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2017년 6월16일자로 발행된 한권의 사진집으로 도록된 귀중한 역사적 자료가 담겨져 있지 않는가? 부산 교계가 해야 할 이 귀중한 맥켄지<1865~1956>선교사 가족에 대한 가난 한 한국 땅에 와서 부산에서 나환자들의 친구가 되어 그들과 함께 평생을 동고동락하다가 73세에 은퇴 후 고국 호주로 돌아가셨던 그의 사랑하는 두 딸이 한국에 태어나서 큰 딸은 의사로 작은 딸은 간호사로 한국에 돌아 와 일신 기독병원을 세워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한국 산모와 아기들을 사랑하다가 하늘나라로 간 매씨가족들의 한국 소풍 간 이야기를 수록 한 귀중한 역사 자료가 담긴 문화 적 유산을 선물 한 경기대학교는 미선스쿨도 아닌 대학에서 재정적 지원과 경기대학 박물관에서 수년간 집필 한 것에 대해 부산기독교가 일말의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재단법인 한·호 기독교 선교회 이사장 인명진 목사의 영향으로 경기대학과 MOU를 체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출간한 도록은 한국 근대사 연구에 유익한 자료가 될 것이며 한 외국인 선교사 가족이 한국에 남긴 기독교적 유산은 너무나 귀중하고 고귀한 값진 보물로 간직되어야 할 것이다. 총 193족으로 수록된 한국 소풍가는 이야기의 첫 장은 “소풍가는 매씨 가족” 그의 가족은 이렇게 적고 있다. “기대를 안고 떠나는 즐거운 소풍에 우리가족에게 한국소풍은 두근거림 그 이상이었습니다. 버림받은 나환자와 고아 그리고 임산부와 아기들, 우리의 긴 여정은 따뜻함을 동반한 특별한 소풍이었습니다”
매견시는 스코틀랜드 로스 주유섬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나서 1910년 2월21일 부산에 도착했다. 1930년에 부산 나병원 개원하고 본격적인 불쌍한 나환자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25년 지금의 일신여학교의 전신인 도래 일신여학교를 정부 인가를 받아냈다. 이보다 2년 앞서서 일신유치원을 설립했다. 아버지 매켄지 선교사가 은퇴한 후 1951년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 입국허가를 받고야 1952년 2월 13일 부산 도착하여 지금의 동구 좌천동에 일신 유치원 건물을 빌려 일신부인병원(현 일신기독병원)을 개원 매혜란는 초대 원장으로 취임하는 한편 그의 동생 매혜영은 간호사로 사역하게 되었다.
이로써 매해영은 90세로 매혜란은 96세로 하늘나라 본향으로 갔다.
유니세프가 선정한 한국 최초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을 1993년에, 1984년에는 종합병원으로 승격했다. 2012년 매혜란 여사에게 국민 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했다.
‘매씨 가족 한국 소풍이야기’는 2016년을 마감하면서 말하기를 “우리는 매씨가족의 소풍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새 생명을 얻은 임산부와 아이들은 또다시 어디에선가 누군가에 의해 도움을 주고 맥을 이어 가고 있을 것으로 알고 있다 호주에 있는 매켄시 묘비명은 이렇게 쓰여있다. ‘한국 나환자들의 친구’라고.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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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매씨 가족의 '한국소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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