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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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이라는 단어가 지금처럼 사용된 때가 있을까 싶다. 더 늦지 않게 개혁이 실천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개혁할 것인지와 어떻게 개혁 할 것인가에 대한 분별이 중요하다. 현 정부도 ‘적폐청산’을 부르짖고 행정·사법·교육 등 각 분야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방법과 절차, 내용에 동의 할 수 없다고 저항하는 기류도 강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그 개혁의 결과를 평가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어떤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즈음하여 개혁하자는 구호는 분명한데 그 내용이나 방법에 대한 제시들은 선명성을 드러내기 보다는 상당부분 모호하다. 루터와 칼빈, 쯔빙글리 등의 종교개혁자들이 일생을 통해 추구했던 개혁 신학과 그 신학에 근거한 개혁의 내용과 대상들은 단순하지 않다. 여기저기서 개혁하자는 외침이 들릴 때 청중들은 개혁의 구체성에 대해서 되묻는다. ‘그래서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지에 대한 각론들은 다양하다. 목사와 장로 등 교회지도자에 대한 제도적 개혁에서부터 헌금, 예배당 건축과 성도들의 신앙태도 등 교회 전반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에 대한 것도 신학교의 체제정비를 통한 목회자 수급 조절과 신학생의 소명 점검부터 대형교회의 분리, 성도들의 바른 신앙생활을 위한 교육 등 무척이나 다양하다. 이 모든 것은 언제나 개혁해야 할 부분이고 지속적으로 가열차게 개혁해 나가야 할 내용들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면서 무엇을 개혁의 내용으로 삼을지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재의 교회 그 자체가 핵심이다. 그러나 이것도 거대담론으로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렇게 개혁하자고 부르짖지 않았던 시기가 한번도 없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존 스토트는 그의 책 ‘제자도’에서 여덟 가지의 제자도를 제시하였다. 사실 이 책의 원 제목은 ‘급진적 제자도’(Radical Disciple)이다. ‘급진적’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 볼 때는 굉장히 급진적인 측면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타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급진적” 이라는 것은 곧 ‘개혁적’이라는 말일 것이다. 실상은 교회로 부름 받은 ‘나’ 자신부터 그리스도를 급진적으로 따르는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이는 우선 교회된 나 자신을 개혁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 그렇다면 개혁의 급진성이 적용되는 첫 자리에 나 자신이 서 있는가? 를 격하게 살펴봐야 한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보내면서 개혁의 성공여부는 교회를 섬기라고 부름 받은 지도자들이 성경이 제시하는 바, 급진적인 예수의 제자로 살아 내고 있는가? 로 귀결될 것이다. 그 잣대를 자신에 주도면밀하게 대어보고 평가하고 진단해 보아야 한다.
 
‘나’는 세상의 가치관에 순응을 거부하며 살고 있는가? 하늘보좌의 영광을 버리고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가?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세계를 그 분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돌보는가? 복음의 가치를 따라 단순한 삶을 사는가? 이 땅에서 나그네요 거류민으로 살고 있는가? ‘주님의 종’인가? 주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는가? "개혁된 교회는 계속해서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est semper reforma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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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종교개혁 500주년, 무엇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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