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7.12.18 16:58 |
[이상규 교수의 부산기독교이야기 16] 윌리엄 베어드가 언급한 상주지방의 ‘김 서방’은 누구인가?(재론)
2017/09/25 14:48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구글+로 기사전송 C로그로 기사전송
이상규교수 copy.jpg
1891년 1월 내한하여 서울에서 거주하던 중 그해 9월 부산으로 와 4년 4개월간 체류했던 윌리엄 베어드는 4차례의 장기 순회 전도여행을 다녔는데, 그의 두 번째 여행은 1893년 4월 14일 금요일부터 5월 20일까지 약 5주간에 걸친 경상북도 내륙지방으로의 장기여행이었다. 이동거리는 약 400마일, 곧 1,200리에 해당한다. 이 때 그는 부산에서 출발하여 양산 밀양 청도 대구를 거쳐 칠곡 성주 선산을 거쳐 4월 27일에는 상주에 도착한다. 그런데 상주에서 4월 28일 ‘김 서방’이라는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를 그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어제 아침 낙동을 떠나 상주에 이르는 길 중간 쯤 갔다. 여기서 우리는 ‘김 서방’이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We learned that Kim sawbang was living off of the road on a little village). 우리는 그곳에 가 보았는데, 그는 아주 작은 집에서 매우 궁핍하게 살고 있었다. 그는 부산을 떠나서 칠 일 만에 백원(白元, 경북 상주시 사벌면과 외서면 일대, 인용자 첨가)에 도착했고, 며칠 전까지는 아파서 누워 있었다. ... 그는 앉을 공간이 있는 이웃집으로 우리들을 데리고 갔다. 잠시 대화를 나눈 후 우리를 약 15채의 집이 있는 작은 마을에 사는 자기 친척들에게 소개했다. 그는 우리에게 함께 식사하자고 거듭 청했다. 그는 가난했지만 거듭된 간청을 거절하지 못해 우리는 그의 요구에 응했다. 그와 함께 성경을 읽고 말씀을 나눈 후에 우리는 그곳을 떠났다. 그는 우리를 언덕 비탈까지 따라와서 배웅했다. 불쌍한 형제! 그는 오래 살 수 없다.”
 
이 일기에 처음 등장하는 김 서방, 건강이 악화되어 오래 살 수 없으리라고 판단했던 그 김 서방은 누구이며, 그의 여정은 어떠했을까? 이 일기를 보면 베어드는 여기서 비로소 김 서방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그를 이미 알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또 김 서방은 부산에 와서 치료를 받고 고향 상주로 돌아간 인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 ‘김 서방’은 누구일까? 이 순회 여행 당시 베어드와 동행했던 서경조의 증언은 김 서방이 누구인지를 해명하는데 도움을 준다. 서경조(徐景祚, 1852-1938)는 「신학지남」 7권4호(통권18호, 1925)에 쓴 “徐景祚의 傳道와 松川敎會 設立歷史,”(93-4쪽)에서 상주를 방문했던 당시를 이렇게 증언한다. “디명은 미샹나 부산셔 밋기로 작졍 一人을 차즈니 셩명은 김긔원이라. 죵쳐병이 즁 것을 보고 위로를 고 셥섭이 나니라.” 이 증언을 통해 3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베어드가 말한 김 서방이 다름 아닌 김기원이라는 인물이고 그가 부산에서 예수를 믿기로 작정했고, 그의 병명은 ‘죵처병,’ 곧 종창(腫瘡, carbuncle)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김서방, 곧 김기원은 병 치료차 이미 부산을 방문했고 그 때 선교사를 통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드렸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을 보여주는 기록이 있다. 브루엔(Henry Bruen)의 기록은 리차드 베어드의 글을 인용하고 있는데, 여기에 보면 김재수는 1891년 종창을 치료하기 위해 부산으로 왔고, 부산 체류 시에 하디 의사를 만나 기독교신자가 되었고, 후에는 아담스(James Adams)의 어학선생이 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1891년 4월 14일 부산으로 와 1892년 11월 18이 원산으로 이주했던 캐나다 출신 로버트 하디 의사가 1892년 10월 6일 쓴 “두 번째 연례보고서”(Dr Hardie's Second Annual Report)에서 김기원은 1891년 치료차 자신에게 온 일이 있고 1892년 다시 와서 2개월간 부산에 체류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이상의 사실을 종합해 볼 때 경북 상주시 낙동면 화산리의 김기원은 종창으로 고생하던 중 부산의 서양인 의사에 관한 소문을 듣고 1891년 부산으로 와 하디 의사의 치료를 받았고, 1892년 8월 초부터 10월 6일 이전까지 2개월가량 부산에 체재했는데, 이때 베어드도 김기원을 알게 되었다. 선교사와 접촉하던 중 기독교 신앙을 받아드린 김기원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1893 4월 베어드 일행이 상주지역을 가게 되었을 때 낙동면 화산리의 김기원을 다시 만난 것으로 보인다. 이 때 베어드는 그의 일기에서 김기원을 ‘김서방’으로 기록한 것이다.(다음호에 계속 됨)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kcnp1@hanmail.net
한국기독신문(www.kcnp.com) - copyright ⓒ 한국기독신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 많이본기사
  • 화제의 뉴스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정기구독신청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한국기독신문 (http://www.kcnp.com) | 창간일 : 1995년 4월 11일 | 발행인 : 김해옥 | 편집인 : 신이건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신상준 국장 
    602-053   부산광역시 서구 까치고개로 229번길 47-1
    사업자등록번호 : 758-96-00228 | 정기간행물등록 : 부산, 아00259
    대표전화 : 051-245-1235 | 팩스 : 051-245-2763 | kcnp1@hanmail.net
    Copyright 2015. kcnp.com All right reserved.
    한국기독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