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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부산기독교이야기17] 윌리엄 베어드가 언급한 '김 서방'은 누구인가?(재론2)
2017/10/17 11:3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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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구지방 첫 교회인 대구제일교회에 접수된 이명증서에는 김기원은 부산에서 ‘빅토리아장로교 손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점을 밝혀주고 있다. 그 때가 언제인가는 분명치 않지만, 아담슨은 1894년 5월 20일 내부하였음으로 김기원의 세례는 그 이후였을 것이다. 김기원의 세례를 1894년 이전으로 간주하여 매카이 목사에게 세례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근거가 없다. 매카이의 문서에서 세례 준 기록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1894년 4월 22일의 수세식이 부산에서의 첫 세례식이었음을 그 당시 선교사들이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카이 목사가 세례준 일이 있었다면 동료 호주 선교사들이 몰랐을 리가 없고, 따라서 1894년 4월 22일의 세례식을 첫 세례라고 그토록 강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후 김기원(1858-1941)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베어드의 안내로 아담스(James Adams)의 어학선생이 되었고 아담스가 1897년 대구로 이거할 때 동행하여 아담스의 조사로 활동했다. 김재수라고도 불린 그는 경상북도에서의 첫 신자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1894년부터 1923년까지의 경북지역 복음화과정을 소상히 기록한 필사본 『경북교회사』(1924년 4월 간행) 1900년 황에 보면 이런 기록이 나온다. “1900년 영천군 대창면 조곡교회(助谷敎會)가 설립되었다. 조곡교회의 설립자는 선교사 부해리(傅海利), 영수는 이재채(李在彩), 집사는 최진규(崔振奎), 조사는 김기원(金基源)이 시무하였다.” 이 기록에 보면 김기원은 조곡교회 조사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는 1905년 이후 1908년 8월 이전 선산 부대동교회 장로가 된다. 그2)가 경상도지방의 첫 장로였다고 말하는 이가 있으나 옳지 않다. 첫 장로는 1904년 5월 27일 장로가 된 심취명이었다. 그는 경상북도의 첫 장로였을 따름이다.
그런데 「장로회보」 58호(1941. 3. 5) 5쪽에 보면 김기원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게재되어 있다. 김기원 목사의 소천과 관련하여 경북노회 대표 최재화 목사의 “故 金基源 牧師를 哭함”이라는 추도사와 그의 약사(略史) 및 신앙이력이 게재되어 있는데, 그는 安政(1854년 시작되는 孝明天皇こうめいてんのう왕조의 연호)5년 12월 3일, 상주군 낙동면 화전동에서 金休應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8세 때에 상주권 화산동 사숙(私塾)에서 수학하고, 18세 때 상주군 남촌의 조중구(趙重九)씨의 장녀 승장(承章)과 혼인하여 슬하에 2남을 두었다. 1894년(明治 27년) 안의와 선교사를 만나 복음을 듣고 결신하여 경북 최초의 신자가 되었고, 첫 전도사, 첫 장로, 첫 목사가 되었다. 1910년 3월 평양신학교 입학하여 1913년 6월 재6회로 졸업하고, 1914년 1월 16일 경남 웅천읍교회당에서 모인 경상노회 제7회 임시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음으로 경북지방 첫 목사가 되었다. 1914년 웅천지방에서 사역하였고, 1915년에는 경산 사월교회에서, 1920년에는 경남 진영에서, 1924년에는 경북서남지방 전도목사로, 1925년에는 대구제일교회에 의해 설립된 대구중앙교회에서 목사로 일하다가 1932년 사면하였고, 자택에서 요양하던 중 1941년 1월 23일 오전 9시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베어드의 판단으로는 “오래 살 수 없을 것”으로 보았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 종창은 고침 받고 목회자로 일생을 살았다. 노년의 때 다시 질병으로 고통스런 날을 보내고 1941년 1월 23일, 83세의 생애를 마감하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1)이 피사본은 김병희 편집으로 출간되었다. 김병희 편역, 『경북교회사』(서울: 코람데오, 2004).
2)그의 장로장립을 1905년 이후로 보는 근거는 1904년 9월 13일에서 19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된 제12차 장로교공의회 경상도위원회 보고에서 김재수의 장로 선출 진행 과정을 허락했기 때문이다(The Minutes of the Twelfth Annual Meeting of the Council of Presbyterian Missions in Korea, 14, 28). 이런 과정을 밟았다면 1905년 이후 장로장립이 가능하고, 그가 장로로써 독로회에 참석한 것은 1908년 제2회 때였다. 1907년 제1회 독로회가 개최되었을 때 경상도지방의 참석 장로는 밀양의 김응진, 대구의 박덕술 뿐이었다. 1907년 6월 현제 당시 경상도 지방의 장로는 오직 두 사람 뿐이었다[대한예수교장로회로회회록(1908), 42]. 김기원이 장로로서 독로회에 참석한 것은 제2회 때인 1908년 9월이었다. 이 때 김기원은 밀양춘기의 김응진, 창령 토산의 박명원, 대구읍의 김성호, 임피만, 부산의 심취명 등과 같이 참석했다(예수교장로회대한로회뎨이회 회록, 2). 이 당시 경상도지역 장로는 5명으로 보고되었다(예수교장로회대한로회뎨이회 회록, 23). 이렇게 볼 때 김기원은 1908년 8월 이전 장로가 된 것이 분명하다. ‘선산 부대동교회 장로’라는 점은 제2회 독로회록에 근거하였다. 예수교장로회대한로회뎨이회 회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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