땅을 사람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어갈 책임을 진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의 아픔을 자신의 삶에 구체화함으로써 끝내 크리스마스 기적을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
김길구 자칫 가해자는 가해자로서 남고, 피해자는 계속 피해를 당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그 고리가 더 견고해질 수도 있음을 우려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크리스마스를 맞아 교회 역시 이런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한국교회탐구센터에서 편저한 《인공지능과 기독교 신앙》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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