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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회] 다문화 사회, 혼혈의 역사
2017/11/13 15:0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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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수 교수.jpg
저는 대만국적 화교 중국인 아내와 살고 있습니다. 저의 아내는 결혼 한지 3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대만국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장인 어른은 중국 산동분이고 저의 장모님은 한국 여성이었습니다. 제 아내도 혼혈이었고 그리고 저의 세 아들도 넓은 의미에서 혼혈입니다. 제 주변에 국제 결혼한 가정을 많이 봅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제 국제결혼을 이상하게 보지 않고 국제결혼에 대한 부정적 생각도 많이 없어졌습니다. 통계상 국제 결혼하는 가정이 한국전체 결혼가정의 10%를 차지합니다. 농어촌으로 가면 10가정 중 4가정에 이르는 상황입니다. 최근에 제가 김해지역에서 만난 할머니는 두 며느리가 베트남과 필리핀 여성이었습니다. 얼마 전 언론에서 본 한 가정은 세 아들들이 세 사람의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예도 보았습니다. 이제 국제 결혼한 가운데 출생하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 , 혼혈들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먼저 성경에 나타나는 혼혈의 역사를 살펴봅시다.

A. 구약에는 어떤 혼혈의 역사가 있을까요?
1. 요셉의 예
먼저 국제 결혼한 요셉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의 경우는 바로 왕이 애굽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합니다(창 41:46절). 아스낫이 하나님을 믿었을까? 구약학자들의 자문에 의하면 아스낫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 하나님을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아스낫이 요셉과 결혼해서 얻은 두 아들은 애굽여인의 자손에게서 난 혼혈의 아들들입니다. 므낫세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차남의 이름은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창41:51-52). 요셉의 이 두 아들도 나중에 야곱이 임종하기 전 축복합니다(창세기48장). 혼혈의 아들들이 축복의 통로로 언약의 백성의 반열에 들어오고 딸 아스낫이 언약의 백성에 들어와서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2. 라합의 예
여리고 사람 기생 라합이 유대인 살몬과 국제결혼하고 그들의 결혼에 의해서 보아스가 출생합니다. 보아스는 기생 라합의 아들이고 혼혈의 아들입니다. 이 혼혈의 아들 보아스가 모압여인 룻과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 보아스가 이방 여인 룻에 대해 선대와 은혜와 긍휼을 베풀게 되는 이유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보아스의 어머니 라합이 이방여인이었기 때문에 작용한 것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 혼혈의 역사가 다윗에게 연결됩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결됩니다.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는 혈통적으로 유대인으로 이루어진 순수민족 단일민족이 아닙니다. 혼혈의 혈통과 혼혈의 역사입니다.
3. 사마리아인, 앗수르인과 유대인 혼혈
사마리아인도 혼혈의 민족입니다. BC 10세기 전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 분리되고 BC 722 년 멸망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멸망당하면서 앗수르는 유다 땅에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데려와서 살게하고 통혼하게 합니다(왕하 17:24-26)
따라서 유대인은 사마리아 혼혈인을 매우 싫어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미워하는 가운데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라고 하면서 사마리아라는 표현이 바로 욕이고 귀신들렸다는 것과 거의 같은 뜻의 혐오의 표현이었습니다. 이런 사마리아인에게 빌립이 복음을 전파합니다.

B. 신약에는 어떤 혼혈의 역사가 있을까요?
신약에서 디모데의 아버지는 헬라인이고 어머니는 유대여자입니다(행 16:1).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제자로 삼은 이유는 첫째,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둘째로 추축해 볼 수 있는 것은 유대문화와 헬라문화를 가진 부모의 양쪽 문화 국제적 문화배경을 가진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추측도 해봅니다. 혼혈은 다문화 사회 국제화 및 세계화 사회에 혐오와 미움이 아니라 부모의 양쪽문화를 연결할 수 있는 국제적가교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C. 한국 역사에는 어떤 혼혈의 역사가있을까요?
김수로왕비가 된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학자는 허황옥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인도와 중국을 거쳐 한국에 도착한 여정을 <허황옥 루트, 인도에서 가야까지>라는 책에서 밝힙니다. 이 책의 저자는 아유타국이 인도 코살국의 중심 도시인 아요디아이고, 허황옥은 서기 47년에 배를 타고 황해를 건너 김해 가락국으로 왔음을 알아내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김해도서관에 '허왕후실', '김수로실'이라고 이름 붙인 방들이 있습니다. 다문화가정의 여성과 아이들이 우리말과 글을 배우는 교실이라고 합니다. 최근 교육통계에 따르면 다문화 학생 숫자는 매년 20% 씩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다문화 국가를 운영한 경험으로는 김해 가락국만 한 곳이 없습니다. 이 김수로왕과 허황옥에 대한 내용은 한국최초의 역사책 ‘삼국유사 가락국기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수로왕은 소수자인 이방인과 여성을 후대하였습니다. 훗날 왕후가 먼저 죽자, ‘왕은 늘 혼자 잠들며 슬피 탄식하다가 10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군왕으로서 처첩을 함께 들이는 일이 흠도 아니었을 시대에 10년 세월을 홀로 밤을 지새운 왕의 사랑은 오늘날조차도 놀랍습니다. 그는 열아들의 혼혈아를 가졌습니다. 약하고 곤란한 사람들, 낯설고 물 선 이방인들을 아끼고 보살핀 수로왕의 덕성을 백성들은 넉넉히 알았을 것입니다. 다만 허 왕후를 따라 온 시종들은 모두 고향을 그리다가 결혼도 하지 않고 죽었다고 전합니다. '가락국기'의 저자는 담담한 필치로 이렇게 썼습니다. “이들 부부는 1~2년이 지나 모두 죽었고, 그 나머지 노비들도 가락국에 온 지 7~8년이 되도록 자식을 낳지 못하고 오로지 고향을 그리워하며 슬퍼하다가 모두 고향 땅을 향해 머리를 두고 죽었다.” 특별히 다문화가정의 혼혈아들이 또 한쪽 부모의 나라말과 문화를 이해하도록 돕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가령 대학입시에 베트남어를 '제2외국어'로 택할 수 있게 한다든지, 김해나 사상에 '동남아 문화원'을 열어 자기 정체성을 알도록 도와야 합니다. 서로 다른 것을 용납하고 포용하는 것이 김수로왕의 정신입니다.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한국과 동남아시아를 잇는 다리가 된다면 더욱 좋은 일입니다.

D. 고려시대
고려시대에 충렬왕은 원나라 쿠빌라인 칸의 딸과 결혼하고 그들에 의해서 출생한 아들이 고려 충선왕입니다. 그는 선정을 베풀었던 왕으로 최초의 혼혈왕이었습니다. 무신정권의 고려, 급속도로 성장한 몽고가 침범합니다. 그 당시 집권자였던 최씨 집안이 항쟁을 하지만 결국 몰락, 몽고의 부마국이 되지요. 몽고의 지배자 쿠발라이칸은 끈질긴 고려의 항쟁을 높이 사속국이 아닌 부마국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하여 쿠발라이칸의 딸(제국대장공주)과 혼인한 사람이 바로 충렬왕입니다. 그 당시 충렬왕은 40세였고 몽고 공주는 10대였지요. 둘 사이가 좋을리는 만무하고 공주의 힘이 왕보다 강해서 충렬왕조차도 공주를 함부로 하지 못했습니다. 실권을 쥐지 못한 충렬왕은 정사를 놓은 채 매사냥에 빠져들고… 공주와의 사이에서 아들 하나를 얻습니다. 그 아들이 충선왕입니다. 그 이름은 원((願), 몽골명은 이지리부카(益知禮普花)입니다.

E. 외국역사에는 어떤 혼혈의 역사가 있을까요?
러시아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혼혈의 사람이 바로 푸시킨입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시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아프리카의 혈통입니다. 그는 외증조부 아브람 페트로비치 간니발은 에디오피아 출신으로 일곱살 때 오스만 튀르크의 술탄에게 인질로 보내졌다가 한 해 뒤 러시아의 표트로 대제에게 넘겨집니다. 간니발은 대제의 총애 속에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고 루이 15세의 군대에 들어가 대위까지 진급한 후 러시아로 돌아옵니다. 러시아 근대화의 아버지 표트르 대제는 18세기 초 서구화 대개혁을 통해 변방의 삼류국가 모스크바대공국을 세계 열강 러시아제국으로 탈바꿈시킨 군주입니다. 그가 온갖 저항을 무릅쓰고 밀어 붙인 대개혁의 파트너는 귀족 출신의 주류들이 아니라 내세울 것 없는 집안의 인물과 외국인들이었습니다. 후진적 러시아를 근대화하여 세계열강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도움이 된다면 외국인이든 미천한 가문출신이든 가리지 않고 귀하게 쓰겠다는 것이 대제의 강력한 메시지였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흑인 노예 간니발을 좋은 모델로 키운 것입니다. 대제는 간니발의 성공사례를 통해, 아랍인이나 흑인도 지적 능력이 다르지 않으며, 사람은 인종이나 혈통이 아니라 능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입니다. 돌아온 간니발은 소장의 계급을 하사받고 에스토니아 탈린 지역의 총독이 되어 영화를 누립니다. 그의 장남 이반은 러시아제국 군대의 2인자 위치까지 올랐고, 다른 아들 오시프는 찬란한 러시아 문화예술의 출발점이 되는 푸시킨을 외손자로 두었습니다.

결론
위의 이 사실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순수 단일 민족은 없다는 것과 그 외국인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훌륭한 공헌을 할 수 있다는 것과 특히 유색인들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따뜻한 사랑의 미소로 그들을 환영하는 환대의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얼마 전 한국에 방문한 미국 사업가 토마스 클레멘트는 1956년 한국에서 입양됐습니다. 그는 혼혈의 아들이었습니다. 어릴 때 한국에서 혼혈아가 겪었던 아픈 추억을 한 일간지에서 말했습니다. 그는 셔츠 소맷자락을 걷어서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이걸 보시죠." 그 팔뚝엔 불에 덴 큰 흉터가 있었습니다. 이게 뭐죠? 그가 답하기를 "어머니를 잃고 구걸하며 지낼 때 아이들이 달려들어 내 몸에 불을 질러 생긴 흉터죠. 보다시피 나는 튀기, 혼혈아였거든요. 내 친아버지는 아마도 미군 병사였겠죠. 당시 한국 사람들은 튀기를 경멸했어요. 지금도 생생해요. 아이들이 나를 보고 '튀기다! 악마야! 튀기는 불에 태워 죽여야 해!'라고 외치던 장면요. 어떤 아이가 팔에 휘발유를 부었고 다른 아이가 거기에 불을 붙였어요. 나도 모르게 '악' 소리를 지르면서 팔을 접었는데 그 바람에 오히려 온 팔에 불이 붙었죠. 마침 지나가던 어른 하나가 황급히 옷을 덮어 불을 꺼준 덕에 겨우 살았죠." 이런 비극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그리스도인이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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