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7.11.17 17:18 |
[기독교 교양 읽기 31] ‘오직 성경,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2017/10/16 13:0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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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은 교회개혁이다…교회와 성직자의 부패가 그 원인
바로 오늘, 우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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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분량에 비해 내용의 알참에 감탄한다. ‘교양으로 읽는…’이라는 제목과 책 부피를 보고 가볍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웬걸 방대한 이야기보따리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먼저 종교개혁의 의미를 거론한 후, 루터 이전의 종교개혁자들의 족보(?)를 죽 나열하며 그들의 투쟁을 이야기한다. 들어보지도 못한 이름에서부터 그냥 귀동냥했던 이름까지 등장한다. 12세기에 이미 가톨릭교회의 세속화와 타락에 대해 항의했던 이탈리아 브레스치아 수도원장이었던 아놀드에 이어, 프랑스의 피터 왈도, 파리의 존, 이탈리아의 마르실리오와 영국의 윌리엄 옥캄, 그리고 존 위클리프, 프라하의 얀 후스와 제롬까지.
뿐만 아니다. 독일의 루터에서 시작한 개혁 이야기는 스위스의 츠빙글리, 칼빈을 거쳐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로 이어진다. 그리고는 프랑스로 건너가 르페브르를 비롯해 고난의 길을 걸었던 인물들의 인생역정까지 이야기한다. 영국 국교회에 얽힌 이야기도 자세하게 설명한다. 여기에 더하여 당시 권력자들에 대해서, 그리고 재세례파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는다. 마치 중세 유럽사를 공부하는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종교개혁이 500년 전 유럽에서 벌어졌던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의 이야기임을 깨닫게 된다.
◈ 《교양으로 읽는 종교개혁 이야기》 || 저자 이상규는 호주 장로교신학대학에서 교회사를 연구하고 호주신학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신대학교 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부산지방 기독교전래사》 《해방 전후 한국장로교회의 역사와 신학》 등이 있다. 영음사, 2017. 11,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루터의 재발견》 / 최주훈 / 복있는사람 / 2017. 9.
《교회개혁》 / 장 칼뱅 / 새물결플러스 / 2017. 9.
《종교개혁》 / 폴커 렙핀 / 한국신학연구소 / 2017. 9.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 교회도 그 의미를 되새겨야
▌좌담: 김길구,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특별손님: 이상규 고신대 신학과 교수

종교개혁 500주년의 의미가 이렇게도 무겁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우리 교회를 향해 또 한 번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 회자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의 저자 이상규 고신대 교수를 모시고 종교개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상시보다 한 시간 이상 더 늦게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교개혁은 1300년대 초부터 움터
김길구  바쁘신 가운데서도 일부러 시간을 내주신 이상규 교수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이 책은 평신도들도 읽기 쉽게 정리한 종교개혁 개론서입니다. 마르틴 루터로 촉발된 종교개혁은 책을 덮으면서 ‘종교개혁들(The reformations)’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제로 ‘종교개혁은 교회개혁이다’고 하셨는데…,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요?
이상규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7년, 유럽에는 종교개혁 400주년을 맞아 상당히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루터 르네상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이제 500주년을 준비하면서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루터 당시의 서적을 번역하는 등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이런 가운데 주위에서 일반인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한 권 있으면 좋겠다는 권고가 있어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김수성  책 마지막에 ‘종교개혁 연표’를 넣으셨더군요. 그런데 루터의 종교개혁보다 훨씬 이전인 1302년부터 시작해 1678년 존 버니언이 《천로역정》을 출판한 것까지 정리하셨습니다.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이상규  정리하느라 조금 애를 먹고 시간도 제법 걸렸습니다만, 일부러 연표를 정리해 넣었습니다. 1302년부터 시작한 것은 루터의 종교개혁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최소 200여 년 전부터 그런 움직임이 있었고, 그 영향으로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에 따른 직접적이든 간접적인 영향 또한 150년 이상 지속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김현호  종교개혁을 교회개혁으로 본 것은 매우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당시 대부분의 종교개혁가들은 가톨릭교회의 개혁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상규  연표에 있는 것처럼, 늦어도 14세기 이후의 가톨릭교회의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대부분 교회와 성직자들의 부패와 타락은 공공연한 사실이었습니다. 특히 교황을 비롯한 고위직 사제들은 더욱 그러했습니다. 교회의 부패는 교리의 변질로 나타났고, 성직자들의 부패는 성적 타락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당시 라틴어로 이런 말이 나돌기도 했습니다. “성직자의 바른 삶은 평신도의 복음이다.”

#교회의 권력지향, 성직자 양산이 문제
김길구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구조적으로 많은 문제를 드러낸 것 같습니다.
이상규  종교개혁 때 제기된 문제는 교황 그레고리1세 때부터 계속되어 온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먼저 권력지향적인 교회의 문제입니다. 교회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권모술수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돈도 필요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교리를 마음대로 뜯어고쳤고, 면죄부를 판매하게 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성직자의 양산입니다. 독일의 어떤 지역에는 주민 30명당 사제가 1명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성직자들이 마구 배출됩니다. 한마디로 제도적 문제였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타락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김현호  당시 교회의 재산도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면죄부를 판매하는 등 부정한 돈을 모으기 위해 없는 연옥까지 만들었습니다.
이상규  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교회의 재산이 그 지역의 3분의 1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각종 헌금을 강요하고 여기에 더하여 면죄부를 판매하는 등 농민을 착취하였습니다. 독일에서 농민전쟁이 일어난 이유 중 하나도 사제가 너무 많아, 그로 인해 농민들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웠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수성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유가 교회의 부패 외에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상규  맞습니다. 당시 유럽사회에는 르네상스의 분위기가 계속되었습니다. 르네상스란 한마디로 인문 사상의 부흥입니다. 즉, 인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던 때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 의해 억압되기는 했지만 자연과학이 발전하였습니다. 단적인 예로 천동설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패러다임으로 변화하던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세속 군주들의 교회 권력에 대한 불만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입니다.
김길구  종교개혁의 결과, 유럽을 한 가족처럼 묶었던 기독교가 민족국가종교 형태로 분화되면서 교회개혁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사회개혁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루터가 주장했던 ‘만인제사장’은 단순히 교회에만 적용되는 내용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이상규  만인제사장이란 가톨릭교회에서 주장하듯 중보자로서의 교회 또는 사제의 역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고해성사와는 달리, 사제를 거치지 않고 누구든 직접 하나님과 대화하고 죄 사함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개신교의 두드러진 교리 중의 하나로 부각됩니다. 이 만인제사장 교리는 누구든 하나님 앞에서는 동등하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민주주의 발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민주주의가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는 사상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요.

#2세기 때부터 서서히 변질되기 시작
김현호  종교개혁 내용 중에는 성만찬과 관련해서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당시 가톨릭에서는 화체설을 이야기하면서 신자들에게는 빵만 나누어주었습니다. 이것도 초대교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상규  당시 가톨릭교회는 성만찬에 참가하여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를 ‘화체설’이라 합니다. 이것은 성만찬의 효과를 과장하여 교리화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 신자들에게는 빵만 주었습니다. 이에 대해 종교개혁자들은 화체설은 잘못된 교리라고 주장하였고, 현재 우리 개신교회가 인정하고 있는 ‘상징설’ 혹은 ‘기념설’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김길구  초대교회 당시는 일반적인 식탁에서 함께 둘러앉아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며 온몸으로 만나는 성찬의식이 있었는데…. 개혁자들이 성례전 문제를 중요시한 까닭은 무엇이죠?
이상규  교회사를 공부해보면, 2세기쯤부터 성찬식의 본래적인 모습이 서서히 변질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성직제도가 생기고, 성찬식이 의례화하면서 그 의미가 왜곡되기 시작했고, 은혜 교리가 교회를 매개로 행위 구원 교리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가톨릭이 로마제국으로부터 공인받는 4세기 이후부터는 이러한 왜곡 현상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입니다. 결국 성경의 가르침에서 크게 이탈하였고, 개혁자들은 바른 성찬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죠.
김수성  초대교회의 직분이란 궁극적으로 ‘섬김’을 바탕으로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성직 제도화되면서 계급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상규  성경에는 ‘장로’라는 직분과 ‘감독’이라는 직분이 나오는데, 우리는 동의어로 봅니다. 그런데 3세기 이후 점차 이를 구분하여 감독은 장로보다 상위의 직분으로 보아 직분을 계층화하였습니다. 이것이 결국 중세 기독교에서 보는 바처럼 직분을 계급화한 것이지요. 한국에서도 목사와 장로를 계급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본래 칼빈의 직분관은 그렇지 않습니다. 목사는 집례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자였고, 장로는 신자들이 가르침받은 것을 제대로 시행하는가를 감독하는 역할로 보아 상호보완적 관계로 이해했습니다. 즉, 목사는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자였고, 장로는 심방 등을 통해 신자들을 성화에 이르도록 독려하는 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
김현호  그런데 이러한 제도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권위주의 현상으로 왜곡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상규  두 가지 요인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구조나 교회관 자체에 오해의 소지가 있고, 다른 하나는 유교의 영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목사와 장로, 집사와 같은 직분을 유교적 신분 개념으로 받아들인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신분이나 계급이 다른 것으로 잘못 인식한 것이죠.

#종교개혁으로 가정의 소중함 깨닫기도
김길구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성직자의 독신주의를 깬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초대교회에서는 결혼을 금하는 규정이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이상규  가톨릭에서 독신주의는 금욕주의의 대두와 함께  2세기 때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성직제도와 관련이 있다고 봐야겠죠. 그러다가 1073년 그레고리 7세에 의해 독신주의가 다시 강조되고 법제화됩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당시, 가톨릭 사제들의 도덕적 문란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루터는 독신주의의 성경적 근거가 없다고 보아 이를 타파하고 수녀 출신의 부인을 맞아 결혼합니다. 독신으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은 죄에 노출되는 현실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없애버리려 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현호  그런데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오히려 가족으로 인해 목회자들이 금전적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례도 나타납니다. 이런 경우 오히려 독신이 더 낫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상규  가족 부양 문제는 다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만, 루터는 결혼 후 여섯 자녀를 두었는데, 여기에 더하여 여섯 명의 어린이를 입양하여 키웠습니다. 당시 전염병 등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었습니다. 물론 루터가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가정의 소중함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수성  ‘가정’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정착하기 시작한 것이 16세기 이후 교회로부터라고 합니다. 이것 역시 종교개혁의 영향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길구  최근 종교인 과세와 관련하여 설왕설래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종교개혁자들의 입장은 어떠했습니까?
이상규  마르틴 루터도 세금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종교개혁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교회는 국가를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가톨릭교회는 별도의 바틴칸 시국이 있어 별도의 세금 제도를 운영하였습니다. 한 예로 ‘초세수입법’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신부가 되면 첫 1년간의 봉급을 교황에게 바쳐야 한다는 법입니다. 한편, 유럽에 서서히 민족국가가 성립되면서 교회로 들어오는 수입이 상대적으로 줄어듭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가 면죄부 등으로 수익을 올리려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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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자들, 성경의 자국어 번역에 앞장서
김현호  당시 국가와 교회와의 관계에 있어 재세례파에 대한 재해석이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이상규  재세례파는 스위스의 츠빙글리와 종교개혁에 동참했던 그레벨과 만츠 등이 ‘신자의 세례’를 제창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성인이 신앙고백을 하고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재세례파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급진적이었습니다. 교회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거부하고, 전쟁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징집에 불응하는 등으로 국가, 가톨릭교회, 개신교 모두에게서 탄압을 받았습니다.
김수성  종교개혁의 역사를 보면 종교개혁의 성공 여부를 좌우했던 것은 궁극적으로 국가나 시의회 등 정치세력이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습니다.
이상규  그렇습니다. 국가나 관료의 지원을 배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메지스터리얼 리폼’이라고도 합니다. 루터가 작센의 프리드리히 3세의 도움을 받은 것이나, 개혁운동이 취리히나 제네바 의회의 결의에 따른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개혁이 들불처럼 번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라 할 수 있고, 시기적으로 볼 때 인쇄술의 영향이 지대했습니다.
김현호  그래서 종교개혁을 ‘미디어 사건’이라고도 하는군요. 책에도 나와 있듯이 루터의 작품들은 “판매되었다기보다는 빼앗겼다”고 할 만큼 인기가 있었고, 이런 점에서 프랑소와 랑베르는 “인쇄술은 하나님의 준비였다”고 했습니다.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대부분은 라틴어 성경을 자신들의 언어로 번역하여 대중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이상규  중세교회 때 이미 프랑스어로 성경을 번역했던 피터 왈도가 있습니다. 이어서 영국의 위클리프가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종교개혁의 깃발을 높이 들었습니다. 이후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하였습니다. 이렇게 자국어로 번역한 성경은 인쇄되어 대중들에게 보급됨으로써 가톨릭교회의 잘못된 교리를 바로 인식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김길구  종교개혁의 핵심은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라는 세 가지로 나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 교계에는 성직주의, 성장주의, 승리주의가 만연함으로써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교수님께서 간략하게 언급하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규  오늘 우리의 개신교회가 종교개혁 당시의 가톨릭교회를 닮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목회자의 양산과 일부 목회자들의 도덕적 탈선이 문제입니다. 교회 혹은 성직구조의 권력화, 돈, 권력, 명예에 대한 탐심이 문제이지요. 그동안 개신교회는 역사를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경향이 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정신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김길구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행복하였습니다. 오늘 이야기를 나눈 《교양으로 읽는 종교개혁 이야기》는 종교개혁의 역사를 유럽 역사와 함께 통사적으로 알 수 있도록 정리하였고, 숨겨진 이야기까지 빠뜨리지 않은 역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부러 시간을 내주신 이상규 교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는 우종학 교수가 쓴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최근 논란이 된 ‘창조과학’과 관련하여 읽어봐야 할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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