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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27 - 노인
2017/05/29 17:2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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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애국자=태극기 부대?
일찍이 철학자 니체(F. W. Nietzsche)는 역사를 세 종류로 정리한 바 있다. 과거에 매달리는 ‘골동품적인 역사’, 미래의 비전을 정치적으로 고취시키는 ‘기념비적인 역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운명을 사랑(Amor Fati)’하는 마음으로 현재의 삶을 끌어안으려는 ‘비판적인 역사’이다. 여기서 니체는 골동품적 역사를 비판하는데, 그것은 과거의 회상에만 매달려 지금 살아 있는 삶, 뛰는 심장과 흐르는 피, 대지와 자연에 맞서는, 거친 살결 속에 있는 주름의 의미를 가진, 현재 우리 인간의 주체적 삶을 황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 디멘티아(치매), 마음이 없는 상태
모든 사람은 늙는다. 이처럼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거쳐야 하는 자연스러운 퇴화 과정인 노망(老妄)은 노망(老忘)이다. 곧 늙어가면서 ‘잊는 것’이다. 사실 노인성 치매(dementia)의 라틴어 어원은 ‘마음이 없는 상태, de(without)+mens(mind)이다. 나이들어 늙으면 아기가 된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사람들은 늙어가면서 기억의 망각과 신체 기능의 퇴화를 필연적 현상이자,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제 치매는 질병의 하나로 생각되었다. 곧, 노망은 ‘과정과 현상’에 대한 표현이나, 치매는 ‘비정상과 치료’의 대상으로, 의학적 개입이 필요한 것으로 변했다. 한국 사회가 노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가족 해체의 시대에 노망든 노인을 더 이상 가족이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기에 이제 ‘자연스러운 노망의 단계(기억의 망각 현상과 퇴화 현상)’를 ‘치료의 과정인 치매(공포를 동반하는 질병 현상)’로 호명하여, 대한민국의 어르신들은 그 말년이 상품화, 물화 되어버렸다. 노망과 망령든 노인은, 가족에게 귀찮고 돌보기 힘든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병리적 존재인 환자는 아니다. 그러나 여기, 잊는 것을 잊어버린 이들이 있다.

2. 의인이며 동시에 죄인
19대 대선의 투표 결과로도 알 수 있지만 대한민국은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곧 보수와 진보 두 진영으로 확연하게 나뉘어져 있다. 이것은 정치적 분립을 넘어서는 문화적, 철학적, 나아가 신학적(신앙적) 대립을 내포한다. 삶에 임하는 자세,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 개인과 국가의 관계에 대한 견해, 그리고 한국현대사에 대한 인식, 신과 종교의 의미 등 모든 면에서 두 진영은 서로 다르다. 유시민 작가의 『나의 한국현대사: 1959~2014, 55년의 기록』 (돌베개, 2014)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대립으로 한국현대사를 바라보는데, 사실 이 두 진영은 지금 역사 전쟁을 벌인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이 바로 그 최전선이다. 
5·16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화 세력은 한국 사회 모든 영역의 상층부를 장악한 채 단단하게 결속되어 있다. 거대 재벌, 대기업 경영자와 임원들, 저마다 종편방송을 거느린 거대신문 사주와 고위 간부들, 법원과 검찰, 군대와 경찰 등 합법적 국가폭력을 관리하고 집행하는 권력기관의 고위인사들, 그 신문과 방송에 출연하면서 부와 명성을 얻는 지식인들, 그리고 그 모두를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새누리당이다(지금은 자유한국당). 그들은 자신들을 ‘근대화세력’, ‘산업화세력’, ‘보수세력’, ‘애국세력’으로 자처하지만 정치적 반대 진영에서는 ‘유신잔당’, ‘5공 잔재세력’, ‘특권세력’, ‘냉전세력’, 또는 ‘수구꼴통’이라고 부른다. 종교적으로는 강남기독교, 영남불교, 혹은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이다. 이들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권력을 모두 장악하고 행사해왔다.
반면, 4·19와 5·18, 6월 항쟁을 잇는 이들을 민주화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민주화세력’, ‘양심세력’, ‘진보세력’을 자처하지만 반대 진영에서는 ‘빨갱이’, ‘좌경용공’, ‘종북좌파’라고 불려지는 이 세력은 한국 사회 모든 영역의 낮은 곳에 흩어져 있다. 인권과 사회정의, 한반도 평화와 환경보호를 실현하려고 애쓰는 수많은 시민단체들, 노동조합, 협동조합, 언론운동단체를 포함하는 크고 작은 공동체들이다. 그들은 주로 온라인에서 소통하며 가끔 오프라인에서도 대규모로 결집해 대형 이벤트를 만들어낸다. 그들 중에 자기가 일하는 분야에서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은 별로 없다. 지속적으로 연대하거나 물질적 이익을 주고받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기네들끼리 심하게 다툰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러한 민주화 세력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딱 10년 동안 정치권력 하나만을 장악한 적이 있다. 바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이다. 그러나 경제권력과 언론권력 등 사회의 다른 모든 권력은 언제나 산업화 세력의 수중에 있었다. 아무튼 한국 현대사는 이 두 세력의 분투와 경쟁의 기록이다. 때로는 피가 강물처럼 흘렀던 싸움이 있었고, 이번 대선으로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직 그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종결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국민들이 둘 모두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로 적대적인 두 세력과 그들이 대표하는 두 시대를 모두 인정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유시민 작가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산업화시대와 민주화시대는 모두 우리의 과거다. 대한민국은 박정희의 시대와 김대중, 노무현의 시대를 거쳐 여기까지 왔다. 둘 중 하나만을 긍정한다면 역사와 현실의 절반을 부정해야 한다. 이것이 온전한 역사인식과 현실인식일 수는 없다. 색깔과 모양이 크게 다른 두 시대는 국민들의 내면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사실 우리의 현대사가 ‘영광과 승리의 역사’라는 보수의 주장과 ‘불의와 오욕의 역사’라는 진보의 주장은 둘 다 옳다. 하지만 절반만 옳을 뿐이다. 교회사도 마찬가지이다. 분열된 것 자체가 가슴 아프지만, 이것도 교회의 역사이고, 때로는 하나 되기 위해 힘썼는데, 이것도 교회의 역사이다.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흉하면서 아름다운 나라’, ‘부끄러움과 분노, 긍지와 설렘’처럼 상충하는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역사도 마찬가지,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것이다. 인간 자체가 둘 모두를 가진 존재이기에,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칭찬해야할 할 빛이 있고, 그 빛으로 인해 차츰 사라져갈 어둠이 있기에, 민족의 역사도 우리들의 인생도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내 안에 아벨과 가인을 모두 가진 모습, 사도 바울도 로마서 7장 19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의인이며 동시에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이라는 루터의 고백도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모순된 존재에 대한 인식과 사랑, 그리고 모순된 존재들이 만들어가는 불완전한 사회와 세상을 정말 고민하며 읽어내고 대화와 소통으로 펼쳐나가는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포기하면 사람이 사람답게 존중받는 그런 세상은 결코 열리지 않을 것이다. 시지푸스가 다시 무의미한 바위를 굴려 올리기 위해 저 언덕 아래로 내려가며 신발끈을 조여 매듯이,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인내일 것이다.

3. 노인+애국자=태극기 부대?
마크 트웨인은 ‘애국자란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가장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오스카 와일드 역시 ‘애국심은 사악한 자의 미덕’이라고 말한다. 18세기의 문필가인 사무엘 존슨은 ‘애국심은 악당의 마지막 피난처’라고 말하며 미국의 문필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에드워드 애비는 “애국자는 정부에 맞서 자신의 나라를 지킬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지난 몇 달 간, 국민이 정부로부터 나라를 걱정하며 지켜야했던 이 대한민국에서 애국심과 애국자라는 기표가 태극기를 타고,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그리고 그 유령의 실체는 노인들, 곧 어르신들이었다.
9면 문화.jpg▲ 3월 1일 종로 도심을 메웠던 태극기집회 모습
 

태극기 부대의 어르신들, 그들에게 박정희 시대야말로 그들이 가장 빛나던 시절이었다. 공장 미싱 앞에서, 그리고 뜨거운 아랍의 사막에서, 독일의 탄광에서 자신들의 청춘을 다 보냈지만, 적어도 그때는 자신들이 사회의 주인공이었다는 생각이 있었다. 따라서 박정희 대통령과 그의 딸 박근혜 전 대통령을 부정하는 것은 곧 자신들의 청춘을, 나아가 자신들의 모든 삶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성서에서 가장 비열하고 권력욕에 찬 인물이 다윗일진대(물론 그의 아들 솔로몬도 아버지 다윗 못지않게 탐욕과 정치적 술수에 능한 인물이었지만), 그런데 왜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도 그리워하는가? 하다못해 메시야도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나와야 하는가? 이런 뜻은 아닐까? 적어도 다윗, 솔로몬 시대에 우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 좀 썼다”, “너희들 까불지 마라.” 이런 뜻? 따라서 태극기 어르신들에게 실질적인 팩트를 들이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들의 내면에는 자신을 ‘산업역군’으로 불러준 지도자와 함께, 대한민국의 고도성장 시대를 이끌었다는 자부심, 혹은 환타지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어르신들은 지금 세대의 새로운 생각들을 이해하고 인정하려고 들지 않는다. “네가 뭘 아냐? 까불지 마라”라는 것이다.
10·26을 생각하면 우는 어르신들이 있다. 이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이 슬퍼서만은 아니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나 정말 고생 많았다.”라는 것이다. 자신과 박정희 대통령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 시대에 가장 고생한 사람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고 박근혜 전대통령의 탄핵을 못 받아들인다는 사실은 당연 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니체가 말한 과거의 기억에만 매달리는 골동품적인 역사의 산증거가 바로 태극기 어른신들이다. 따라서 기억에만 매달리면 인간은 인간이기를 멈추는 것이다. ‘신은 죽었다’라는 니체의 그 유명한 선언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곧, ‘기억의 뿌리’, 혹은 ‘회상의 원인’이 되는 저 초월적인 모든 것(가령, 이데아적인 것)의 죽음이 바로 신은 죽었다는 명제로 표현되는 것이다.
근본주의적인 기독교 신자들에게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표현은 ‘박정희는 죽었다. 박근혜는 탄핵되었다’라는 말과 의미에 있어서 같은 것은 아닐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삶이, 신앙이, 일생이 모두 부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니체는 지금 이 시간을 살아가는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 곧 과거에만 집착하거나 미래에만 매달리는 몽유적인 인간을 ‘역사적 인간’이라 부르고, 이러한 역사적 인간들이야말로 이 대지에서 불행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4. 탈진실과 탈사실의 시대, 아모르 파티!
‘노인은 꿈을 꾸고 젊은이는 비전을 볼 것(요엘 3:28)’이라는 구약성서의 예언은 경제적으로 넉넉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노인과 젊은이가 기댈 수 있는 나라, 인생의 경륜자로서 노인의 꿈이 존중받고 새 세상을 갈망하는 젊은이들의 비전이 펼쳐지는 세상을 뜻한다.
지금 세계는 끝없는 이기적 욕망의 시대로 치닫고 있다¹. 이러한 욕망을 뒷받침하기 위해 진실과 사실은 폄하되고, 거짓과 사이비가 그 욕망의 헛된 전망을 정당화시킨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2016년 ‘올해의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선정했다. 독일언어학회도 ‘탈사실(postfaktisch)’을 2016년의 독일어로 뽑았다. 바야흐로 세계는 탈진실의 사회와 동시에 ‘거짓의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물론 포스트모더니즘의 ‘윤리 상대주의(Ethical Relativism)’와 ‘다원주의(Pluralism)’가 여기에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토대였던 진리를 해체하였고 개인의 개체화와 익명화는 거짓에 대한 민감성을 둔화시켰으며 인터넷 기술이 열어놓은 매체환경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자신들만의 대안 사실을 믿는 분할된 ‘마이크로 공론장’을 만들어냈다. 중요한 것은 거짓을 사실로 믿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을 하나의 의견으로 강등시키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실의 신뢰성을 잠식하고 공론장을 왜곡하는 것은 결국은 민주주의의 토대를 무너뜨린다.
자신들만의 마이크로 공론장을 형성한 태극기 부대의 어르신들, 따라서 만일 어르신들이 행복해지려고 한다면 과거를 ‘망각’하고 현재를 ‘사랑’해야 할 것이다. 니체에 따르면 망각한다는 것은 이미 없는 과거와 아직 없는 미래를 뜻하며, 사랑해야 하는 것은 현재의 삶이다. 예수께서도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6).”로 말씀하셨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도 “까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노인들이여, 마음은 없어도 사랑은 넘쳐나기를!

(각주)
1 : 프랑스에서는 인종주의와 우파 민족주의를 주창하는 국민전선(the National Front)이, 독일은 유로존 해체와 이민자 유입을 반대하며 유럽 통합의 진행을 반대하는 대안독일당(the Alternatives of Germany)의 위세가, 이탈리아에서는 유럽회의주의 성향을 보여 온 오성운동(Movimento 5 Stelle)이, 스페인에서는 반긴축 정책을 선도하며 온라인 직접 민주주의를 주창해온 포데모스(Podemos)가, 네덜란드에서는 우익 대중주의, 반지구화, 반이슬람주의를 기치로 내건 자유당이, 노르웨이에서는 이민자 축소와 이슬람교 반대 등을 공약한 진보당이 힘을 얻고 있으며, 핀란드에서는 국수주의(nationalism)와 유럽회의주의를 주창하는 핀란드당이 세를 확장하고, 덴마크에서는 반이민 정책과 노인복지 확충을 내건 덴마크국민당이 급부상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욕망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최병학 목사.JPG
 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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