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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28 : 민주주의
2017/06/26 16:3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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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 민주주의: 평등공동체 → 제한된 왕권 → 다윗 ‘왕’
1. 6월 항쟁 30주년, ‘대한민국 4.0시대’의 개막
 
2017년 6월 10일은 1987년 6월 항쟁 30주년을 맞는 해이자, 2016년 부터 이어진 촛불혁명과 더해져 그 의미가 남달랐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식 연설에서 “더 넓고 더 깊고 더 단단한 민주주의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는데, 어느덧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수입국에서 419, 518, 610, 촛불혁명을 통해 민주주의의 수출국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대한민국의 4.0시대가 개막했다. ‘대한민국 1.0’은 1945년 광복과 더불어 열렸고, 남북으로 갈라진 반쪽짜리였다. ‘대한민국 2.0’은 60년대 들어 시작된 압축성장의 ‘산업화 시대’와 그 뒤를 이은 민주화 시대까지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까지로 볼 수 있다. 사실 산업화 시대의 압축성장의 폐해는 심각했다. 몸과 정신의 괴리는 컸고, 사람다운 가치는 실종이 되었으며 분열과 차별은 당연시 되었고 배려와 공감은 사라졌다. 형식주의, 학벌주의, 외모지상주의, 금전과 권세 지향주의로 인해 사회의 공공성은 크게 훼손되었다. 여기에 사대주의가 끼어들어 엘리트 중심주의까지 판을 치게 되었다. 물론 경제가 성장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리고 이후 민주화 시대를 통해 산업화 시대의 폐해가 사라지는 듯 했다. 권위가 해체되고, 지역감정이 유보되고, 사회의 공공성이 강화된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근혜’의 ‘대한민국 3.0’이 되자, 다시 대한민국은 1.0때의 반쪽짜리와 2.0의 산업화 시대만이 강화되었다. 결국 “이게 나라냐?”며 외쳐온 광장의 촛불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 4.0’이다. ‘청년실업, 노인빈곤, 남녀-세대-지역-문화-이념 갈등’을 넘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자존감의 회복이, 생명이 생명답게 존중받는 생명의 가치가 그 핵심이 될 것이다.
 
2. 민주주의와 기독교
 
민주주의(democracy)의 어원은 그리스어 demos(민중)와 kratos(지배)의 합성어이다. 즉 ‘민중에 의한 지배’라는 뜻으로, 한자어 민주(民主)가 그 뜻을 잘 드러낸다. ‘백성이 주인’이라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근대 이전의 국가들은 대부분 왕정이나 귀족정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즉 집단을 다스리는 주체가, 다시 말하면 권력을 가진 사람이 1인, 혹은 극소수에 불과한 정치 형태가 일반적이었으나, 민주주의는 다스리는 집단과 다스림을 받는 집단이 일치하
는¹, ‘치자(治者)가 곧 피치자(被治者)’인 정치 형태이다.
 
이후 근대 시민 혁명기에 다수의 민중은 피지배 계급이 아닌 정치의 주체로 자리를 잡게 되는데, 시민, 즉 국민 스스로 국가의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정치 체제인 민주주의가 발전하게 되었고,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지배 계급의 억압과 착취로 개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침해되는 것을 최소화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로 610항쟁과 촛불혁명은 민주주의의 참 뜻을 잘 내포하고 있다.
 
오늘날 이 민주적이라는 말이 생활 속으로 확장이 되어 민주적이라는 말은 집단 내에서 ‘건전한 비판’과 ‘타협’이 이루어지며, 타인에 대한 ‘관용’ 정신이 잘 발휘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다수결이라는 의사 결정 방식도 우리 생활 속의 민주적인 요소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궁극적인 목적인, ‘인간의 존엄성 수호, 자유, 평등’의 측면에서 본다면 기독교와 민주주의는 상관이 있는 듯 보인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측면에서 인간 최고의 존엄성 실현이 성서이며, 자유와 평등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신을 배반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야말로 최고의 자유가 아니겠는가? 마찬가지로 평등은 구약 이스라엘 선민공동체와 신약의 교회 공동체의 기본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성서야 말로 민주주의의 교과서인 것이다.
 
3. 이스라엘 평등공동체
 
원래 이스라엘은 지파들이 모인 동맹체로서 자율적 기능을 가진 지파들이 야훼종교라는 이름 아래 평등주의적으로 결합된, 사회-문화적 공동체이다. 이들은 이집트 등 고대근동의 제국주의적 지배와 가나안 땅의 봉건적 착취구조에 저항하는 민중의 혁명으로 시작되었다. 고대 근동의 촛불혁명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이러한 이스라엘의 구성원이 되는 조건은 야훼종교의 제의, 의식, 도덕적 훈련, 이데올로기에 대한 헌신과 사회경제적 법률들에 반영된 경제적 평등주의의 실천 등이 가장 큰 요건이었다. 오늘날의 ‘경제민화화’보다 세련된 가치였던 것이다.
 
그리고 매 7년마다의 계약 갱신을 위한 축제 때, 모든 지파회의를 통해서 토지의 재분배가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토지의 주인은 야훼뿐임을 철저히 믿었기 때문이다.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고 사람은 하나님에게 몸 붙여 사는 식객에 불과하다.”(레위기 25장23절) 땅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토지는 개인이 함부로 팔아넘길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거역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가장 포악한 폭군 아합 왕마저도 처음에는 한 시골 노인 나봇의 포도원을 사들일 수조차 없었다.(열왕기상 21장 참조)
 
부득이한 경우 땅을 팔 수는 있었으나 가까운 친척이 사주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희년 때까지만 기다리면 자동적으로 원래의 소유자에게 소유권이 되돌아오도록 규정한다.(레위기 25장) 민주적 평등공동체의 규현인 것이다.
 
또한 50년째마다 돌아오는 희년은 잉여재산을 상속하여 대를 이어 부가 집중되는 것을 막는 사회적 제도이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이중, 삼중적 토지제도를 통하여 사회의 부가 몇몇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았으며, 이것을 어기는 것을 야훼 하나님께 대한 반역으로 생각하여 엄격한 금기사항으로 여겼다. 이스라엘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 평등한 공동체의 삶을 살도록 제도적으로 규정하고 보완한 신정국가라고 할 수 있다. 고대 근동의 다른 국가처럼 인간인 왕이 아니라, 야훼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통치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정착한 팔레스틴 땅은 왕을 중심으로 한 계급적 사회였으며 경제적 불평등의 사회였다. 게다가 해양민족인 블레셋(오늘날 팔레스틴 사람인)이 팔레스틴 지방에 최초로 철기문화를 들여와, 발달된 무기로 끊임없이 이스라엘 평등사회를 괴롭혔다. 내우외환(內憂外患)이라고, 이스라엘 지파 내부에서도 분쟁이 생긴다. 사사기 21장에 보면 가장 작은 지파인 베냐민 지파와 나머지 지파들과의 전쟁 이야기가 나오는데, 지파간의 이해관계에서 갈등이 생긴 것이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지역감정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이 지역감정은 그 지역 내부에 빈부격차는 물론 계급착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지파간 연대의식은 사라지고, 따라서 200년이나 생명을 유지해온 이 믿을 수 없는 민주적 평등공동체는 그 막을 내리게 된다. 그 결과 왕정이 성립이 된다.
 
4. 제한된 왕권: 사울 왕의 경우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권은 주변국의 왕권과 상당히 달랐다. ‘제한된 왕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스라엘의 왕은 예언자에 의해 임명되었고 또한 폐위당하기도 하였다. 고대근동에서는 왕권이 세습에 의해 승계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왕을 임명하고 폐위시키는 권한을 민중전통의 최후 보류인 야훼종교의 지도자에게 부여함으로 왕권이 절대권력이 되는 것을 제한하였다. 또한 왕의 권한은 군사적 임무로 제한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초대 왕인 사울은 왕이라기보다는 블레셋에 대항하기 위한 군사적 총사령관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전쟁 선포도 왕의 권한이 아니라 종교지도자의 권한이었다. 그리고 왕의 통치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법에 근거해야 했다. 고대 근동의 왕들은 자기 자신이 입법자이기 때문에 왕의 통치 근거는 자신에게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법제정의 권한을 철저하게 야훼 하나님께 돌린다. 그리고 왕 역시 법아래 있는 존재로, 법을 두루마리에 베껴 항상 왕의 옆에 두고 읽고 그것을 실천해야 했다. 제한된 왕권을 통해 백성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윗을 통해 변질된다. 그나마 민주적인 평등공동체가 다윗으로 인해 왕의 지배를 받는 체제로 변질된 것이다.
 
5. 강화된 왕권: 다윗 왕의 경우
 
다윗은 사울 밑에 장군으로 있었는데, 골리앗 사건을 통해 출세를 한다. 권력욕이 있었던 다윗은 개인적인 목적으로 용병을 고용하여 사병 조직을 키웠다. 군내 사조직인 것이다. 이스라엘판 ‘하나회’, 혹은 ‘일자회’, ‘독사회’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이스라엘 지파동맹체는 지파별 징병제도에 의해 운영되었기에 다윗의 개인 용병조직은 이스라엘에 낯선 것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권력욕에 취한 다윗이 사울에 의해 쫓기게 되자, 자신의 사병조직을 이끌고 적국인 블레셋의 성읍인 갓의 왕 아키스에게로 넘어가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한다. 일제 시대에 일본에 충성을 서약한 것과 똑같다. 그러자 블레셋의 왕은 다윗에게 시글락이란 성읍을 다스리도록 내준다.
 
그런데, 이러한 다윗 주변에 사울 체제에서 소외당한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 그 유명한 아둘람 굴이다. 어떤 이는 이를 『수호지』의 ‘양산박’으로 비유하는데, 환란당한 자, 빚진 자, 원통한 자들이 모여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블레셋으로 망명한 다윗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것은 이들이 사울체제에서 소외된 사람들이긴 했으나, 분명한 역사의식은 가지지 못한 민중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평등 공동체에 대한 애정도 없고, 단지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로 다윗 주변에 모여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힘을 가진 다윗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헤브론을 장악하고 사유화했으며 자신의 사유지를 중심으로 마침내 유다지파의 왕으로 등극한다. 일종의 쿠데타이다. 이스라엘 지파동맹 체제에 대한 도전이며 반역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가만히 보면, 블레셋도 동의한다. 왜냐하면 다윗은 블레셋의 봉신이었기 때문에 블레셋의 승인 없이 다윗이 그러한 조치를 취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블레셋의 정책이 ‘분할하여 지배’하는 정책이기에, 이스라엘이 분단되는 것을 좋게 보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반도 주변 4대 강대국의 남북분할 정책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아무튼 다윗이 유다지파의 왕이 된지 7년 반의 세월이 지난후, 마침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지파동맹체의 지도자가 된 이스보셋과 그의 장군 아브넬 사이에 내분이 일어난다. 다윗은 내분을 틈타 아브넬을 꾀어 협상하는 척하다가 부하 요압장군의 손을 빌어 아브넬을 살해한다. 곧 이어 이스보셋도 원인 모를 자객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성서는 표면상 아브넬과 이스보셋의 죽음에 대해 다윗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진행된 일임을 강조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 사울의 친척이었던 시므이가 다윗에게 퍼부은 욕설에 따르면, 이스라엘 민중들은 피의 숙청과 폭력에 의해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의 정당성을 의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무엘하 16:8-9절에 시므이의 말이 잘 나와 있다. “꺼져라! 이 살인자야, 껴져라! 이 불한당 같은 놈아, 사울 일족을 죽이고 나라를 빼앗은 놈, 그 원수를 갚으시려고 이제 야훼께서 이 나라를 네 손에서 빼앗아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주신 것이다. 이 살인자야, 네가 이제 죄 없는 사람 죽인 죄를 받는 줄이나 알아라.”
 
그러나 민중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북왕국의 장로들은 다윗의 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0.26 이후 전두환 장군의 위세와 같은 것이다. 더욱이 블레셋을 비롯한 외세의 위협이 극심한 상황에서 오랫동안 권력의 공백기를 겪을 수는 없었다. 따라서 다윗의 탁월한 군사적 지도력을 인정하여 계약을 체결한다. 다윗을 전체 이스라엘의 왕으로 옹립하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평등 공동체가, 어쩌면 성서의 민주주의 전통이 다윗이라는 인물을 통해 무너지고 만 것이다. (이상의 다윗에 관한 ‘신명기 사가’의 관점은 ‘역대기 사가’의 관점에서는 180도 달라진다. 다윗의 장점만 부각시키는 것이다. 포로기 이후 고향에 돌아와 이스라엘 공동체를 재건해야할 역대기 사가의 관점에서 다윗-솔로몬 시대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6. 초대 교회 공동체의 대안
 
왕을 세워 왕을 통한 민족의 부강을 바랐으나, 세상의 왕이 이스라엘을 올바르게 다스릴 수 없다는 사실에 구약의 예언자(특히, 이사야)들은 메시야를 요청한다.² 그리고 그 메시야가 오셔서 성령을 통하여 새로운 민주적 평등 공동체를 세우는데, 그것이 바로 초대 교회 공동체이다. 사도행전 2장 44-47에 보면 초대 교회 민주적 평등 공동체의 모습이 잘 나와 있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한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갔다.” 역사상 현존했던 가장 아름다운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공동체였다.
그러나 이후 기독교의 역사에서는 그렇지가 못했다. 기독교가 주류종교가 되면서, 권력에 봉사하거나, 스스로 권력으로 군림하는 지배이데올로기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로마의 국교로 전락이 되면서 기독교가 제 힘을 잃어버린 것이다. 예수 믿으려면 목숨을 걸고 믿어야 되는데, 이제는 속된 말로, ‘개나, 소나’ 다 예수를 믿으니 타락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평등공동체가 다윗-솔로몬이라는 왕정 체제에 의해 이념의 변질을 겪은 것처럼, 교회사에 있어서도 기독교의 원형이 굴절 된 것이다. 올해가 종교개혁 500주년이기도 하지만, 아드 폰테스(ad fontes) 곧 ‘근본으로 돌아가야’할 것이다. 그리고 그 근본은 정치적 민주, 사상적 자유, 공동체의 평등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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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예외적으로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인 아테네에서는 시민 전체가 참여하여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민회라는 의사 결정 기구가 존재했었는데, 그 민회에서 추첨제나 윤번제를 통하여 모든 시민이 공직에 나아갈 수 있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아테네에서 시민이란 성인 남자 자유민만을 의미하는 특수 계급으로, 여성, 노예, 외국인이 제외되었다는 점에서 제한적인 형태의 민주주의였다.

2)“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사야 9:6)
최병학 목사2.JPG
 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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