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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사회] 난민 선교
2017/09/11 16:3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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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수 교수.jpg
최근 수년간 난민문제는 국제 주요 3가지 이슈 즉 기후변화와 테러와 함께 큰 골칫거리이다. 유럽이 난민문제로 나라 전체가 진보와 보수의 입장으로 둘로 쪼개질 정도이다. 우리도 한국전쟁으로 난민이었던 나라이고 현재 난민으로서 북한 탈북민의 숫자도 3만 명이 넘는다. 최근 탈북민 난민이 한국에서 겪는 어려움을 방송 및 언론에서 수차례 취급하고 있다. 심지어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에 정착한 그들이 한국에서 겪는 차별대우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견디다 못해 한국을 떠나 제 삼국으로 향하는 숫자가 최근 증가하고 있다. 
국제이주기구(IOM)는 지난 8월 10일 난민 브로커들이 예멘으로 향하던 아프리카 난민 180명가량을 바다에 빠뜨려 난민 60명 이상이 익사하거나 실종된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난민 브로커들이 예멘 해안 근처에서 밀입국 단속반에 노출될 위기에 처하자 그들을 바다로 밀어 넣은 것이다. 인면수심의 짓이다. 희생자 평균 나이는 약 16세로 조사됐고 윌리엄 스윙 국제이주기구 사무총장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무자비하게 익사 당한다면 이 세상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유엔난민기구 보고에 의하면 내전을 피해 이웃으로 피난한 남수단 난민 수가 15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 보고는 남수단 난민 규모가 아프리카 최대로, 난민 1,100만 명에 이르는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세계 3위의 난민 사례라고 경고했다. 2011년 7월 수단에서 독립한 남수단은 종교, 인종 갈등으로 건국 2년 2013년 12월 내전에 빠져들었다. 남수단 난민의 85%는 여성과 18세 미만 어린이, 청소년이다. 유엔난민기구는 최근 우간다에 도착한 남수단 난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군인들이 민간인들을 집에 가둔 채 불태우고 가족이 지켜보는 앞에서 살인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전했다. 바로 이 남수단은 부산이 낳은 이태석 신부가 의료 봉사활동을 했던 곳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으로 그들을 위해 이론과 실천의 모범적 삶을 사셨던 손봉호 고신대 석좌 교수는 난민에게 무관심한 한국 사회와 교회를 가리켜 “난민에 대해서 세상에서 가장 인색한 우리나라와 이에 대해서 아무 감각도 없는 한국교회”라고 질타한 적이 있다. 그는 또“만약 우리나라에 미국이나 영국처럼 노동자들과 난민들이 대거 몰려왔다면 아마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극렬하게 국수주의적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지적하였다.
하지만 난민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바꾸어 놓는‘유쾌한 오보’들이 중동과 북아프리카와 유럽에서 나오고 있다. 필자는 금년 파리 난민포럼(2월 8-11일)에 참가해서 중동과 북아프리카와 유럽에서 난민 사역에 종사하는 많은 한국 선교사들의 보고를 통해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놀라운 일이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온 몸으로 느꼈다. 그것은 한국과 세계 여러 나라의 선교사들의 난민 선교를 통해서 수많은 시리아 및 기타 지역의 무슬림 난민들이 주님께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 기독교 세계관 학술 동역회 잡지 2017 년 월드뷰 2 월호 내용이다. 글쓴이는 금년 1 월에 한국을 방문한 네덜란드 라브리 공동체 대표이며 국제 라브리 회장을 역임했던 리트께르크(Wim Rietkerk) 목사이다. 그는 유럽에 몰려드는 시리아를 포함한 기타 난민들을 하나님께서 유럽 교회에 보내 주신 '뜻밖의 선물'로 바라본다.
그의 보고에 의하면 고국과 종교적 전통으로부터 단절된 수많은 무슬림들은 새로 정착한 땅에서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하고, 유럽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을 따뜻하게 환영해주자 놀랄만한 숫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2015 년부터 독일에 몰려든 난민 약 100 만 명 중 현재까지 무려 3,000 명 이상이 세례를 받았고 그가 살던 네덜란드 동네 교회에서도 70 명의 무슬림들이 새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이슬람국가를 찾아간 어떤 선교사도 이런 엄청난 결과를 얻어 낸 적이 없었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난민 사태로 그 나라에서는 이슬람 때문에 복음을 듣지 못했던 무슬림들이 난민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복음에 매우 쉽게 노출되고, 그들이 처한 절망적이고 갈급한 상황 때문에 복음에 매우 수용적이 됨으로써 선교의 열매와 결과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국의 작가 루이스(C. S. Lewis, 1898-1963)가 「고통의 문제(The Problem of Pain)」라는 책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고통은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는‘확성기’라고 말한 것처럼 시리아 난민들은 그들이 겪는 고통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확성기를 통해 들은 것이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난민 사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에 주신 선교 수확 및 추수의 기회인 것이다.
유럽과 중동의 한국인 및 유럽의 선교사들의 헌신과 수고로 많은 중동의 난민들이 주님께로 돌아올 뿐만 아니라, 그들이 앞으로 잘 훈련되어 본국으로 돌아가 동족 무슬림들을 복음화 하는데 소중한 도구로 쓰임 받는 놀라운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선교사들이 예견하고 있다. 그리스 지역에 있는 시리아 난민을 위한 한인 선교사의 보고에 의하면 지금 미국 선교부는 이런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서 난민 선교의 중요성과 효과를 깨닫고 매우 발빠르게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유럽의 난민 사태를 통해 하나님께서 잠자고 있고 쇠락해 가는 유럽 교회를 깨우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앞에서 언급한 네덜란드 리뜨께르크 목사의 생각이기도 하다. 그는 그의 글 결론에서 이런 질문을 제시하였다. '혹시 하나님은 유럽을 기독교적 뿌리로 돌려보내시기 위해 난민들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우리 한국교회도 이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포착해서 난민 선교 파도의 물결에 타야 하지 않을까?
유엔난민기구(UNHCR)에 의하면 전 세계에 6,700만 명의 난민이 존재하며, 시리아 인구 2,200만 명 중 난민은 1,100만 명이다. 그들 가운데 자국 내에 거주하는 난민은 600만 명이고, 해외에 5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본다. 이들에 대한 복음의 선교적 접근과 그 열매와 효과를 위해서 한국교회가 매우 이 사태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혹자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타나는 강도 만난 사람은 오늘날 시리아 독재자에 의해 발생된 시리아 난민이고, 그들을 돕는 선한 사마리아인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로 본다. 그 비유에서 예수님의 ‘누가 네 이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두 부류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강도 만난 가운데 고통당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고통당하는 사람을 도와줘야 할 사람이다. 따라서 ‘이웃’은 가까이 있고 멀리 있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랑의 필요자와 공급자가 공간적 개념을 뛰어 넘는 이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한국교회가 이 일에 참여한다면 공간적으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난민들에게 진정한 그들의 이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피는 물보다 더 진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때로는 물이 피보다 더 진할 수도 있다. 인류의 역사는‘피는 물보다 더 진하다’는 원초적 본능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꿈과 이상을 가지고 ‘물이 피보다 더 진하게 사는’ 사람에 의해 발전하고 진보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피가 물보다 더 진하다’는 이 원초적 본능과‘물이 피보다 더 진할 수 있다’는 일반 은총을 뛰어 넘어 시리아 난민 사역에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특별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근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익히 잘 아는 대로 아프리카 지역에서 유럽으로 가는 수많은 난민의 행렬 가운데 지중해에서 많은 난민들이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언론에서“지중해, 난민들의 공동묘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비극적 사례가 지난 토요일 (9월 2일 저녁 8시 분) KBS‘김혜수의 난민일기’에서 생생하게 방영되었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 경험은 쾌락과 고통이다. 하지만 고통이 쾌락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어떤 점에서 고통은 죽음보다 더 무서운 인류의 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안락사를 택하기도 하고 그 고통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영국의 C.S.루이스(C.S.Lewis)는 과거에는 인간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것은 주로 자연이었지만 지금은 인간이 당하는 고통의 80%는 인간이 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인류적 재앙과 난민들이 겪는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해결책은 보편적 인류애와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하늘에는 별이 있고 땅에는 꽃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 354-430)에 의하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다. 타인을 돕는 손, 가난한 자에게 달려가는 발, 불행을 보는 눈, 한숨과 슬픔을 듣는 귀를 가진 것이야 말로 사랑의 참모습이다”라고 갈파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우리는 시리안 난민 및 모든 고통 받는 난민을 위해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즉각적으로 순종하고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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