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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광순 목사] 종교개혁 500주년을 회고하며
2017/12/04 18:1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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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로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한지 500년이 지났다. 그런데 선교사들의 피 위에서 많은 발전을 이룩한 한국교회가 안타깝게도 이제는 루터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당대의 교회 못지않게 타락해 버리는 것 같아 아쉽다. 비판하고 나온 그 자리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물론 당대의 교회와는 다른 악습이 현재 생겨났다. 이를테면 대교회세습, 개교회주의, 성장주의, 성직주의 등은 현재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악습이다. 또한 루터의 ‘오직 믿음으로(sola fide)’는 행위의 포기로,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는 전통과 교리로 변절되었다. 일반적으로 믿음은 행위와 이항대립적인 것으로 여겨지기에 행위와 믿음사이의 밀접한 관련성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러나 루터는 믿음을 강조하였을 뿐 아니라, “선한 행위들(die guten Werke)에 관하여” 라는 저술을 통해서 행위 문제를 심도있게 고민하였으나, 이러한 고민은 한국 교회에 잊혀져 있다. ‘믿음(?)’을 가지면 어떻게 살던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더 나아가 성경 대신에 물려받은 교리나 교회적 전통이 더 중요해졌다. 교회 기구들의 의결이나 전통이 아니라,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루터의 고민은 약화되고 말았다.
미국의 지난 대선을 되 돌이켜 보자면 텍사스 주 등 성경적 가치를 중시하는 중부지역인 ‘바이블 벨트’는 똘똘 뭉쳐 도널드 트럼프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가 ‘동성애, 낙태, 이슬람’ 등에 관해서 보수적 기독교의 표를 얻을만한 정책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우려스럽다. 이것은 과연 성경적 가르침인가 아니면 미국 보수교회의 전통인가? 물론 동성애와 낙태가 하나님 뜻에 어긋나며 이슬람에 대항해서 기독교를 지켜야 한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몰표를 줄만큼 트럼프 후보가 하나님의 뜻에 가까운가? 마치 우리나라 대선에서 장로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몰표를 던진 한국 보수교회 생각이 난다. 왜냐하면 트럼프 후보는 성적인 문제나 소수 인종에 대해서 명백하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지 동성애 등을 반대했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무조건 대통령으로 뽑는다는 것이 성경적인가? 필자가 보기에 두 후보 모두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몰표가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몰표가 나온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개인 뿐 아니라 사회 윤리적으로도 어떠한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나왔다기 보다는 교회의 전통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동성애 반대 같은 것은 어떠한 결함이라도 묵인할 수 있는 면죄부가 될 수 있는가? 다양한 차원에서 성경을 검토하기 보다는 단지 교회적인 시각에 갇힌 것은 아닌가? 남의 나라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한국에서도 동성애나 이슬람 이슈가 보수교인을 맹목적으로 만들고 일방적 지지를 하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나 무슬림혐오가 한국 교회를 지배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어그리는 사람조차도 혐오가 아니라 사랑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가르치시는 것 같다. 주님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향한 돌팔매질을 멈추셨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것이 성경이라고 믿는다. 동성애와 이슬람을 반대하는 것은 동성애자를 혐오하거나 무슬림을 혐오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믿는다. 또한 동성애 반대자, 이슬람 반대자에게 몰표를 주는 것과도 다를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교인 수가 줄어 가고 특히 청년층의 이반은 더욱 심하다. 필자가 대학에 있기에 여기에 주목해 보자면 이제 한국 대학은 선교사 양성소가 아니라, 선교지가 되어 버렸다. 기독교인 대학생 수가 점점 감소할 뿐 아니라, 기독학생도 자기가 기독교인임을 감춘다. 이것은 여러 가지 복합적 원인 때문이겠지만, 믿음이 행위를 이끌지 못하고 전통이 다시 성경을 밀어내는 것도 주요한 원인들 중 하나일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이제 종교 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축하만할 것이 아니라, 루터처럼 교회 개혁을 힘써야 할 것이다. 피를 흘리는 마음으로, 루터의 말처럼, ‘근원으로(ad fontes)’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더 많은 고민과 더 많은 성경적 통찰력으로 이 시대와 한국 교회를 다시금 검토해 보아야 한다. 우리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시대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할 것이다. 새 시대는 복음을 담을 새로운 형식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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