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7.11.17 17:18 |
[다문화 사회] 다문화 이해를 위한 철학, 신학, 선교 및 교육 단상
2017/10/17 10:2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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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수 교수.jpg▲ 이병수 교수
 
1.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프랑스 혁명의 3대 정신은 자유·평등·박애이다. 이 평등의 정신을 누구보다도 강조한 철학자가 영국의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이다. 인간의 본질을 설명하는데 그의 사상만큼 더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토마스 홉스는 그의 책 「리바이어던 Leviathan 」에서 인간의 자연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관계”로 “인간은 서로에게 늑대와 늑대 같은 존재”로 그는 보았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은 이러한 홉스의 주장을 “마키아벨리의 이론보다 더 근대적이다”라고 평했다. 러셀은 “리바이어던이 출간되었을 때, 좋아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했다. 그런 평가의 이유는 홉스의 인간에 대한 진술이 너무 충격적일 정도의 잔인한 모습을 묘사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의 주장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듣는 사람들 가운데 그러한 인간에 대한 평가가 많이 불편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의 인간관 못지않게 그가 끼친 현대적 사상은 인간의 평등에 대한 사상이었다. 홉스에 의하면 “자연은 인간이 육체적·정신적 능력의 측면에서 평등하도록 창조했다. 간혹 육체적 능력이 남보다 더 강한 사람도 있고, 정신적 능력이 남보다 뛰어난 경우도 있지만, 양쪽을 합하여 평가한다면, 인간들 사이에 능력 차이는 거의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이익을 주장할 수 있을 만큼 크지는 않다. 왜냐하면 체력이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음모를 꾸미거나, 혹은 같은 처지에 있는 약자들끼리 공모하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충분히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적 능력들의 경우에는 체력보다도 오히려 더 평등하다고 나는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 우리는 동양인이나 서양인이나 절대로 차이가 없다. 홉스는 이 “능력의 평등에서 희망의 평등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이 ‘희망의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 능력의 평등을 우리 기독인들이 다문화 사회에서 열심히 가르치고 실천하고 확산해 나가야 한다. 이 평등사상이 중요한 이유는 한국 내 수많은 다문화 가족이 겪는 원초적 고통은 차별과 무시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사상가요 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 1908-2009)는 「야생의 사고 La Pansee Sauvage」라는 책에서 어떤 문명이나 민족도 다른 집단 보다 우월한 것이 없다고 주장함으로, ‘우수한’ 서구 문명이 ‘미개한’ 원시문화를 지배한다는 서구 우월주의의 편견을 깨뜨렸다. 그 책은 이런 서구의 오만한 ‘환상에 대한 해체’를 선언한 책이다. 그는 이런 인류학적 연구의 결과로 문명의 우열을 뛰어 넘어 상대방의 문화를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공존과 상생의 의식을 가지게 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2. 성경에서 인간의 평등사상을 찾는다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혹자는 모든 인류는 성경이 제시하는 세 가지 신학적 측면에서 평등하다고 주장한다. 첫째, 우리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 둘째,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 앞에서 똑 같이 피조물이요 죄인이다. 셋째, 따라서 모든 인류는 하나님에게 의존적이고 구원이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인간의 평등사상을 성경에서 명시적으로 찾아본다면 사도행전 17:26 절이다. 사도 바울은 그곳에서 모든 인류가 “한 혈통으로” 만들어진 존재로 파악함으로 모든 인류가 같은 근원에서 나왔고 따라서 인류 모두가 평등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바울이 이 주장을 할 당시의 문화적 상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지성의 중심이요 헬라인을 모든 인류보다 가장 뛰어난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아덴에서 인간 평등사상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BC384-322)가 서구사상에 끼친 긍정적 영향이 지대하지만 그의 인간 평등사상은 매우 부정적이고 실망스럽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야만인들’(그리스인이 아닌 사람), 특히 아시아인은 ‘타고난 노예’라고 가르쳤다. 아마도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이 땅에 태어나기 수 백 년 전 부터 이런 사상이 편만했으리라. 헬라인들은 유대인의 선민사상과 같이 자부심이 대단한 자민족 중심주의와 우월주의에 빠졌던 대표적 민족이다. 신약학자 브루스(F. F. Bruce)는 이런 오만한 자부심을 사도행전 17장 26절 주석에서 이렇게 질타한다. “그러나 이 자부심은 잘못된 근거에서 나온 것이었다. 모든 인류는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으니, 모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며, 모두 한사람의 공동시조에게서 흘러나왔다. 이 사실은 헬라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외국인들보다 우월하게 태어났다는 믿음을 정당화 시키려는 거짓된 모든 시도를 일소해 버리며, 이러한 점에 있어서는 그와 유사한 오늘날의 국수적 여러 가지 믿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연 안에서도 은혜 안에서도, 즉 옛 창조 안에서도 새 창조 안에서도, 인종우월주의가 들어설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나타나는 인간 평등사상의 가르침이 성경신학·조직신학적 의미의 영역에서만 적용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선교의 대상이 되는 모든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가르침에 근거한 선교적 함의를 생각해야한다. 이 가르침은 선교사가 현지인보다 인종적·문화적으로 조금이라도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거부한다. 오히려 이 평등사상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은 이런 우월 사상을 ‘말살’해야 하고 그런 인종차별은 지옥 불에 처넣어 버려야 한다.
 
3. 동화주의의 위험성
우리 기독인들은 모든 문화의 다양성을 무시한 채 우리의 것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동화주의적 접근을 반대한다. 동화주의적 사고방식 근저에는 타자를 나와 같아야 하는 존재로 상정하는 동일성 논리가 전제되어 있다. 유럽의 역사·예술사·인류학·철학·소통 이론들을 연구하며, 그 속에서 유럽이 낯선 이들을 어떻게 만나왔는지를 유형화한 독일의 선교 학자 순더마이어(Theo Sundermeier)는 동일성 원리의 극단적 원형을 식민주의적 타자관에서 찾는다.
유럽의 식민주의자들이 중남미 식민지 피지배인들을 대하는 태도는 흔히 둘 중 하나였다. 그들을 가르치고 개화시켜 나처럼 인간이 되게 하든지, 인간이 아닌 사물로 분류하여, 사고 팔수 있는 노예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오직 A 만을 살아남게 하는 사회, A와 다른 것이 존재할 수 없는 사회는 다양성 아닌 획일성이 지배하는 사회이며, 주류의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이다. 일제 식민지 정책으로서, 일본식 성명 강요, 조선어 금지 신사참배 강요 등이 이러한 동일성 논리에 입각한 것이다. 이런 동일성 논리의 잘못을 역사를 통해 뼈저리게 경험하고 그것을 저주했던 우리가 한국에 있는 외국인에게 우리가 당한 방식을 그대로 외국인들에게 적용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죄악이다. 이런 동화주의적 접근 대신에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다원주의적 입장을 취할 것이다. 문화 다양성을 꽃피우기 위해 동일성 논리에 입각한 사고방식을 청산하고 나와 다른 문화를 그것의 고유성 속에서 파악하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인정할 것이다. 유네스코도 ‘세계 문화 다양성 선언’ 뿐 아니라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협약’을 통해 “문화 다양성이 인류의 중요한 특성이며” “인류의 공동유산으로”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4. 다문화 사회, 버락 오바마를 중심으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Barak Obama)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였다. 아프리카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미국 캔자스 출신 백인 어머니 가운데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하버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케냐에 돌아가서 장관을 했다. 백인 어머니는 흑인 아버지와 이혼 한 뒤 혼자 생활하면서 오바마를 양육했다. 오바마 어머니는 혼자 살면서 생활이 어려워 국가에서 제공하는 Food Stamp 로 오바마를 양육하며 삶을 영위했다.
그러던 중 그의 어머니는 인도네시아 남자와 재혼했고 의붓 아버지를 따라 이슬람 국가 인도네시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어머니가 인도네시아 아버지와 이혼하면서 그는 다시 미국 하와이에 있는 은행원 출신의 외할아버지와 교사 출신의 외할머니에게 맡겨졌다. 오늘 한국의 상황에서 표현하면 조손 가정의 청소년이었다.
거기서 오바마는 백인 청소년들의 인종차별 가운데 심지어 ‘깜둥이’라는 말도 여러 번 들으면서 상처 많은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이런 아픔과 상처 가운데 그는 마약도 손에 대기도 해서 한때 ‘문제아’로 낙인찍히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외할머니의 사랑의 보살핌과 교육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와이에서 중·고등학교의 정상적인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서부의 옥시덴탈 칼리지에서 진학하여 공부하고 동부의 컬럼비아 대학에 편입해서 졸업 후 미국 하버드 로스쿨 대학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시카고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다. 오바마가 흑인 임에도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던 것은 여러 요인이 작용하였다. 어머니가 백인인 것도 요인이 되지만 결정적 요인은 그 힘들고 어려운 환경 가운데 교육을 제대로 받았기 때문이다. 외할머니의 교육열이 오늘의 그가 되었다고 강의자는 확신한다. 교육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교육의 힘으로 다문화 가정자녀 중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던 것이다.
이 교육을 통해서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정상적인 교육을 받아 내국인과 교육격차를 극복하고 교육의 힘 때문에 오바마처럼 다문화 가정이지만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던 것처럼 한국의 다문화 가정에서 자라난 청소년들이 교육의 힘으로 한국에서 유능한 인재로 자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필자는 지난 3월 말에 한국에 외국인이 가장 많은 안산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다문화 고등학교 대안학교를 설립하려는 분을 만나 충격적 보고를 들었다. 다문화 고등학교 학생 중도 탈락율이 74 %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들을 우리가 방치할 때 유럽의 경우처럼 매우 조심스러운 표현이지만 그들이 “외로운 늑대”가 될 수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ich Beck)은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로 규정했다. 테러와 전쟁의 위협 가운데 우리 사회가 그들을 방치할 때 대한민국이 위험 사회로 전락할 수 있다. 그들에 대한 무관심과 인종차별로 나아갈 때 그 위험이 우리 자녀와 사회에 부메랑으로 돌아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이 ‘외로운 늑대’가 아니라 버락 오바마처럼 미국 대통령처럼 만들고 우리 모두가 부모의 심정으로 그들을 사랑으로 품어 어머니 나라와 아버지 나라를 연결할 수 있는 국제적 가교의 인물로 키워야 한다. 이일을 위해 우리 기독교인 모든 분들이 함께 하면 감사하겠다.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
알렉산더 대왕은 동서양의 결합을 통해 하나 된 세상을 꿈꾸었다.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다문화 시대에 사랑 안에서 다문화 가족 과 한국인이 차별 없는 하나 된 대한민국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꿈을 꿔본다.
“혼자 꾸면 꿈이지만 함께 꾸면 현실이 됩니다.”
 
 
결론
국제 이주자 및 외국인 근로자, 그들은 ‘노동력’이 아니라 ‘사람’으로 왔다. 여러 통계들이 2018년을 정점으로 대한민국의 인구는 인구절벽을 예상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및 젊은이의 3D 직종 기피로 이민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한국사회가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급속한 다문화 사회로 나아 갈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시대적 흐름 가운데 혹자는 “다문화 사회, 득이냐 실이냐?”라는 실용적 질문을 제기 한다. 하지만 이런 실용적 관점을 참고는 하되 인간을 단지 “효율”과 “기능”으로 보는 기능주의적 관점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이유는 스위스의 소설가, 극작가 및 건축가인 막스 프리슈(Max Rudolf Frish, 1911-1991)의 지적처럼 “우리는 노동력을 불렀다. 그런데 사람들이 왔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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