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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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 때 쯤의 일이다. TV의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서 광복절을 맞이하여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소개한 일이 있었다. 비행기 편도 제대로 없던 시절에 독립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엄청난 거리의 여정을 배와 육로로 여행했고, 그래서 그 출입국 기록이 빼곡히 담긴 당시 안창호 선생의 여권과 오랜 여행으로 다 낡고 헤어진 가죽가방이 기억난다. 그만큼 그는 일제치하 억압받는 민족을 일깨우기 위해 불철주야 몸을 아끼지 않았던 모범적인 민족의 지도자였다. 극한의 상황에서라면 내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이기심이 발동하는 게 인지상정인데, 도산은 어떻게 아버지의 역할도 뒤로 한 채 사랑하는 자녀와 아내를 미국에 남기고 민족을 위해 어떻게 그렇게 험한 길을 걸어갈 수 있었을까? 그 질문의 답을 이 프로그램의 후반부에 등장한 ‘애기애타(愛己愛他)’라고 쓰인 안창호 선생의 친필 액자를 보고 얻게 되었다. 그 액자를 보는 순간 저절로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의 아내와 결혼했던 안창호는 평생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살았고, 그에게 기독교 신앙은 인생의 핵심 가치였다. 그 말씀에 사로잡힌바 된 안창호 선생은 일제치하에 고통 받는 민족의 삶을 방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일제 시대 때 기독교인들은 인구대비 매우 미미한 숫자였지만 독립운동에 가장 많이 참여한 집단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지도를 펼치고 교회가 있었던 지역에 표시를 한 뒤 그 위에 광목천을 덧대고 거기에 독립운동이 일어난 지역을 표시하면 정확히 일치했다는 일화는 그 당시 교회의 나라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지를 보여주는 한 예다. 일제 말기로 갈수록 기독교 탄압이 심해졌던 역사의 기록은 일제가 기독교를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기독교와 교회의 독립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컸으며 이러한 간절함이 실제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한 교회의 기도와 간구가 있었기에, 그리고 도산 안창호 선생처럼 자신의 인생을 던져서 헌신한 기독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수고가 있었기에 도무지 한 점 희망이 없어보이던 이 땅에도 광복, 빛이 되돌아오는 기적 같은 날이 찾아 왔던 것이다.
기독교교육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오늘날 다음세대를 보면 참 안타까울 때가 많은데, 그중에 하나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자부심, 긍지를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사건에는 여지없이 기독교인들이 개입되었거나 주도적으로 가담한 정황이 언론 보도를 통해 나타날 때나 크고 작은 교회의 문제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백번 타당하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그런 게 아닌데, 아직도 이 땅에 복음의 빛을 들고 섬기는 이들이 많은데”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기독교의 자기부정이 자칫 자기비하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많고, 그러다보니 다음세대들이 기독교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정체성, 긍지를 잃어가는 것은 아닌가 매우 우려가 된다. 제 72주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우리는 우리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인들의 헌신과 희생을 기리고 그들의 기독교신앙에 기초한 나라사랑, 이웃사랑의 정신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또한 국가적인 어려움의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삶으로 실천했던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를 비추어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세대의 부흥을 위한 많은 교육적 활동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긍지를 갖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이자 용사로서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고 복음의 가치관대로 살아내는 것은 신앙교육의 매우 중요한 목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창궐한 이 시대 속에서 먼저 어른 세대가 복음의 빛에 비추어 정직하고 바른 삶, 시대와 역사 앞에 책임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런 노력이 전승될 때 우리의 다음세대들도 그 길을 따라 신앙정체성과 긍지를 가지고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일꾼으로 자라게 될 것이다. 광복절을 맞이하여, 이 땅에 다시 한 번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기를(사9:2)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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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학교를 살린다] “광복(光復), 빛이 되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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