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7.07.28 17:54 |
자연주의자 인간 문재인을 재조명한다
2017/05/15 13:47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구글+로 기사전송 C로그로 기사전송
▲ 문재인 대통령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된 문재인은 과거 민주화 시절 정신적 대부였던 남천성당의 주임신부로 있었던 송기인 신부에 의해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장남 준용 군의 장인이자 사돈은 예장통합 측 장재도 목사(서울합정교회)로, 2014년 2월에 결혼식을 기독교 예식으로 치러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문제인은 늘 자신의 신앙관은 “신 ,구교 일치를 넘나드는 순수 에큐메니칼 운동의 신봉자”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가톨릭교회에서 영세를 받은 가톨릭 신자다. 그런데 그가 젊은 변호사 시절 1997년부터 2000년까지는 부산YMCA 정식 이사로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권철현 주일 전 대사, 김광일 YS대통령비서실장, 최찬기 전 동래구청장, 이성만 전 부산장신대이사장 등과 함께 활동했다. 시민중계실을 운영하면서 1981년도부터 사회생활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 피해, 권익침해 등에 대한 중재 및 상담을 목적으로 개설된 시민중계실에서 무료상담을 했던 변호사로 김광일, 노무현, 문재인, 김영수, 김상영, 배종근, 박윤성 변호사 등이 있다. 이들은 법률문제를 연평균 약 2500건을 소화했으며, 그 당시 전담 간사였던 전점석 간사가 프로그램을 주도했다. 그때의 인연으로 윤경태 간사가 노무현 대통령 당시 청와대 행정관으로 문재인 비서실장이 스카우트하기도 했다. 젊은 문재인 변호사는 주 1회에 4시간을 자원봉사하면서 이 땅의 불의에 맞서 싸워 약자 편에서 친구가 되어 주는 인정 많은 시골집 동네 아저씨같은 친근감을 주게 했다.

△재미있는 일화 한 토막
1980년대 첫 변호사 개업에 앞서 먼저 김광일 변호사 사무실에서 문재인과 노무현 두 분이 사사(일종의 인턴)로 일하면서 변호사 일을 넓혀 나갔다. 그런데 문재인 변호사는 김광일 변호사와는 경남 중·고교 선후배이라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데 노무현 변호사는 아니었다. 김광일 변호사가 “노변, 이달까지 일하고 독립해서 나가지”라고 말하자 노무현은 “여기 아니면 사람 없나?”라며 기분이 상해서 나갔고 그의 친구 문재인도 따라 나가 독립된 사무실을 차렸다. 김광일 변호사가 YS에게 문재인을 먼저 추천했을 때 문재인 변호사는 “나는 아직 돈을 좀 더 벌고 갈 터이니 노변이 먼저 정치에 입문하라”고 양보했다. 김광일 변호사는 늘 노무현 변호사는 위험한 인물로 별로 탐탐치 않게 생각해서 훗날 대통령에 출마할 때 ‘노 변이 대통령에 안 될 이유 9가지’를 언론에 열거하여 둘 사이가 굉장히 나쁘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필자는 김광일 변호사 옆에서 일을 도와주곤 했었다. 김광일 변호사가 가롯유다 예찬론을 국제신문 문예칼럼에 게재하자 부산중앙교회 당시 노진현 목사가 당회 차원에서 징계하려 했다. “사실은 비유적인 역설로 한국교회 지도자들을 자각하도록 경종을 울리기 위한 의도였다”는 사과문을 교계신문에 게재하면서 했고, 그때 김광일 변호사가 교회연합신문 부산지사장으로 활동하던 때 필자가 기자로 김광일 변호사 사무실에 자주 출입하면서 노무현 변호사와 문재인 변호사를 알게 되었다.
문재인은 순수한 시골사람처럼 순진한 청년이었다. 그에 반해 노무현은 시장 장사꾼처럼 겁 없이 달려드는 무식이 용감 그 자체였다고 할까?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노무현은 문재인을 용기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그의 전위대 역할을 하는 전사로 돌변하게 했다.
한 사람은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또 한사람은 이번 제19대 대통령이 될 줄은 그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국의 대통령에 둘이 나올 줄은 정말 모르는, 하늘만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희대 법대를 장학생으로 졸업하고 사법연수 차석이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막노동에 뛰어들었다가 독학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개천에서 용이 난 셈이었다. 자수성가한 인물로 100년에 한 번 날까 말까한 입지적 인물인 것은 틀림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해서 자신은 돈을 많이 벌어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동생들을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절간에 들어가 고시 공부를 했다고 어느 청년들이 모인 자리에서 애기한 적이 있다. 결국 친구 노무현을 따라 정치에 입문한 것이 오늘의 대통령으로 이르게 됐다. 그의 서민적인 행보는 본래 그의 본성이 묻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광화문 청사로 출퇴근하겠다는 그의 발언에는 소탈하고 솔직한 모습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세상의 권력 때가 묻지 않는 순수한 마음으로 일관한다면 누구보다 통합과 소통의 달인으로, 성공한 대통령으로 서민 품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신이건 장로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kcnp1@hanmail.net
한국기독신문(www.kcnp.com) - copyright ⓒ 한국기독신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 많이본기사
  • 화제의 뉴스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정기구독신청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한국기독신문 (http://www.kcnp.com) | 창간일 : 1995년 4월 11일 | 발행인 : 김해옥 | 편집인 : 신이건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신상준 국장 
    602-053   부산광역시 서구 까치고개로 229번길 47-1
    사업자등록번호 : 758-96-00228 | 정기간행물등록 : 부산, 아00259
    대표전화 : 051-245-1235 | 팩스 : 051-245-2763 | kcnp1@hanmail.net
    Copyright 2015. kcnp.com All right reserved.
    한국기독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