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7.09.21 15:21 |
[기성준 작가의 시골교회 이야기] "시골에 오니 너무 행복해 보이고 은혜가 넘치네요.”
2017/04/10 17:0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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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역을 준비하시는 여수복산교회 배동철 목사님의 <시골교회 이야기>, 580km 진행
도시에 있으면 시골에 대한 인식이 어쩔 수 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러 지역에 사역을 다닌 복산교회 배동철 담임목사님 역시도 시골을 처음 방문할 때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24km나 되는 비포장도로를 지나 3개의 산을 넘어 도착한 시골교회에서 사역은 정말 험난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이끄신 복산교회에서의 목회는 행복과 은혜가 넘친다고 고백하셨다. 하나님께서 복산교회로 이끄신 은혜의 이야기 속으로 떠나보자.
교회 전경.JPG
 
 
하나님께서 37세에 목회의 삶으로 이끄시다.
복산교회 담임 목사님이신 배동철 목사님은 37살에 신학을 시작하셨다. 그 전까지 항공직종과 학원원장, 영업직종에 종사하며 목회를 하기 전에는 사실 돈을 많이 버셨다고 한다. 바쁜 삶으로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가니 간경화를 진단받고 우여곡절 끝에 신학을 선택하였다. 비포장도로를 24km를 달리고 산을 3개 넘어간 곳에서 사역 시작하였다. 41평 아파트의 삶에서 단숨에 15평 사택의 삶으로 전환되었다. 이런 과정 속에 이삿짐을 실은 5톤 트럭 두 대중 하필 가전제품을 실은 트럭이 교통사고를 당해 물건들을 다 잃은 적도 있었다. 산 속에서의 사역부터 잠깐의 도시사역과 나병촌 사역까지 늦게 신학을 공부했지만 다양한 사역경험을 하셨다. 그 과정 속에 사례도 못 받는 경우도 많이 있었고, 사역지에 대한 정보가 청빙 받을 때와 너무 달라 곤란한 적도 있었다.
복산교회 배동철 담임목사님과 함께 3.JPG▲ 기성준 작가(왼쪽)와 배동철 목사(오른쪽)
 
 
‘이렇게 죽으면 순교가 아니라 개순교가 될텐데...’
주변에 양파 농사를 짓는 것을 보며 교인들과 함께 농사를 시작하였다. 3년을 계획하고 투자하면 빚도 갚고 교육관도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골에서 젊은 목사의 열정을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해달라고 요청하니깐 성도들이 허락해주었다. 만 오천평 농사를 하였는데 다음 해에 양파 값이 완전히 폭락해 버리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도시교회에 호소하여 양파를 팔았고, 수익금으로 하우스를 지어 다른 농사를 준비하였는데, 그 해 태풍이 불어왔다. 태풍에 하우스 2동이 뽑히고, 2억이 넘는 손해를 봤다고 한다. 심지어 하우스를 잡다가 태풍의 바람을 못 견디어 6미터정도를 함께 날랐다. 떨어지면서 ‘순간적으로 이렇게 죽는구나. 이렇게 죽으면 순교가 아니라 개순교가 될텐데...’라고 생각하셨단다.
이런 과정 속에 목사님은 “시골교회에서 안정적인 사례를 못 받고, 심지어 빚도 자꾸 늘어가도 시골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재미있고 그 다음에 이 길을 하나님께서 나를 왜 이 교회에 보내셨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은 내가 아니면 버틸 수 없었을 것 같았어요.”라고 고백하셨다.
교회 본당.JPG
 
 
빚이 많음에도 하나님께서는 농사의 90%를 구제사역으로...
목사님은 ‘시골에 온 젊은 목사의 에너지를 시골목회에 쏟으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러면서도 자칫 잘못하면 목회방향과 전혀 다르게 도박이나 여러 가지 중독에 빠지는 경우를 허다하게 본다. 젊은 목사의 에너지를 농사에 쏟고, 이런 농사를 통해 사람을 만나고 또 이런 것으로 전도의 문을 열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복산교회는 벼농사를 천 이백평 규모로 짓는데 거의 90%정도를 구제하는데 쓰고 있다. 쌀을 생산해서 면사무소에 전달하였고, 무값이 오르면 무 농사를 짓고 나눠주었다. 굳이 나눠주지 않고 팔면 빚을 갚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는 판매의 활로를 열지 않으시고 나눠주게끔 이끄셨다. 작년까지도(인터뷰 시기가 2016년이라 2015년을 뜻한다.) 주변에서는 농사만 짓는 교회, 성도들에게 일시키는 교회로 소문이 났는데, 금년(2016년)부터는 뭐든지 주는 교회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시골이라고 해서 한숨만 푹푹 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분명 안 좋아하실 것이라 하셨다.
사역지를 옮기면서 제일 힘든 것이 자녀들도 함께 계속 이사하는 것이었다. 첫째는 고등학교만 세 번이나 옮기고, 막내는 초등학교를 5번을 전학하게 되었다. 친구들을 사귀면 헤어지고 이것을 반복하다 보면 힘든 것은 당연하다.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로 아이들이 많이 밝아졌다고 한다. 이런 사역자들을 위한 학교를 하나 설립해서 초중고까지 다닐 수 있는 미션스쿨도 있으면 목회를 하는 분들이 편하게 이사를 다니면서 사역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셨다.
 
“통일이 되면 자신이 제일 먼저 북한에 갈 것이다”
통일사역을 준비하시는 시골교회 목회자
목사님의 바람은 복산교회 어르신들을 모시고 필리핀이나 해외를 한 번 모시고 나가보는 것이다. 한 번도 비행기를 타본 경험이 없으신 어르신들, 도시에 나가 백화점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행복해 하셨다. 시골교회이지만 도시 쪽으로 한 발짝만 당기는 비전을 가졌다. 교회를 요양원이나 사회복지시설로 만들고, 이 시설이 국가지원을 받지 않고 교회에서 운영하는 것이 비전이다. “자립 할 수 있는 재정만 채우고 후원자를 그렇게 채워야지. 우리가 국가를 후원해야지 국가가 교회를 후원하는 것은 그것은 기독교적인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사역을 하면 다닐 곳 없이 소외 받는 어른들이 이제 그런 시설에 있다가 부름 받고 가시면 참 좋겠다라는 것이 지금 목사님의 바람이셨다.
자신은 시골목회를 넘어 통일이 되면 자신이 제일 먼저 북한에 갈 것이다라는 선언을 하셨다. 북한의 정서를 알려면 시골의 정서를 알아야 하는데, 배목사님은 성도 6명되는 교회도 있어봤고, 30~40명 시골에도 있어보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통일사역을 준비하고 있었다. 통일이 되면 목사님은 언제든지 북으로 가시겠다는 말을 붙이며 통일을 준비하는 시골목회를 하고 계셨다. 시골목회에서 통일을 발견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복산교회와 배동철 목사님을 위한 중보기도를 부탁드린다.
 
글 기성준 작가
녹음타이핑 하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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