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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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국보훈의 달이나 나라사랑의 달로 기념하는 유월(六月)입니다. 아이들에게 <6.25>를 써놓고 읽어보라고 했더니 <육점이오>라고 읽더랍니다. 분단과 전쟁을 겪은 세대는 당연히 <육이오>라고 읽겠지요? “점”이라는 한 글자만 다른 것 같지만 사소해 보이는 이 차이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갈등의 출발점입니다. 기존의 ‘지역(地域) 갈등’, ‘보혁(保革) 갈등’ 못지않은 갈등계의 신흥 강자로 등장한 ‘세대(世代) 갈등’을 염두에 둔 말이 되겠습니다.
어느 사이엔가 우리는 ‘산업화 세대’, ‘민주화 세대’, ‘정보화 세대’의 구성원들이 공존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각각 공유하는 기억이 다르고,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가 다르며, 추구하는 방향성이 다릅니다. 차이가 잉태하여 갈등을 낳고, 갈등이 장성하여 혼란과 분열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갈등의 삯은 결국 공멸(共滅)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분단(分斷)과 정전(停戰) 체제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갈등사회’ 속에서 “교회가 평화문제를 외면한다는 것은 그 신실성을 포기하는 것이고 또한 세상과의 이해와 소통을 포기하는 것이다”라는 볼프강 후버(Wolfgang Huber)의 말을 우리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평화이루기(peace making)는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의 본연적인 신앙고백이 아니겠습니까?(마 6:10)
하지만 갈등과 분열을 해소하고 평화 이루기는 “긴 여정이고, 매우 위험한 여정이며, 지난(至難)한 여정”일 수밖에 없습니다.(Katongole & Rice, Recociling all things) 이 땅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싸드(THAAD) 배치를 둘러싼 갈등과, 특수목적고 폐지 문제를 둘러싼 논쟁과, 동성애와 관련된 퀴어 축제나 차별금지법 논란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회 갈등은 결국 이익 갈등이기 때문에 이해당사자들끼리는 결코 해결할 길 없는 난제입니다. 결국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의 주권을 전제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또한 쉽지만은 않습니다. 성경 역시 평화 이루기의 비전을 결코 낭만적으로 증언하지 않는다고 한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의 말이 맞습니다.(눅 12:49-51 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하나님 존재적 방식과 경륜적 공식인 삼위일체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으로 이 땅에 평화를 이루는 일을 힘써야 합니다.(Moltmann, The Trinity and the Kingdom)
평화는 화해를 기반으로 삼습니다. 화해란 후버(Huber)에 따르면 “반대되는 입장을 타협적으로 조화시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갈등을 공동체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운동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해야 그러한 변화가 있겠습니까? 내란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던 우간다 출신의 신학자 카통골레(Katongole)는 먼저 “탄식(歎息)”을 강조합니다. 그가 제시하는 탄식이란 상처 입은 누군가의 곁에 다가서고, 그 고통을 들어주고 함께 아파하며, 상처를 닦아주고 씻어줌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성령의 탄식(groan)이며(롬 8:26), 그리스도의 공감(sympathy)입니다(히 4:15). “회개 없는 은혜가 값싼 은혜인 것처럼, 탄식 없는 화해는 값싼 화해입니다.” 따라서 세월호나 스텔라데이지호, 그렌펠타워화재의 희생자 가족들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보여주어야 할 것은 탄식입니다, 공감입니다!
갈등을 다루는 태도 또한 달라져야 합니다. 화해와 평화를 부르짖는 세속적인 목소리들은 때로는 갈등을 유보하거나 억압하려 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갈등을 하나님 앞에 내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의 지혜로는 이러저러한 갈등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무지의 자각이 있어야 하고, 우리 힘과 노력과 의지로는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피스메이커(peace maker)인 예수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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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육점이오와 육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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